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빨간색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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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빨간색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10.20 10: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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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웹서핑을 하다가 흥미로운 설문을 하나 봤다. “당신의 눈앞에 빨간색 버튼이 하나 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당신의 계좌에 1천만 원씩 입금되지만 대신 당신과 상관없는 사람이 한 명씩 죽습니다. 당신은 이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어차피 현실로 이뤄지지 않을 가상의 상황일 뿐이었지만 꽤나 의미심장한 화두가 담겨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법률저널의 독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3초 정도 고민을 했지만 선택은 당연히 “누르지 않는다”였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7만 9천여 명의 사람 중 68%가 “누른다”를 선택했던 것. 댓글 중에는 기자와 같이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들도 많았지만 “오락실에서 총 쏘는 게임을 하듯이 갈긴다”, “하루에 5억 번씩 누를 것”, “그 위에서 탭댄스도 추겠다”, “100억이 될 때까지 누름”, “만 원만 줘도 마사지건 들고 누른다” 등의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 싶은 글도 많았다.

문득 오래전에 봤던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에는 그다지 흥행을 하지 못해 저주받은 걸작으로도 불리는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종일 산성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세계. 자욱한 스모그를 뚫고 솟아 있는 고층 빌딩들은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고 그 빌딩 숲 사이로 자동차들이 날아다닌다. ‘레플리컨트’라고 불리는 인조인간들이 인류의 노예로 사용되는 근미래. 우습게도 영화의 배경인 2019년은 이미 지나갔지만 말이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 버린 근미래에서 레플리컨트는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졌고 신체 능력은 오히려 인간을 상회해 인간이 하기 어렵고 힘든 일들을 대신하지만 그 뛰어난 능력으로 인간들에게 맞서지 못하도록 수명을 4년으로 제한받고 있다. 지적 능력을 갖춘 레플리컨트들이 이 같은 처우에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인간에 대항하는 레플리컨트들을 폐기하기 위해 ‘블레이드 러너’라는 특수 경찰이 만들어졌다.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인 주인공 릭 데커드는 현역 블레이드 러너의 부상으로 인해 최신형 레플리컨트들을 찾아 제거하라는 임무를 떠맡게 된다. 영화는 그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레플리컨트들이 인간들보다 오히려 더 감정적이고 동료를 아끼는 모습, 자신을 죽이려고 한 원수의 생명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등의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다시 설문으로 돌아가서 “누른다”를 선택한 이들 모두가 실제 상황이 됐을 때 그 빨간색 버튼을 누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누군가는 그저 재미로 하는 설문이라고 생각하고 장난을 치듯이 “누른다”를 선택했을 것이다. 혹은 가상의 상황이라고 해도 생명보다 돈을 선택할 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해졌고 그만큼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상의 설문을 통해서나마 토해낸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얼마 전 5급 공채 면접시험장에 취재를 나갔다. 면접시험 응시자들에 따르면 지방대학 활성화, 분노 범죄 대응 방안, 사무관으로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갈등 상황에 대한 해결 방안 등 전문적 역량을 검증하기 위한 질문들이 주로 제시됐다. 1, 2차 필기와 면접시험을 통해 능력을 증명한 합격자들은 간절히 꿈꾸던 공직자가 된다.

5급 공채뿐 아니라 다른 공무원시험, 여러 전문자격사시험도 올해의 시험 일정을 모두 마쳤거나 곧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합격자들은 이제 공직자로서 또 전문자격사로서 수년간 공부해 쌓은 역량을 펼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며 모쪼록 초심을 잊지 않기를 부탁한다.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우리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 그런 인간다운 마음을 가져주기를, 그리고 열심히 갈고닦은 능력을 한껏 발휘해 빨간색 버튼을 누르겠다는 사람들이 없어질 만큼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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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3-10-23 12:33:54
기자님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좋은 글을 통해 제 생각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기자님, 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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