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행정절차법 20주년, 우리도 ‘행정통합법전’ 만들까
상태바
한국 행정절차법 20주년, 우리도 ‘행정통합법전’ 만들까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05.04 1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차산업혁명시대 행정절차법제 개선방안 컨퍼런스
박정훈 교수 “국정농단은 ‘행정’농단, 행정 바꿔야”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한국법제연구원(원장 이익현)이 주최하고 행정자치부(장관 홍윤식)와 법제처(처장 제정부)가 후원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 행정절차법제 개선방안’ 컨퍼런스가 지난 달 27일 오후 2시부터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로열볼룸에서 열렸다.

이번 컨퍼런스는 특히 지난 2016년에 제정된 프랑스 행정절차법전을 중심으로 그 내용과 쟁점을 살펴보고, 이로써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적합한 한국형 행정절차법제도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이 날 컨퍼런스는 크게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됐다. 전주열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제1주제인 ‘프랑스 행정절차법전 제정 배경 및 총론의 주요내용’을 발제했으며, 왕승혜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제2주제인 ‘프랑스 행정절차법전상 일반처분, 행정심판’을, 권채리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제3주제인 ‘프랑스 행정절차법전상 정보공개’를 각각 발제했다.

각 주제에 대한 지정토론자로는, 제1주제에 전훈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와 이재훈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제2주제에 강지은 서울대학교 박사와 권영우 행정자치부 사무관, 제3주제에 양명석 행정자치부 사무관이 각각 나섰다.

한편 세 개의 주제에 대한 발제 및 토론에 이은 마지막 세션에서는, 박균성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회 아래 포디움 방식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 세션의 토론자로는 김중권 중앙대 법전원 교수, 채우석 숭실대 법학과 교수, 권태웅 법제처 법제심의관, 김현희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여했다.
 

▲ 포디움 방식 토론 참여자들 / 사진 김주미 기자

“프랑스의 ‘행정’은 시민이 주도해 통제할 대상”

전주열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16년에 제정된 프랑스 행정절차법전 전체 5권 중 1권에 해당하는 부분과 법전 제정배경을 설명했다.

먼저 그는 명실공히 ‘법전화의 나라’라고 하는 프랑스에서, 행정의 법전화 작업이 2016년이 되기까지 이뤄지지 못한 원인에 대하여 나름의 견해를 제시했다.

프랑스의 행정법 자체가 갖고 있는 특징과 행정에 대한 프랑스만의 독특한 관념이 프랑스에서의 법전화 작업을 그토록 지연시켰다는 것.

프랑스 행정법은 최고행정법원인 국사원(꽁세이데따)이 생산한 판례를 중심으로 법리가 축적되고 논리가 정립되는 방식으로 발달해 왔다.

이 국사원은 우리의 행정법원과는 기능이 많이 다른 바, 애초에 대통령이나 총리 옆에서 행정에 대한 자문을 하는 역할로 시작되어 발전했다는 것이 전주열 부연구위원의 설명이다.

행정법전화 지연의 또 하나의 원인이 된 ‘행정 자체에 대한 독특한 관념’이란, 프랑스에서는 행정을 시민이 주도해서 통제할 대상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전주열 부연구위원은 “(프랑스는) 행정을 자연적 보편성을 갖는 성격으로 보지 않고, 개별적 사안에서 시민들과 정부 간에 합의하기에 따라 그 기능과 성격이 바뀌는 것으로 본다. 시민과 정부의 관계에 따라 행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유형화하고 일반화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본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행정법이 개별법률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프랑스 역시 행정에 대한 개별 법률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정부차원에서의 법제화 시도도 1995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큰 목차 하에 개별 법률들이 통합됐고, 이것이 2016년부터 시행된 것.

전주열 부연구위원은 “(이렇게 통합된) 법전의 제목을 ‘행정절차법’이라고 하지 않고 ‘국민과 행정 간의 관계에 관한 법전’이라고 한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라며 “법전의 명칭부터 시민과 ‘주고 받는’ 관계, 즉 소통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는 생각을 밝혔다.

