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의 숲에서 거닐다 - 미국에서의 진보주의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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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의 숲에서 거닐다 - 미국에서의 진보주의의 형성
  • 법률저널
  • 승인 2010.11.0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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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뉴딜 정책이 시행된 1930년대였다. 당시 미국사회는 대공황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극심해지고,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기성의 전통적인 ‘미국적 체제’ 즉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게 되었다. 더 이상 그것은 자유와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할 듯이 보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려오던 ‘미국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그 당시 미국 국민 모두는 경제위기를 맞아 고통받고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노동자, 농민, 흑인, 도시빈민과 같은 비주류(非主流) 세력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유럽의 정부들처럼 미국 정부도 자신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주기를 기대하였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정부가 불우한 자를 돕기 위해 복지 혜택을 주는 방식을 통해 국민생활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개입은 개인적 자립(self-reliance)과 자유방임을 강조해 온 미국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33년에 새로 들어 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민주당 행정부는 대중의 요구에 따라 정부개입을 받아들이는 용단을 내렸다. 왜냐하면 국가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밖에 기대할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개입은 뉴딜 정책(the New Deal)의 시행으로 구체화되었다. 뉴딜 정책은 정부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경제와 사회의 문제에 적극 개입하려는 시도였다. 즉, 그것은 정부의 힘을 사용하여 주로 경제적인 의미에서 평등의 이상을 부분적으로나마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작스런 정부개입 개념의 도입에는 그만한 이론적인 근거가 뒤따라야 했다. 그러므로 뉴딜 정책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뉴딜 진보주의(New Deal liberalism)로 불리는 이념이 다시 형성하게 되었다.
 
뉴딜 진보주의는 종전의 개인주의적, 자유방임주의적인 가치를 대신하여 공동체주의적, 사회주의적, 정부간섭주의적인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러한 이념적 전환을 토대로 루스벨트는1933년에 공산국가인 소련을 승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뉴딜 진보주의는 종전의 프로테스탄트적, 청교도적인 가치를 대신하여 세속적인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러한 이념적전환은 루스벨트 행정부가 금주법을 폐지하여 술의 자유로운 판매를 허용했던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뉴딜 진보주의의 본질인 정부개입주의는 뉴딜정책이 보인 노동조합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즉, 정부는 ‘와그너 법’을 제정하여 기업에 맞선 노동조합을 합법화해주고,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해 주었다.
 
루스벨트 행정부가 노동조합의 활동을 격려했기 때문에 산업노동자회의(CIO)라는 거대한 노동조합이 새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드 자동차 노사분규에서처럼 정부가 노동조합의 편을 들어 주었기 때문에 파업이 성공했던 것이다.
 
뉴딜 정책의 정부개입주의는 농민을 돕는 방식으로도 나타났다. 정부는 농업조정법(AAA)을 제정하여 농산물 가격의 하락을 막아 주려고 하였다. 그래서 정부는 농산물의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경작지를 줄이는 농민에게 보상금을 주었다.
 
뉴딜 진보주의는 정부 자금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공공사업(public works)의 추진으로도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댐 건설, 하천 정비, 비료 생산에 대한 정부 투자로 큰 고용창출의 효과를 낸 테네시계곡개발공사(TVA)의 활동이었다.
 
그리고 뉴딜 정책은 나이든 은퇴자를 위한 연금 기금을 조성하는 데 있어 정부가 금액의 일부분이나마 기여하기 시작한1936년의 사회보장법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는 곧 유럽식의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1930년대에 뉴딜 진보주의가 지향하고 있던 방향은 유럽의 중도 좌파 정권들이 시도하고 있던 것과 같은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건설이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루스벨트의 민주당 행정부는 당시의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민주당, 프랑스의 사회당처럼 온건한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노선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보주의 세력들은 하나의 진보주의 권력층(a liberal establishment)을 형성할 정도로 강력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루스벨트를 정점으로 한 진보적인 관료들과 정치인들 및 그들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언론인들과 교수들이 힘을 합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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