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전문의 박성근의 마음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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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전문의 박성근의 마음이야기 (3)
  • 박성근
  • 승인 2018.07.2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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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근
정신과 전문의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약자를 위한 법과 판결을 바라며

지금은 뉴스에 덜 나오긴 하지만 여전히 미투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 역시 미투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꽃인 백장미 배지와 with you 팔찌를 가지고 있다. 현장을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란 그래도 비교적 여러 다양한 약자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직업이다. 2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약한 사람, 상처 입은 사람, 2차·3차 가해를 당한 사람들이었다.

증거주의로 인하여 많은 경우 강자가 아닌 약자가 그 증거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법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이 과정이 얼마나 약자들- 여성이나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들, 아동 등-에게 상처를 무수히 재경험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2차, 3차 가해를 당하게 만드는지 그 고통을 듣는 때가 많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그걸 미리 예상하고 수년 동안 무너지지 않도록 정신과 약을 주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재판에서는 부분 승리를 했지만 자신의 일상과 관계, 직업과 마음이 그 과정에서 다 무너지는 경우가 참 많았고, 어떤 이는 능력 있는 변호사 군단을 고용한 가해자에 의해 더 큰 모멸감과 수치심만 안은 채 패소를 하기도 했다. 검사라는 거대한 조직이 거의 한 몸처럼 움직여서 같은 편을 든다는 것, 판사가 아무리 양심껏 판결을 내도 항소심에서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는 것도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절감했었다.

작년에 화제가 됐던 의료사회학 분야의 전문가인 고려대 의대 김승섭 교수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약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길이란 그 약자가 노력해서 강해지는 것보다 사회 시스템이 바뀌고 사회에서 힘이 있는 기득권 조직 및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더 약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 공평하고 평등하게, 더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진단도 지적한다. 그 진단명과 진단을 붙일 수 있는 증상의 종류들을 언급하면서, 외상을 가했던 가해자나 가해 그룹과 시스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그냥 마치 개인이 약해서 병이 들었고, 개인이 노력하면 회복될 수 있는 것처럼 뉘앙스가 되어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늘 그렇게 말하고 주장해 왔지만, 그 책에서 더 논리적이고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의료 환경, 특히 정신과적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개인의 다양한 정신과적 증상들은 이름과 모양만 달리할 뿐 늘 반복되거나 악화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어느 분이 정신과 학회 강사로 와서 토로했던 이야기가 있다. 정신과적 약자들, 즉 환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악법이 이미 존재할 때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적어도 10~20년 정도 엄청난 연구비와 논문을 통해 완벽할 정도로 증명해야 한 개의 악법을 개선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법의 제정도, 법의 집행도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공평하고 정의롭게 바뀔 수 있을까. 그런 불공평과 억울함 때문에 정신적 문제들이 생겨서 오는, 원래 정상적이고 아주 평범했던 국민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회가 과연 언제쯤이나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일이 물론 공평하고 정의롭고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이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약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고 정해진 법 중에서 가장 따뜻한 쪽을 선택하는 것, 이전에 그것을 놓쳐서 엄히 내려졌던 판결을 다시 적절한 판결로 바꾸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들이 종종 판검사, 변호사를 비난하는 것은 여전히 이러한 기대가 살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예 기대가 없으면 비판도 없을 테니...

또한 이미 만든 법을 악법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법조인들이 한마음으로 나서서 그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논리적인 주장과 판결을 해줄 수는 없을까 상상해본다. 많은 명쾌한 논리적 주장과 명판결, 헌법 정신에 더 걸맞은 판결이 계속 나오길 기대해본다. 피해자의 마음과 상처,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헤아려줄 수 있는 존경받는 법조인들이 지금보다 더욱 많이 나와, 사회와 약자를 위해 소신 있는 주장과 판단을 많이 하여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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