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최도선 시인의 “몽돌 애가”와 “길 위의 시인” 그리고 전단지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최도선 시인의 “몽돌 애가”와 “길 위의 시인” 그리고 전단지
  • 오시영
  • 승인 2015.02.27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이 되는 지난 2월 25일 경복궁과 신촌역 인근 건물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이 살포되었다. 살포자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단체명을 사용하는 그 누군가였다. 전단지 앞면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불법 부정선거 의혹 사실로 확인. 박근혜 씨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라는 살포자의 질문이, 뒷면에는 박 대통령의 얼굴 그림 위에 “그러니까. 사퇴라도 하라는 건가요?”라고 반문하는 박 대통령의 질문에 “응” 이라고 대답하는 살포자의 답변이 대꾸 형식으로 적혀 있다. 지난해 12월 홍대입구역 및 부산 등지에서 비난 전단이 뿌려진 이후 박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삼은 전단지가 간헐적으로 뿌려지고 있다. 수사기관은 전단지 살포의 확산을 방지할 목적에서인지 전단지 실포 자체는 형법상 범죄가 되지 않지만, 전단지를 살포하기 위해 들어간 건물에 대한 무단침입의 책임을 물어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다거나,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므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엄포와 함께 행위자 색출에 나서고 있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며, 만일 북한의 김정은 지도자가 조선티브 등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을 집중 방송하고 있는 국내 언론사 등을 명예훼손죄로 고발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법률가적 코믹상상력이 발동되기도 한다. 우리 형법은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더 나아가 국제주의를 취하고 있어, 모든 사람이 형법의 보호대상자가 되고 형법의 처벌대상이 되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 자신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나서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혐의없음으로 처리될 것이지만 말이다.

모든 사고의 관점은 자기중심이다. 자기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까닭에 개별성과 보편성의 혼재 속에서 개별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우리는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보편성으로 치부해 버리면 무시되는 개별성은 필연적으로 반항하게 되어 있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전단지 살포 현상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개별성과 보편성의 충돌 속에서 “오늘의 정의”와 “역사의 정의”가 불일치할 경우 종국적으로 “역사의 정의”가 승리한다고 믿고 있다. 역사의 정의를 거슬리면 당대에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지 모르겠지만(물론 당대에도 엄청난 욕은 뒤에서 얻어먹는다) 역사는 심판자가 되어 그를 역사 속에서 재평가하게 된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는 지난 12일, 180개 대상국가 중 우리나라가 60위라는 “2015세계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하였다.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6년 31위 최고지수까지 올랐던 자유지수가, 이명박 정권 하의 2009년에는 69위까지 추락했다가 2013년 초에 50위인 채로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 왔고, 2년이 경과한 지금 다시 60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완구 국무총리의 언론관이 그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지만, 청문회 이후에 밝혀진 추가대화내용을 통해 그의 언론관에 진짜 더 큰 심각성이 있음이 밝혀졌지만, 이미 국회 동의 후 대통령 임명까지 종료되어버렸기에, 그가 향후 민주주의에 부합되는 언론관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맞춰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임이 밝혀졌다. 32% 남짓의 지지율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한 사실은 “비서실장 부재”라는 현실의 거울로 투영되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표가 수리되었고 청와대 출입증도 반납받았다고 보도되었다. 그런데 아직 그 후임자가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여태까지 언론에서 거명되던 인사가 아닌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이러한 보도를 접하면서, 대통령이 자신의 비서실장조차 제대로 임명하지 못할 정도로 인사 풀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생각 있는 국민들은 참으로 개탄하고 있을 것이다. 하기야 국무총리도 안대희, 문창극 후보의 자진사퇴 후 그들보다 더 흠도 많고 탈도 많은 이완구 총리가 상처 투성이인 채로, 표결에 참가한 여당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반대표를 던진 표결결과가 드러났으니, 오죽하겠는가. 비서실장을 임명함에 있어, 그에게 일방적 지시를 할 것인지, 아니면 그의 조언을 들을 것인지를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혜로운 덕장은 참모의 조언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여태까지 보면, 청와대가 “경찰과 검찰 및 국정원”을 물리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비서실장을 임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및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죄 기소를 둘러싸고 빚어진 현상에서 능히 읽을 수 있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석연찮은 중도하차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은 다행히(?) 무죄판결로 피해갔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앞의 전단지 사건의 단초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위 지지율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검찰 등 수사기관을 장악해서 부정과 불법을 덮으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반자들을 일벌백계함으로써 역사의 정의를 오늘의 정의에서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나간다면, 영혼이 죽어 있는 충견 같은 비서실장이 아니라, 국민의 옳은 소리를 과감 없이 전달하는 충직한 비서실장을 임명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겠다는 겸손한 생각이 있다면 훌륭한 비서실장 후보자는 지천에 널려 있으리라 본다.