“프랑스로부터 우리 행정법이 나아갈 방향 찾아야”

경북대 전훈 교수는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를 다시금 언급하며 “4차 산업혁명과 행정절차법제 간 연관성을 찾자면 ‘소통’일 것”이라며 “새 법전이 어떤 틀을 기준으로 짜여졌느냐를 보면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데, 프랑스 행정법전은 정부와 시민 간 ‘소통’을 중시하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행정절차법의 나아갈 방향도 이를 바탕으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는 전자정부나 인터넷의 발달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이라든가 행정 현대화의 중요성을 인식해 가는 단계에서 만들어진 이번 새 법전은, 시민사회의 요구와 전반적인 국가개혁 필요성에 발 맞춘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이재훈 부연구위원은, 프랑스가 아닌 독일에서 공부하여 다른 시각을 가진 입장에서 몇 가지 의문점을 던졌다.

먼저 전주열 부연구위원이 설명한 입법 배경에 대해 “프랑스만 유럽연합 내에서 독특하게 행정법전이 없었는데, 프랑스가 유럽화의 영향으로 법전화 트렌드에 맞추느라 제정을 추진한 것이 아닌지”란 물음을 던졌다.

나아가 “이번 프랑스 행정법전은 의회가 국사원에 위임입법의 권한을 주고 국사원이 오르도넝스(명령, 결정) 형태로 만든 것인데, 의회유보 법리가 확고히 자리잡힌 독일 등 대륙법계에서는 민주적 정당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어보인다”는 시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 주한프랑스대사관 에티엔-롤랑 피에그 수석참사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거부 간주’에서 ‘승인 간주’로의 변화...“획기적”

제2주제의 발제를 맡은 한국법제연구원 왕승혜 부연구위원은 이번 프랑스 행정법전을 ‘유럽행정절차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소송외적 행정절차에 관한 사항에 적용되는 현행법률들 및 확립된 판례들을 집대성해 법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법전 제정이 수권법률 형태로 이뤄진 절차에 대하여는 “정부제출입법안 형식으로 의회 하원에 제출하면서 입법평가보고서를 함께 제출했고, 법전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 비준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해 의회로부터 즉시 비준을 받아 발효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법전에서 행정계약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행정계약은 조달법전에 따로 담고 있는데, 현재 이 조달법전은 폐지된 상태고 2018년까지 새로이 구성할 계획에 있다는 것.

왕승혜 부연구위원이 발제를 맡은 부분 중 획기적인 사항으로는, 1990년 법률제정 당시 ‘행정행위를 신청하고 그로부터 2개월간 행정청으로부터 응답이 없으면 거부된 것으로 간주’했던 규정을 2013년 올랑드 정부에서 ‘승인 간주’로 바꾼 것이다.

이와 함께 승인 간주의 예외 규정을 시행령으로 위임했는데, 이 예외에 해당하는 행정결정의 목록 총 1,500여개를 정부포털 사이트에 제공하고 있다.

왕승혜 부연구위원은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 깔린 사상은 ‘침묵은 동의와 같다’”라며 다만 이러한 승인 간주는 행정심판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녀는 이번 법전제정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부분은 ‘행정행위 효력의 소멸’ 부분이라고 짚었다.

결과적으로 ‘행정행위를 유형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게 되어 철회와 취소에 대해서만 규정했다고.

한편 프랑스는 ‘행정행위’ 자체에 대한 구분을 ‘권리를 설정하는’ 혹은 ‘권리를 설정하지 않는’을 기준으로 하는바, 유럽연합이 ‘이익이 되는’ 혹은 ‘이익이 되지 않는’을 기준으로 하는 것과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 행정절차법전, 우려되는 지점은...

제2주제에 대한 토론자로 나선 강지은 서울대학교 박사는 이번 행정절차법전에 대해 “단순히 ‘좋은 행정’의 구현을 뛰어넘어 ‘신중하고 단순화된 행정’을 바라는 사회의 요청을 실현한 것”이라고 평했다.

특히 가독성을 높여 시민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산재해 있던 판례와 법원리, 개별법률들을 집대성한 것이 주는 의미가 가장 깊다고 봤다.

