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변호사 김지영의 책 속을 거닐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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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변호사 김지영의 책 속을 거닐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김지영
  • 승인 2018.07.2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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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Virtu, Nicessita & Prudenzia -
지도자의 능력, 불가피성, 그리고 실천적 이성

두 전직 대통령의 몰락,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 미완으로 남아있는 개혁 과제들. 과연 우리를 이끌 지도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민중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요.

마키아벨리는 30살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피렌체의 제2장관직에 발탁되었고 그 후 14년간 고위공직자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메디치가(家)가 권력을 잡으면서 기존의 공화정부 참여자들을 숙청하였는데, 그 중 마키아벨리도 숙청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에 의해 고문당하고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정계복귀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기 위해 <군주론>을 집필하였지만, 메디치 가문에서는 관심이 없었다지요.

어떤 변호사가 “사람들이 정치를 하려고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백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는데, 저는 군주론이 그런 백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꼭 정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이 책을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군주론의 핵심은 “Fortuna(운명)", “Virtu(지도자의 능력, 리더쉽 등)", "Necessita(불가피성)", ”Prudenzia(실천적 이성)"인데요. 사실 다른 단어들도 어렵지만, "Virtu"에 대해서는 정확한 의미를 번역하기 힘들다고 하네요. 마키아벨리는 운명의 힘(Fortuna)은 자신에게 대항할 Virtu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위력을 과시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제방과 수로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곳을 알아채고는 자신의 물길을 그리로 돌린다고 했습니다(p119).

마키아벨리는 "Necessita"를 깨닫고, “Virtu"와 ”Prudenzia"를 발휘한 인물로 모세를 들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의 노예상태로 잡혀 억압받고 있었고, 이를 구제해 줄 지도자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유약한 자들에게는 이런 노예상태가 절망이고 위기로 다가오겠지만, 모세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Necessita, 즉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런 Necessita를 통해 모세는 자신의 Virtu를 깨닫고 이를 발휘하게 됩니다.

뭐, 이렇게 대단한 명분이 없는 제 인생을 보니, 수많은 "Necessita"가 있었는데, 이를 기회로 바꾸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불필요한 상상력은 두려움만 키운 적도 많았구요. “Virtu"와 ”Prudenzia"를 갖춘 사람에게는 매일 매일이 기회이고, 두렵고 불안한 것이 없을 텐데 말이죠. 이런 사람은 니체가 말했던 초인(Übermensch)처럼 운명을 사랑하며(Amor Fati), 자신의 역경을 좋은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겠지요.

소위, 적폐청산이 이 시대의 화두입니다. 적폐청산은 구체제에서 이익을 얻던 기득권세력을 적대세력으로 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이들은 법, 사회체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며, 심지어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반면,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온적이며, 기득권 세력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는 개혁에 성공하지만,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한다고 하였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로 실패한 사례가 바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입니다.

도미니크 교단 수도사였던 사보나롤라는 누구보다 도덕적인 사람이었으며 연설능력도 출중했다고 합니다. 사보나롤라는 로마 교황청, 귀족의 부패와 탐욕을 비판하며 군중의 편에 섰습니다. 개혁을 시도했던 사보나롤라. 그러나, 개혁이 그리 쉬운 것이던가요? 더구나 상대는 법과 사회 체제를 쥐락펴락하는 자들이며, 민중은 겁이 많고 변덕스럽습니다. 민중은 기적을 바라면서도 미온적인 지지만을 보냈고, 지지부진한 개혁에 쉽게 싫증을 느끼며 사보나롤라에게 등을 돌립니다. 민중에게 버림받은 사보나롤라는 교황청과 귀족의 먹잇감이 되었으며, 결국 화형으로 그 삶을 마감합니다. 사보나롤라에 대해서 실패한 개혁가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미치광이 수도사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사보나롤라’를 통해 누군가를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 떠오르시겠죠?

니콜로 마키아밸리/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

저는 지도자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도자는 도덕적이어야 하며, 모두에게 온화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도덕적이며 온화하고 정의로웠던 지도자들이 몰락하기 쉽다고 말합니다. 로마 황제 ‘페르티낙스’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인간적이었지만, ‘페르티낙스’가 권력을 잡기 전, 이미 방종한 생활에 젖어있던 군인들은 오히려 그에게 적대감을 가졌습니다. 귀족, 군인이 부패했는데 선한 지도자가 이를 개혁하려고 하면, 그들은 지도자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p292). 군주의 인간적인 모습, 정의를 사랑하는 선한 모습이, 경우에 따라서는 민중들을 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통찰은 저에게는 불편한 반전이었습니다.

요즘 드루킹 스캔들로 한창 시끄러운데요. 드루킹 스캔들로 김경수라는 정치인은 대선급 주자로 올라섰습니다. 정적들의 애초 목적은 드루킹 스캔들로 김경수를 궁지로 몰아넣어 지방선거에서 낙마시키려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군주론에서 이런 아이러니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운명의 여신은 세습군주보다 더 큰 명성을 원하는 신생 군주를 위대하게 만들 때, 그를 위해 적을 만들고 이들로 하여금 신생군주를 공격하게 만든다(p111). 그렇게 해서 신생 군주가 적대 세력을 극복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그 적대 세력을 사다리 삼아 더 높이 올라가게 해준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적대감을 교묘하게 조장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증대시킬 수 있다.” 정말 뛰어난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도자들과 소통을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국민과의 소통이 지배층의 치부를 드러내고, 그들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던 어떤 이들은 국민 앞에 높은 벽을 쌓았습니다. 지도자들이 국민의 외침에 귀 막고 눈 가렸을 때, 국민들은 아포리아(Aporia, 길이 없음)상태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을 외면한 그들의 최후도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고 말했다는데(p308),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겪어왔던 정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경구인 것 같습니다. “길을 내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유권자인 우리가 늘 지켜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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