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아크로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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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아크로폴리스
  • 호문혁
  • 승인 2018.10.0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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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前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제1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오래 전부터 우리 대학가에서는 캠퍼스 중 일부에 유럽의 명소 이름을 별명으로 붙이는 유행이 있었다. 70년대 초반까지의 동숭동 캠퍼스 시절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문리대 정문 앞의 세느강과 미라보다리가 유명했고, 관악캠퍼스에서는 아크로폴리스가 널리 알려졌다. 문리대 캠퍼스 안에 대학교 본부가 있어서 그런지 다른 단과대 학생들도 그 캠퍼스에 드나들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고, 그러다보니 아뽈리네르의 시처럼 미라보다리에서 남녀 학생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학생들이 ‘아크로’라고 줄여서 부른 아크로폴리스는 중앙도서관 앞의 완만한 언덕인데, 80년대까지 학생 시위의 집합장소로 특히 유명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도 밋밋한 언덕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장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2013년 9월에 델피를 보고 나서 학술대회가 열리는 아테네로 향했다. 당연히 귀에 익은 아크로폴리스부터 찾아갔다.
 

▲ 사진1. 시내에 있는 Lykavittos(리카비토스) 산에 올라가면 아크로폴리스 주변 아테네 시내뿐만 아니라 그 남쪽에 펼쳐진 바다까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본래 아크로폴리스의 어원은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akron과 ‘도시’를 뜻하는 polis가 합쳐진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 중심지에 있는 언덕으로 그 도시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이나 관공서 등을 세운 곳이었다. 그러나 후대에는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The Acropolis’라고 하여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시내에 있는 Lykavittos(리카비토스) 산에 올라가면 잘 내려다 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주변 아테네 시내뿐만 아니라 그 남쪽에 펼쳐진 바다까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사진1).
 

▲ 사진2. 거대한 성문인 이 건축물은 과거에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싸고 지은 성벽이 얼마나 웅장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방이 절벽으로 된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려면 서쪽의 계단으로 올라가 성문인 Propylea를 통과해야 한다. 거대한 성문인 이 건축물은 과거에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싸고 지은 성벽이 얼마나 웅장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사진2). 성문을 지나 올라가면 왼쪽에 Erechtheion(에레크테이온) 신전, 오른쪽에 Parthenon(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 사진3. 에레크테이온 신전 앞. 수많은 돌무더기가 흩어져 있지만 신전 자체도 상당히 많이 부서져 있었다.

Erechtheion 신전은 기원전 393년 경에 완성된 것으로 Poseidon Erechteus(포세이돈 에렉투스)를 주신(主神)으로 하고 그 외의 여러 신을 모신 신전으로 아테네 최전성기의 걸작이라고 한다. 신전 앞에도 수많은 돌무더기가 흩어져 있지만 신전 자체도 상당히 많이 부서져 있었다(사진3). 그래도 남쪽 면에 머리로 천장을 떠받들고 있는 여섯 명의 아름다운 여신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웠다.
 

▲ 사진4. 직접 가서 보니 파르테논 신전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휑한 것이, 사방 면에 거의 기둥밖에 남지 않아 혹시 수리하려고 일부분을 해체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Parthenon 신전은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사진으로 많이 본 유명한 건물이다. 이 신전은 마라톤 전투 승전 기념으로 지혜의 신이고 전쟁의 신이기도 한 여신 아데나를 기리기 위해 세우고 있었는데, 아테네를 침공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왕의 군대가 파괴해 버렸고, 그 뒤 아테네를 탈환한 그리스인들이 페리클레스 치세에 다시 지어 기원전 432년에 완성하였다. 본래 파르테논은 여신 아데나의 무녀들이 산 집을 가리키는 말로 ‘처녀의 집’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신전 곳곳에 다양한 부조가 새겨져 있었고, 신전 중앙에는 금과 상아로 만든 높이 12미터의 아데나 여신상이 서 있었다고 하나, 지금 이 여신상은 온 데 간 데 없고, 신전 곳곳의 부조물 중 상당수가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에 가 있다.
 

▲ 사진5. 디오니소스 극장은 고대 아테네 드라마 예술의 요람 역할을 톡톡히 한 곳으로, 최대 수용인원이 무려 18,000명에 이르는 대형 극장이었다는데, 지금은 무대 가까운 객석만 대리석 자리가 남아있고, 나머지 객석은 흙과 풀로 덮여 있는 처량한 모습이다.