강지은 박사는 이번 행정법전에서 행정계약이 제외된 것에 대하여 우려의 시각을 내비치며 “행정에서 행정계약은, 행정이 계약이라는 틀에 숨어 일방적 행정행위를 누릴 경우 시민의 불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행정계약이 체결된 이후 시민들이 계약당사자 사이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의 경우 독립적으로 ‘행정절차법’이 있는 것처럼 ‘행정계약법’을 별도의 법률로 제정해 이해관계인의 참여를 계약체결 이전부터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또한 그녀는 거부 간주 규정이 승인 간주로 변화한 것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큰 충격”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행정이 워낙 느린 것으로 유명했기에 행정간소화 차원에서 이런 변화를 준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신중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

행정이란 언제나 신청 당사자에만 국한해서 고려될 것이 아니라, 신청자 아닌 여러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기에 행정청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체적 판단을 할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러한 ‘승인 간주’ 규정을 두면 그 단계가 몰각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행정법상 신의성실 원칙은 행정과 시민에 대하여 적용되는 그 강도가 각각 다르다. 행정의 적법성은 언제나 확고히 요청되며 그에 대하여 사법적 통제가능성이 존재하는데 반하여 어떠한 행정결정을 요구하는 시민이나 기업이 언제나 선의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행정민주화 위한 요소

제3주제를 발제한 권채리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강한 행정의 국가로서 이러한 불평등한 국가와 시민 간 관계가 필연적으로 국가의 행정비밀주의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1978년 정보공개법을 제정한 것은 이러한 행정비밀주의 타파를 위해서라고.

이 법은 행정의 기초가 되는 문서에 대해 국민이 공개를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이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권리의 근거를 마련했는데, 같은 해 함께 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은 이번 행정절차법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법의 제정으로 프랑스는 행정민주화에 큰 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고 평가했다.

권채리 부연구위원은 정보공개법의 하이라이트가 비공개대상정보에 대한 규정이라고 소개했다. 이 중 ‘정보공개청구권 제외대상’은 크게 삼분해서 규정돼 있다.

‘미완성 정보’와 ‘공적으로 전파된 정보’는 공개청구에서 제외되는데 특히 실무상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행정결정과정 중에 있는 예비적 단계의 정보’다.

그녀는 “이를 재량사항으로 하지 않아서 실질적으로는 애초에 청구권이 배재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프랑스의 강한 행정부를 단적으로 나타낸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프랑스의 정보공개위원회는 독립행정청으로서 재결권이 없지만, 행정소송으로 가기 위해선 정보공개위원회 의견제시 청구가 의무적 전치사항이라 실질적으로 재결례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위원회제도에 전문성과 신속성을 도모하기 위해 프랑스는 현재 ‘정보공개책임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바, 현재 1,600명 이상의 정보공개책임관이 국민과 정보공개위원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입장은?

제2주제의 토론자로 나선 권영우 행자부 사무관은 “올해 행정절차법 시행 20주년을 맞았는데, 7차례 일부개정을 거쳤으나 전부 개정된 적이 없어 큰 골격은 20년 전 그대로”라며 “20년이 지나면서 많이 변화된 행정환경에 맞춰 법개정의 필요성이 크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이전의 국민에 비해 지금의 국민은 권리의식과 전문성, 행정참여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점’을 들었다. 나아가 IT 등 기술혁신이 상당히 진전된 점도 큰 변화라는 것.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법 개정을 함에 있어 ‘행정이 하나 변했을 때 그것이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실제 국민 삶의 현장에서 바람직한 변화로 느껴지는 행정의 개선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제3주제 토론자로 나선 양명석 사무관은 “1996년 제정 당시에는 정부 중심의 행정이었던 법률을 이번 법개정에서는 철저히 국민 중심이 되도록 노력 중에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국민들이 우리 행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은 것이 ‘국민과 소통이 안 됨’ 그리고 ‘정책결정의 투명성이 없다’는 점”이라며 “이런 결과를 받아들고 정부는 깊이 자성했다”고 전했다.

기존에는 정보공개 자체에 대한 모든 판단이 정부를 기준으로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는 빅데이터 기법 등을 활용해 판단 단계부터 국민 중심으로 맞추어 국민이 주인이라는 인식을 모두가 느끼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국민이 원하는 행정 만들 때”

한편 이 날 사회를 맡은 서울대 법전원 박정훈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된 ‘국정농단’ 사태는 엄밀히 말해 ‘행정농단’이라며 바뀌어야 할 것은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우리 정부에서는 ‘행정법’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프랑스의 행정절차법전 집대성의 경우를 참고해 차제에 ‘일반행정 통합법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가 수차례 혁명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행정을 만들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수차례 촛불을 통해 기반을 만들어 놓은 만큼 이제는 국민이 원하는 행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