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원 입교식 스케치-첫 출발 다짐하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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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원 입교식 스케치-첫 출발 다짐하던 마음으로...
  • 법률저널
  • 승인 2004.04.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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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꽃들이 따뜻한 바람을 타고 저마다의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앞 다투어 알리고 있다.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건만 그의 유명한 역설적 표현을 단번에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상큼한 봄의 기운이 날로 더해진다. 멀게만 느껴지던 봄이 왔듯이 교육원에 입교할 일자도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밀린 과제물을 작성하고 사이버 강의를 듣느라 벼락치기 숙제하는 꼬마아이의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보기도 했다.

드디어 입교일 당일. 언제나 새로운 시작은 가슴 설레는 흥분과 약간의 긴장 섞인 두려움이라는 이중적인 기분을 맛보게 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된 이 미묘한 떨림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까지도 은근하게 지속되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교육원을 향해 가면서 사람들이 나를 보며 '저 친구 오늘이 첫 출근이구나, 새내기 티가 확 나는걸'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듯 하여 혼자서 얼굴이 붉어져 쑥스러워진다. 지하철로 세 정거장밖에 되지 않은 짧은 거리였으므로 이런 나의 망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금 늦은 듯 하여 황급히 지하도를 빠져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교육원에 들어서자 이미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웅성거리기를 30여분, 10시쯤이 되자 명패와 안내책자를 교부받은 후 강당에 착석하여 교육원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오늘 일정에 대한 공지, 그리고 앞으로의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약 2시간에 걸친 설명이 끝나고 원내 교육생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오후 1시부터는 각 분임별 모임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다. 한 분임은 대개 15 내지 16명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성별, 직렬별, 연령별로 배분을 한 것으로 보였다. 분임실에서 모두들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 인사를 하는데 마치 스터디를 구성하는 첫모임 같은 느낌이었다. 차츰차츰 어색함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입교식 준비를 위해 다시 강당으로 향하였다.

입교식은 3시부터 시작되어 굉장히 엄숙하고도 긴장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행정자치부 장관을 비롯하여 많은 고위 관리자들이 참석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진정으로 공직에 첫 발을 내딛는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서를 하는 식순에 가장 의미를 두고 싶다. 때로는 형식적인 절차가 실질적인 효과를 유발하기도 하나 보다. 그저 손을 올리고 마이크에서 울리는 선서의 내용을 듣기만 했음에도 공직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자긍심과 앞으로의 성실한 공직생활에 대한 책임감이 절로 우러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바늘이 떨어져도 소리가 날 것 같이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두의 모습을 보면서 다들 나와 비슷한 감정이려니 하는 마음과 더불어 이러한 초심을 흔들리지 말고 지켜야겠다는 의무감이 무겁게 가슴에 자리 잡았다.

장관님과 교육원장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시합격이 업무능력과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 인격 등에 긍정적인 합격점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앞으로 더욱 성실하게 자신을 갈고 닦아서 국민과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공직자가 되라는 말씀은 은연중에 박혀있던 내 안일함과 교만을 질책하시는 것 같아서 가슴이 뜨끔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장관님 특강은 간간이 웃음이 터지는 아주 자연스럽고 유연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다. 말단 사무관시보를 대하는 최상급자의 어투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자녀들에게 하듯이 소탈한 표현을 쓰셨기 때문이다.

입교식이 끝난 후에는 국립묘지 참배를 위해 버스를 타고 동작으로 향하였다. 오후부터 흐려진 날씨는 어느새 봄비를 보슬보슬 뿌리고 있었다. 30여분 후에 도착한 국립묘지에는 이미 각 군의 의장대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면서 대오를 갖춘 채 봄비에 몸을 적시고 있었는데 눈동자 하나 돌아가지 않는 엄숙함에 그렇게 웅성거리기 좋아하던 우리의 소음도 제 자리가 아님을 알았는지 어디론가 사라졌다. 국립묘지 참배는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것이라고 한다. 국립묘지에 처음 가보는 입장이었기에 공직에 내딛는 첫걸음에 의미 있는 순서로 다가왔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팀워크훈련이 있었다. 이벤트회사의 레크리에이션 전문가를 초청하여 갖가지 게임과 율동, 유머감각 테스트 등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의식, 적극적 참여의 중요성 등을 배양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상황에 맞추어 기발한 언행으로 우리의 웃음보를 초단위로 터뜨려준 강사의 언변이 너무나 부러워 관련 서적을 탐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팀워크훈련을 마지막으로 입교일의 모든 공식일정을 마치게 되었고 시계는 9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보냈던 교육원의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촌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첫 퇴근 소감이 어때?' 출근소감 대신 퇴근소감을 묻는 엉뚱함에 웃음이 나오고 일부러 전화해준 마음이 고마웠는데 정작 내 대답은 '그냥 피곤해'였다. 집에 와서 반성하며 글을 쓴다. 쉬운 말이지만 결코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초심 지키기. 오늘은 아마 침착하지 못하고 조금은 감정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술기운에 취한 감정이 아니므로 행여 나중에라도 부끄럽지 않은 감정이리라 생각한다. 성실과 겸손이라는 이 초심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장주성전문기자·제47회행시재경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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