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이성진 기자] 사법시험, 행정고시 등 내로라는 큼직한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형성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일대의 고시촌. 이 곳 관계자들에 따르면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서울대학교가 관악산 아래로 이전할 때와 역사를 같이 한다고 한다. 30여년의 역사다.
현재는 사법시험 선발인원 점진적 감소 및 폐지 예정에 따라 고시생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5급공채, 법무사, 법원행시, 입법고시, 변리사, 공인노무사, 경찰간부 등 다양한 분야의 수험생들이 모인 전국 최다 규모의 인재 저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 십 수 년 이곳을 지켜 본 바로는 이름값만큼이나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다. 어느 시험을 준비하든, 상호 존중이라고 할까. 사법시험, 공직, 공인회계사, 소방간부 등 어느 시험을 준비하든, 고시생간에는 상호 인정과 배려라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작용했다. 그래서 바라는 시험에 합격하면 스쳐 지나간 인연만으로도 서로 축하해 주고 불합격하면 내심 응원해 주는 모습들이 짙게 배어 있다.
근래에 들어서 예전에는 극히 드물었던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들도 제법 눈에 띄지만, 누구도 텃새 없이, 특별히 개의치 않고, 하나의 변화로 받아들일 뿐이다. 합격, 불합격, 포기, 재 도전 등 빠져 나가고 새로 들어오는 빠른 순환구조지만 마치 물 흐르듯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곳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곳 수험생들이 무엇인가에 위기의식에 쫒기는 듯한, 강박감을 갖기 시작했다. 말을 빌리자면, 로스쿨이 잔잔한 호수에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나. 출범 7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로스쿨 제도를 두고 긍정적, 부정적 시각이 병존하고 이곳의 반응은 후자 쪽이 더 가깝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로스쿨이 다른 시험(고시제도)의 존재 목적을 상실케 한다는, 작고 소박한 밥그릇 지키기의 아우성이다.
로스쿨을 통한 변호사자격은 만능자격증이라는 인식에서다. 이런 인식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의 로스쿨 제도는 소위 ‘싹쓸이’ 만능자격증이라는 것이 불만의 요지다. 마치 ‘우린 각자의 능력과 소신에 맞춰 원하는 시험에 도전하지만 로스쿨이 뭔데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노무사, 공무원까지 모든 영역까지 침범하느냐’와 같은 투덜거림이다. 로스쿨 출범 직후부터 로스쿨에서 주장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영역 확대 및 다양화에 대한 반항이다. 유사법조직역 흡수 주장은 기존 법조계에서도 주창해 왔지만 로스쿨 측의 주장은 도를 넘어 섰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로스쿨은 변호사들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행정고시 폐지, 경찰 및 소방에서의 변호사 출신 특채 확대, 지자체 및 공기업 등의 변호사 특채 확대, 유사법조직역 변호사로의 일원화 주창 등 많은 것을 주장해 왔고 상당수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이곳 고시촌에서 각양각색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는 로스쿨이 마치 손등에 꽂힌 가시마냥 미운 존재다.
이미 수험생들 사이에는 “사법시험이 무너지면 모든 고시가 무너질 것”이라는 긴장감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일까. 애써 현실을 외면하던 고시생들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하나 둘 모이더니 사법시험 존치 모임이라는 단체를 결성, 급기야 공청회 피켓 홍보 및 기자회견까지 나섰다. 로스쿨 출범 직후부터 로스쿨 학생회가 조직적으로 이같은 활동을 해 왔던 터라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비록 극소수 인원이 본격적 대외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여러 고시생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소용돌이와 같은 로스쿨 제도, 여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난파 직전 일엽편주와 같은 사법시험과 그 외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 처절하리만큼 짠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