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시대가 변하고 사회인식이 달라지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다툼이 생기고,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변하는 시대에 맞춰 법률적용 및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법률저널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사고, 그에 따른 판결, 그리고 기존 흐름에 반하는 새로운 해석에 주목해 로드맵처럼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특히, 담당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바라본 사건의 핵심과 이를 파악하고자 했던 노력 및 방법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첫 판결
그동안 시세조종 의도 입증 및 소멸시효 적용 여부를 두고 원피고가 첨예하게 공방을 벌여 왔던 11.11 옵션쇼크. 최근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 주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첫 판결로 기존 판결 흐름을 뒤엎는 의미를 가진다.
<배경설명> 11.11 옵션쇼크란? |
소멸시효의 완성시기 결정...피해사실 ‘안 날’이란?
뉴스 생산 시점이 아닌 판결이 난 날로부터 ‘안 날’ 인정
재판부, 소멸시효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판결
소멸시효 완성으로 기각 경향 배척한 첫 판결 의미 커
지난 6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6민사부는 개인투자자 11명이 도이치은행과 도이치증권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6억 여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번 소송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증권 시세조종 사건에서 많이 문제되고 있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이번 판결로 인해 금융감독기관이나 검찰의 수사를 발표한 때가 아니라 민형사 재판 판결이 선고된 때로 보았다는 점이다.
현대사회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피해 및 범죄사실에 대한 인지는 곧 뉴스가 생산된 날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즉각적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의 기점 적용을 두고 ‘뉴스가 생산된 날’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러한 논리로 피고들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주장했다. 시세조종 및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3년의 소멸시효가 도과돼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원고들은 이 사건 시세조종은 매우 복잡한 행위로 이뤄져 있어 전문가들도 그 적법성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렵고, 더군다나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피고들이 시세조종을 결단코 부인하고 있었다는 점, 소멸시효제도의 취지 등을 주장하면서, 최소한 1심 판결이 선고된 2016년 1월까지는 단기소멸시효 3년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원고들이 이 쟁점에서 지게 되면, 2014년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피고들의 시세조종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 쟁점을 두고 원고와 피고들이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 피고 주장 “손해배상 청구가 소멸됐다” 구 자본시장법 제177조 제2항에 따라 ‘청구권자가 제176조를 위반한 행위가 있었던 사실을 안 때부터 1년, 그 행위가 있었던 때로부터 3년’ 또는 민법 제766조 제1항에 따라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도과하면 시효로 소멸한다. 그런데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가 있었던 지난 2010년 11월 11일로부터 3년이 도과해 이 사건 소가 제기됐고, 또한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가 있었던 당일 ‘피고들의 주식 대량매도로 인해 코스피200지수가 급락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피고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 2011년 2월 23일 금융위 및 금융감독원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피고들 직원들의 시세조종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 고발, 정직요구,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부과하기로 결졍했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해 8월 19일 검찰에서도 ‘피고들의 직원 및 피고 도이치증권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으며, 원고들은 2010년 11월 11일 또는 늦어도 2011년 8월 19일에는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잘 인식했다고 할 것이다. 이 사건 소는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됐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 |
◆ 원고 주장 “개인이 금융범죄 사실 판단하기 어려워” 피고들의 시세조종행위에 의한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손해의 발생 및 가해 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있다는 사실까지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 검찰의 기소가 있었다 하더라도 피고측이 시세조종혐의를 극렬하게 다투며 부인했고, 피고 도이치 증권에 대한 판결 선고까지 무려 수년 간 심리가 계속된 점에 비춰 보면, 위 공소제기 발표시점에 원고들이 이 사건 시세조종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의 존재를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 원고들로서는 피고 도이치증권에 대해 자본시장법위반에 대한 유죄의 형사판결이 확정될 때 비로소 손해 및 가해자를 구체적,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현재까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했다. |
담당 변호사가 말하는
사건의 핵심 및 how to ‘법률적용’
김형우 법무법인(유한)대륙아주 변호사
사법연수원 39기, 37회 공인회계사시험 합격
이번 사건은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두고 양측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인 사건이다. 특히 증권 시세조종 사건에서 많이 문제되고 있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인 ‘안날’을 금융감독기관이나 검찰이 조사 수사결과를 발표한 때가 아니라 민형사 재판 판결이 선고된 때로 보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단기소멸시효에서 '안날'을 언제로 볼 것 인지이다. 이는 민법상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에서 반드시 문제되는 쟁점이다. 인터넷이 발달했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시골 오지에 있는 사람들도 다 알게 된다. 뉴스화 됐다고 '안날'이라고 인정할 경우, 자칫 손해배상청구권이 쉽게 소멸될 위기에 놓여 있다.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추상적인 불법행위사건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불법행위 수법도 복잡하고, 정당한 거래인 것 같은 외관을 띄고 있어서 불법행위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소멸시효 쟁점에 관한 대법원 판례 하급심 판례를 모두 조사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판결사례까지도 조사해 이 사건 사실관계와 비교 대조했다. 이를 통해, 판결 선고시까지는 단기소멸시효가 진행된다 볼 수 없는 합리적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판결은 소멸시효제도를 적용함에 있어서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결은 다른 금융사건에도 피해자 구제의 폭이 넓어지는 등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산 넘어 산, 손해액 산정
정상주가 산정을 두고도 첨예한 공방이 있었다. 원피고 모두 각자 전문영역 교수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법원이 한국거래소에 감정을 촉탁했을 때에도, 감정사항을 두고 원피고가 첨예하게 공방을 벌여 정상주가 산정에 1년 이상이 소요됐다. 그 후에도 피고들은 한국거래소 감정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력히 버텼다. 피고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원고들 변호사들도 외부 전문가들의 조력을 얻어 열심히 공부하면서 대응했다.