거제도에 가면 유명한 흑진주몽돌해변이 있다. 흑진주몽돌해변은 모래 아닌 새까만 몽돌로 가득하다. 몽돌이란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돌을 말한다. 천년 파도에 닳고 닳아 다듬어진 돌이 바로 몽돌이다. 최도선 시인의 “몽돌 애가”를 본다. “바람에 깎이고/ 물에 쓸리며/ 저희끼리 부딪고 부딪쳐/ 부서지고 깨지며/ 속속들이 까맣게 탄 낯빛// 해를 맞으며/ 파도소리에 지글지글 세상을 읽으며// 슬픔의 깊이에서 마음의 자릴 잡고/ 반짝반짝/ 해변에 누운/ 너를 물끄러미 본다// 누구에겐가 뜨거운 사랑 한 번 주지 못하고/ 세상 아픈 만큼/ 으스러져/ 둥글게 살아/ 몽돌이 된 너,/ 주소 하나 지니지 못하고/ 파도에 쓸려가는 너./ 세상에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전문, ‘서른 아홉 나연 씨’에 수록, 도서출판 지혜 간). 시인도 60이 넘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더욱 더 깊어지는 모양이다. 최도선 시인은 천년 세월 파도에 씻겨, 닳아질 대로 닳아진 몽돌을 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세월 속에서 부서지고 깨어지는 아픔을 실감한다. 인생들의 슬픔을 자각한다. 속속들이 까맣게 타들어간 낯빛에도 불구하고 세상 아픈 만큼 으스러져 둥글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몽돌에서 배웠음을 고백하고, 같이 함께 배우자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서 제대로 된 주소 하나 갖지 못한 채 파도에 휩쓸리는 몽돌을 향해 슬프면서도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냐며, 너는 너대로 아프고 나는 나대로 아프다며 서로 아픈 이들끼리라도 서로를 위로하자고 권한다.

최도선 시인의 같은 시집에 실린 또 다른 시 한 편을 본다. “몸으로 글을 쓰는 서정시인이 있다//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마른 땅을 밟아 보겠다고/ 비 그치자 땅위에 몸을 드러낸 지렁이/ 폭염에 질식하며 마지막 시를 쓰고 간다// 낯설지만 저승길은 환했노라고” (‘길 위에 낙서’ 전문, 같은 시집에 수록). 같은 시집에 실린 두 편의 시는 상이한 것 같지만 필자에게는 같은 감동으로 온다. “몽돌 애가”는 천년의 시달림이다. 깎임이다. 인내이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민초의 민낯이다. 심장 깊이 박힌 슬픔이다. 단단한 돌덩이 속에 감추어진 용암 같은 화산이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아픔을 응축한 내적 곤고함이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자기 헌신이다. 자기 사랑이다. 마음 열림이다. “길 위의 낙서” 역시 지렁이를 통해, 비온 뒤끝 습기를 찾아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아올라 환호성을 지르는 지렁이를 통해, 땅속의 어둠과 지상의 햇살줍기를 통해 빛으로 향하고자 하는 서민들의 아픔을 노래한다. 하지만 어쩌랴, 빛을 찾아 나온 저 지렁이 같은 민초는 햇빛의 뜨거움으로, 말라들어가는 지상의 목마름으로 타죽어 버리고 만다는 슬픔을 노래한다.

세상은 지렁이를 향해 그럴 것이다. “지렁이 주제에 감히 땅밖으로 나오다니,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햇살을 추구하다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주둥아리질을 해대는 다른 세상이 어찌 지렁이의 마지막 절규를 알겠는가? “폭염에 질식하면서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햇빛은 아주 밝았노라고, 환했노라고” 세상은 햇빛에 취해 환희에 찬 희열로 마지막 말라 죽어가면서도 행복해 하는 지렁이의 진실을 잘 알지 못한다. 땅속에서 습지만을 기어 다니며 배불리 먹고 사는 지렁이보다 햇빛에 말라 죽을지언정 나는 마지막 한 빛을 보았노라고 삶을 꿈틀대는 그 한 마리 지렁이의 영성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그 누가 감히 알겠는가.

취임 2주년을 맞은 날, 가장 최접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할 비서실장의 부재를 겪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도선 시인의 “몽돌 애가”와 “길 위의 시인”의 정신을 들려주고 싶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특히 서민들은 몽돌처럼 천년 세월을 깎이고 닳아지면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살아가고 싶어 한다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서도 수년 동안 일자리를 얻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실업자가 되어 고통받고 있다고, 어찌어찌해서 취업을 했지만 저임의 비정규직에 시달리며 몽돌이 되어 가고 있다고,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길 위의 시인”이 되어 한 줄기 빛을 향해 온 몸을 불태우고 있다고. 국가최고경영자로서 서민들의, 국민들의 이런 통증과 갈망을 제발 제대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길가에 뿌려지는 전단지 살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음으로써, 세계언론자유지수를 60위로 깔아 내릴 것이 아니라, 그 전단지를 가슴에 품고 “아 나의 어떤 정책이 실정이고,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정책이었구나” 하는 반성과 자성의 계기로 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살포자의 두 손을 맞잡고 “정치를 잘못해 미안하다, 잘 하겠다.”라고 진심을 털어놓기를 희망한다. 길 위에 뿌려지는 전단지를, 길 위의 서정시인이 되어 몽돌처럼 단단한 국민사랑으로 승화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아직 남은 3년은 “당신의 조언에 귀 기울이겠소” 라는 진심으로 임명하는 새 비서실장이 누군가인지에 의해 상징화될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세상이 그만큼 변화하고 있다. 대통령도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변화되기를, 그래서 남은 3년의 임기 동안 역사에서 평가받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