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업무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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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업무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3.10.1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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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갈수록 업무가 늘어나고 어려워진다. 실력이 줄어드는 탓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사건마다 검토하거나 고민하는 부분이 늘어만 간다. 경력이 늘고 경험이 쌓이면 사건 처리가 수월해야 하건만,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내가 단순해지는 것인지, 세상이 복잡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중 그야말로 눈에 번쩍 뜨이는 근사한 제목의 논문(‘A Simple Proposal to Halve Litigation Costs’, The Harvard John M. Olin Discussion Paper Series No. 513 (2005. 4.). http://www.law.harvard.edu/programs/olin_center/ )을 발견하게 되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숨에 읽어 나간다.
논문의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법경제학자인 David Rosengberg와 Steven Shavell이다. 일단 저자는 신뢰가 간다. 그들은 그 논문에서 법원업무를 절반으로 줄이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들은 소송비용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으나, 법원의 소송비용이란 법원이 부담하는 업무의 양으로 볼 수 있으므로 법원의 소송비용이 감소하는 것은 법원의 업무가 감소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제안하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제기되는 소 중 절반을 ‘무작위’로 골라 무조건 기각하고 나머지 사건만 진행하되, 진행되는 사건에서 인정되는 금액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인용하는 것이다. 제기되는 사건의 1/2만 진행되므로, 법원의 업무가 절반으로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래 진리란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제안은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과감하기에 ‘설마’하는 마음부터 들고 무언가 함정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먼저 예상 인용금액부터 살펴보자.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 1,000만 원인 경우 새로운 제도 하에서도 예상되는 인용금액은 같은 1,000만 원이다. 진행될 확률이 50%이더라도 인용금액이 2배가 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소가 제기되는 모든 사건의 평균적인 인용금액에도, 소송이 잠재적인 당사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도 변화가 없다. 가령 사고 발생 시 1,000만 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사건에서 잠재적인 피고가 사고 발생가능성을 2% 줄이기 위해 10만 원을 사용한다고 하자. 예상 배상액은 20만 원(= 2% × 1,000만 원) 감소하므로, 10만 원의 지출은 피고에게 유리한 일이다. 새로운 제도 하에서도 10만 원의 지출을 통한 예상 배상액의 감소는 20만 원(= 2% × 50% × 1,000만 원 × 2)이므로, 10만 원의 지출은 역시 피고에게 유리하다. 이는 과실상계로 인해 사고발생 가능성을 줄일 유인이 있는 원고에 대해서도 그대로 해당한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제도의 시행이 소 제기 전 화해(조정) 가능성을 늘린다는 사실이다. 원고의 경우 50%의 확률로 청구가 기각되어 전혀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되고 피고의 경우 50%의 확률로 인용액수가 2배가 되므로, 소 제기 전에 화해를 하려는 인센티브가 생기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가 현실적으로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재판청구권 침해로 인한 불공평 문제가 야기된다. 이에 대해서는 새로운 제도의 시행으로 소 제기 전 화해가 유도되고 경찰에 의한 무작위 단속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듯 ‘무작위’에 의한 청구기각, 2배의 인용금액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으나, 아무래도 불공평성 시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제도는 부동산 인도나 소유권 이전과 같은 비금전적 청구사건이나 형사재판에도 적용될 수 없다. 형사사건의 경우 잠재적 피고인에 대한 효과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특정 피고인의 처벌을 통한 범죄예방효과에 지장을 주고 처벌받지 않는 1/2의 피고인에 대한 피해자의 자력 보복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사하는 내용이 적지 않지만, 다분히 확률적인 관점에서의 추상적인 논의일 뿐이다. 이론대로라면 1/2의 청구기각, 2배의 인용금액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1/n의 사건만 진행하고 그 사건에서 인정금액의 n배를 인용하면 같은 효과를 달성할 수 있고 오히려 법원업무는 더 감소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n이 증가하여 무한대가 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이는 어느 한 사건의 진행가능성만 관념적으로 열어두고 나머지 사건 전부를 기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일하게 진행되는 사건의 인용금액은 무한대가 되는데, 이러한 제도의 시행에 찬성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현실적인 면에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더구나 나는 형사단독 재판을 맡고 있기에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당장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다. 사실 흥분을 하며 논문을 본 이유가 업무의 양이나 육체적 고단함 때문만은 아니다. 여유 있게 재판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 때문이다. 거의 매주 두 번씩 재판을 하면서도 매번 재판이 끝나면 아쉬움과 후회만 남고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다.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부터 ‘그 말을 왜 했지’ 하는 후회까지. 반성과 다짐이 되풀이되곤 한다. 어쩌다 사건을 여유 있게 지정한 재판기일에서는 말도 잘 되고 사건 파악도 잘 되며 기억도 오래도록 생생하게 남는 것 같다. 분쟁해결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은 분쟁결과보다는 분쟁해결절차에 의존한다는 어느 연구와 같이, 최소한 당사자에게 절차적 만족감을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법원업무를 줄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분쟁을 줄이는 것이다. 논문을 보고 드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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