▣ 손해배상책임 범위 |
김형우 법무법인(유한)대륙아주 변호사
interview 재판부는 한국거래소가 제출한 4가지 의견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수치, 즉 252.5를 인용했다. 원고들 변호사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원고들이 재판부의 결정에 수긍하고, 사건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판결을 내려야 하는 법관도 금융전문가가 아니다. 어려운 사건일수록 쉽고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는데 노력했다. 필요한 경우 일상생활에서의 사례에 비유해 설명했다.
사실 사건이 많이 어렵다. 그래서 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다. 에너지와 시간, 집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성세대보다는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렵다고 주저 말고,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공격적으로 덤볐으면 좋겠다.
시세조종 의도 입증
‘유죄입증 난관’ 주범 한국에서 도주...공범만 남은 상태
검사는 기소유지, 민사변호사들 연구결과 ‘공유’
옵션쇼크 사건에 대해 민형사 재판이 동시에 진행됐다. 도이치뱅크의 시세조종 의도를 입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이미 금융감독원 조사관과 검찰이 발 빠르게 움직여 입증자료를 많이 확보해 놓았기에 사건의 실체에 다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쪽의 결과가 다른 쪽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소송이었다. 형사재판에서 도이치뱅크 소속 범인들이 모두 도주하고 한국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한국도이치증권의 임직원에 대한 재판만 진행됐다.
김형우 법무법인(유한)대륙아주 변호사
사법연수원 39기, 37회 공인회계사시험 합격
interview 주범이 아닌 공범의 경우, 주범의 범죄를 입증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기에 추가로 공범이 범죄에 가담하였다는 것을 입증해 내야했다. 주범 재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공소유지를 훌륭하게 해 냈고, 유죄를 입증해 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희는 검찰의 수사와 공소유지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검사 변경이 있는 경우, 새로운 검사에 대한 사건 설명, 자료 준비, 프레젠테이션 작성 준비 등의 업무를 도왔다.
민사소송에서는 형사사건 기록의 핵심내용을 쉽게 정리, 민사재판부에 제출하는 것과, 정상주가를 산정하는 일이 중요했다. 민사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서로 연구 결과물을 공유하고,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수차례 했다. 변호사들이 서로 공조하여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는 드문 편인데 이번에는 공조가 참 잘된 편이다.
▣ 11.11 옵션쇼크 조사 및 수사 경과 |
이번 소송의 원고측 대리인인 김형우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소멸시효 쟁점 심리에 만전을 기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며 “이번 소송에서 2015년 12월 말 또는 2016년 1월부터 비로소 3년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한다는 판단을 했는데,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를 적극 고려해주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주범이 한국에서 도주한 상태에서 공범의 유죄 입증이 쉽지 않았던 소송이었지만,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수사로 실체에 다갈 수 있었다며 공로를 돌렸다.
또한 도이치뱅크의 시세조종행위가 없었을 경우 과연 정상주가가 얼마가 되었을 것인가를 두고 첨예한 공방이 벌어졌는데,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들도 서로 협력을 잘 해, 나름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는 것.
결국, 원고 승소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수사기관과 변호사들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조한 결과가 아닐까.
이아름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