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3-대신 합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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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3-대신 합의의 한계
  • 손호영
  • 승인 2023.11.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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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형사단독 재판장을 할 때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교통사고입니다. 교통사고의 문제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교통사고가 피고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지만, 그것이 ‘실수(과실)’로 인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피고인의 ‘실수(과실)’로 발생한 것이라도, 그 ‘결과’가 무척 무겁다는 것입니다. 불운과 불행이 서로 겹쳐 이루어진 이 사고를 사건으로 마주할 때 참 어려웠습니다.

피고인은 모두 자백합니다. 블랙박스가 있으니, 운전하면서 전방주의 의무 등을 소홀히 했음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소사실 인정을 하니, 이제 쟁점은 ‘양형’입니다. 보통 피해자는 입원해있기에 방청석에는 피해자의 가족이 옵니다. 피해자의 가족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평화롭게 지나가던 길인데, 갑자기 차에 치여 입원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요. 피해자의 가족이 강조하던 내용은 보통 같았습니다. “피고인의 진실로 용서를 구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

피고인은 합의를 원한다면서도,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가족에게 잘 연락을 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주저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어려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대리인까지 선임되었다면 대리인이라도 피해자 측에 연락을 하고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해야할 것 같아, 재판을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다음 기일까지 피고인과 대리인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에게 연락을 드리면서 사죄를 하시고 논의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대체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 내막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칫 실수로 처벌을 크게 받을 피고인의 선택이었는지, 어쩌면 지금 당장 치료비가 급한 피해자 측의 결단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합의’라는 양형요소가 가지는 무거움을, 형사재판을 하면서 참 많이 느꼈습니다.

이 ‘합의’라는 양형요소에 대해 한번 고민해본 최근 대법원 판결이 있어 소개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통사고 사건입니다.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고를 운행하다가 보행자를 들이받은 사건입니다. 피해자가 의식불명이 되어 결국 성년후견이 개시되기까지 한 사안인데, 성년후견인인 피해자의 배우자가 피해자 대신 합의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수의견의 태도입니다(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이는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되어 있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성년후견인이 소송행위를 할 때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문언입니다. 교특법 3조 2항에 따르면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제3자가 피해자를 대신해서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문언에 반합니다. 대리가 가능하다는 규정도 없습니다. 둘째, 반의사불벌죄의 취지와 효력 때문입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이미 개시된 국가의 형사사법절차가 일방적으로 중단·소멸되는 강력한 법률효과가 발생하므로,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기한 것이어야 합니다. 셋째, 친고죄와의 구별입니다. 피해자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친고죄는 불처벌을, 반의사불벌죄는 처벌을 원칙으로 하도록 형사소송법이 달리 취급하는 것을 보면 둘은 구별되어야 하므로, 친고죄의 고소취소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습니다(아마 이 부분은 친고죄와 다르게 취급하는 것에 대한 반론을 미리 상정하고 반박한 부분일 것입니다). 넷째, 성년후견인의 역할상 한계입니다. 민법상 성년후견인이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피해자 본인을 위한 후견적 역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섯째, 양형인자의 역할입니다. 성년후견인이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합의를 한 경우에는 이를 소극적인 소추조건이 아니라 양형인자로서 고려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재판에 대해서 ‘합의만능주의’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를 경계하는 취지의 판시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저는 이 판결을 읽으면서 반의사불벌죄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인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전통적 미풍양속을 고려함과 동시에 형벌법규의 형식적·기계적 적용에 따른 폐단을 최소화하면서 당사자 사이의 사적·자율적 분쟁해결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알고 나니 반의사불벌죄가 또 새롭게 보였습니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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