정작 직접 가서 보니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휑한 것이 사방 면에 거의 기둥밖에 남은 것이 없어서 혹시 수리하려고 일부분을 해체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사진4). 동유럽의 유서 깊은 종교 건축물이 대개 그렇지만, 한동안 기독교 교회로 이용되다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무슬림의 모스크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687년 오스만투르크 군과 베네치아 군의 전투 때에는 화약고로 쓰다가 폭탄을 맞은 화약의 폭발로 신전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기도 했다. 19세기 초에는 특히 영국인들이 이 신전을 파괴하여 거의 약탈 수준으로 영국으로 운반해 갔다고 한다. 아데나 여신은 일찍 이 신전을 떠나버렸겠지만 만일 남아 있었으면 오장육부가 다 문드러졌을 것이다.
 

▲ 사진6. 지금은 아고라 동쪽에 1950년대에 재건된 아탈로스 주랑(Stoa of Attalos) 외에는 대부분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남쪽 기슭에 두 개의 고대 야외극장이 있다. 서남쪽에 있는 극장은 Herodes Atticus Odeum(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으로 로마 통치 시기인 서기 161년에 세운 것인데, 객석은 새로 보수를 했는지 비교적 말끔하였고, 요새도 극장으로 사용되어 내가 갔을 때는 한창 오페라 무대장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동남쪽에 있는 것이 기원전 6세기에 지은 Dionysos(디오니소스) 극장이다. 고대 아테네의 드라마 예술의 요람 역할을 톡톡히 한 곳으로, 최대 수용인원이 무려 18,000명에 이르는 대형 극장이었다는데, 지금은 무대 가까운 객석만 대리석 자리가 남아있고, 나머지 객석은 흙과 풀로 덮여 있는 처량한 모습이다(사진5). 그리스의 극장은 사진에서 보듯이 무대와 객석이 모두 반원형으로 되어 있다. 마이크와 스피커도 없는 그 옛날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사와 노래를 들을 수 있었을까 몹시 궁금했는데, 그 의문은 아테네 학회 끝나고 미케네 유적지로 견학 갔다가 들른 고대 극장 유적으로 유명한 Epidauros(에피다우로스) 극장에서 풀렸다. 거대한 반원형 야외극장인데 아래 무대에서 어떤 청년이 무슨 연극의 대사 같은 것을 읊었는데, 그 목소리가 객석 가장 뒷자리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 사진7. 밤에 조명을 받은 아크로폴리스는 그대로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가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고대 Agora(아고라)로 갔다. 본래 아고라는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이 장소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의 다양한 생활중심이 되어 나중에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고라는 이처럼 경제 활동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학문과 사상 등에 대한 토론을 하고 예술을 즐긴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민회를 열어 국방이나 정치 문제를 토론하던 정치의 중심지이자 재판을 여는 공개법정이기도 했다. 기원전 6세기 참주 정치 시대에 만들어진 아테네의 아고라는 아크로폴리스 북쪽 기슭에 대략 550×700m 크기의 직사각형 광장의 3면을 주랑으로 에워싸고 있었으며, 주변에 커다란 공공건물들이 들어서 균형 있는 배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고라 동쪽에 1950년대에 재건된 아탈로스 주랑(Stoa of Attalos) 외에는 대부분 돌무더기만 남아있지만(사진6), 고대에 소크라테스와 숱한 소피스트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맹활약하던 현장을 내가 거닐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서울대 학생들이 집회 장소 이름을 잘못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크로폴리스가 아니라 ‘아고라’라고 했어야 좋았을 것을...

▲ 사진8. 호텔에 가서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려고 동행한 딸과 사위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맥주 한잔 하는데,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학회 일정이 다 끝나고 저녁에 내 FM2와 삼각대를 들고 다시 아크로폴리스 부근에 갔다. 밤에 조명을 받은 아크로폴리스의 야경을 찍기 위해서다. FM2는 순 수동 필름카메라이기 때문에 야경을 찍으려면 삼각대를 펴고 카메라를 장착하고 셔터스피드를 B로 하여 셔터를 누르고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 대충 짐작으로 초를 잰 다음 셔터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노출이 맞았는지를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셋에서 일곱 정도까지 여러 장을 찍어야 한다. 밤에 조명을 받은 아크로폴리스는 그대로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사진7). 호텔에 가서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려고 동행한 딸과 사위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맥주 한잔 하는데,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사진8). 다시 삼각대를 펴고 망원렌즈를 장착, 숫자를 세며 몇 장을 찍었다. 초저녁잠이 많은 사위가 사진에 미친 장인 때문에 카메라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조수 노릇을 하느라고 힘들었을 것이다.
 

▲ 사진9. 옛 경기장 등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Olympia(올림피아) Zeus(제우스) 신전에서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뚜렷이 올려다보였다.

아테네를 떠나는 날 오전에 시내를 둘러보았다. 옛 경기장 등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Olympia(올림피아) Zeus(제우스) 신전에서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뚜렷이 올려다보였다(사진9). 하긴 아테네 웬만한 곳에서는 다 잘 보이겠지만,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이 아데나만 높이 모신다고 혹시 질투심이 대단한 제우스가 심통을 부리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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