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 교수] 오늘도 우리는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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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 오늘도 우리는 전쟁 중
  • 법률저널
  • 승인 2010.09.06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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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전쟁 중이다. 죽은 자들은 전쟁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지켜보니 죽은 자들도 역시 전쟁 중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죽은 자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에서 치고받고 하는 것을 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하고 살 수밖에 없나 보다. 아마도 인간만큼 전쟁이 싫다며 평화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만큼 전쟁을 밥 먹듯이 하는 족속도 없을 것이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지난 8월 말 정식으로 이라크 전쟁 종식선언을 하였다. 그는 종전연설을 통해 “미국과 이라크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에서 우리는 책임을 다 했으며, 오늘 미군의 전투임무는 끝났다.”라고 선포했다. 필자는 본보를 통해 7년 5개월 전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이 미쳤다.”라는 주제의 글을 통해 이라크침공전쟁의 부당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당시 노문현 정부의 한국군 파병에도 반대한 바 있다. 그때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지금의 전쟁종식도, 철수도 없는 평화로운 7년 5개월이 유지되었을 것 아니겠는가?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침공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체제에서의 대량살상무기제거”는 실제 침공 이후 조사 결과 그 전제가 되는 “대량살상무기의 부존재”로 밝혀졌다. 한 마디로 말해 미국이 멀쩡한 이라크를 침공하여 고통을 주었을 뿐인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성립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요원하다. 7년 5개월 전, 정확히 2,716일 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더라면, 후세인 치하의 학정을 잘 극복하고 이라크가 더 빨리 민주화를 이룩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이라크는 혼미하고, 여기저기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하고, 이라크 국민들은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 마디로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미국의 반강제로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38개의 파병국들은 이제 모두 철수하였다. 연합군 전사가가 무려 4,734명에 이르고, 그 중 미군 전사자가 4,416명에 이른다. 이라크보디카운티의 집계에 의하면, 전쟁기간 동안 자살폭탄테러에 의한 사망자가 무려 28,909명에 이르고, 총격 및 교전에 의한 사망자가 64,970명에 이르며, 민간인 사망자가 106,466명에 이른다. 전쟁비용으로 지난해까지 지출된 돈이 무려 6,120억 달러에 이르고, 금년말까지 대략 7,000억 달러 정도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미국 의회예산국의 추정수치이다. 발표되지 않은 팔다리가 잘려나간 상처 입은 국민수는 과연 얼마나 더 될까? 부서진 건물은, 파괴된 사회시설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결과들이다.

필자는 이미 본보를 통해 한 번 발생한 전쟁은 3세대, 적어도 90년은 간다는 말을 피력한 바 있다. 전쟁 당사자의 피해자의 손자 대까지 지나야 비로소 전쟁의 상흔을 서서히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100년 전 일본으로부터 강제적 침탈을 당하여 국권을 상실한 후 65년 전에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여전히 일본과 의식의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ㆍ북 간에 60년 전에 치렀던 6ㆍ25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우리를 갈라놓고 있음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만큼 전쟁의 후유증은 오래 간다. 가해자들이야 쉽게 잊겠지만, 가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의식 깊은 곳에 그 상처를 오래오래 간직하기 마려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저 위에 열거된 숫자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7천억 달러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현재의 환율 등을 고려할 때 800조원이 웃도는 돈이고, 이 돈은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2년 반치 이상이 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라크 국민 수가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수준이니, 저 돈으로 이라크의 교육과 평화, 복지, 국가기반시설 확충 등 긍정적인 곳에 사용했더라면, 미국이 그리도 부르짖던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지금처럼 팔 다리가 잘려 나간 전쟁 상이자가 길거리를 배회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며, 분노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생활이 윤택해지고, 사랑이 넘치고 평화가 흘러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부시 미국대통령은 전쟁을 택했고, 그 전쟁이 위와 같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다치고, 다치게 하였다. 전쟁을 통해 군수업자들만 배를 불렸고, 그들은 앞으로 또 다른 전쟁발발지를 찾아 음모를 꾸밀 것이고, 우리 한반도가 그 중의 하나가 될까 봐 나는 겁이 난다.

이라크 국민들의 분노는 또 3세대를 갈 것이다. 자신의 전쟁 상처를 보고 분노할 것이고, 그러한 아버지를 직접 목격하며 자란 자식이 그 분노의 동반자가 될 것이고, 그 아들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의 슬픈 자화상을 전해들은 손자가 분노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부시는 전쟁을 통해 아무 것도 얻지 못했고, 수십만의 사람을 죽였다. 미국의 전쟁강경론자들, 매파들은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했고, 모두 백악관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들은 살아서 여기저기에서 말, 말, 말을 늘어놓으며 정적인 오바마를 공격하고 있다. 오죽하면 전쟁을 옹호하는 일부 강경파들이 마르틴 루터 킹이 비폭력을 주장하던 장소에 모여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며, 피아와 가치의 벽을 혼동케 하기까지 하겠는가?

어디 죽은 자만 고통스러운가? 전쟁에 직접 투입되어 아무런 개인적 감정도 없는 누군가를 죽인 수많은 병사들이 얼마나 정신적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러한 공황장애에 빠진 자녀와 아빠와 남편을 지켜봐야 하는 미국 군인 가족들의 고통은 어떠할 것인지, 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그들 중에는 전쟁으로 인해 미쳐버렸는지 지나가는 민간인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하고, 그들의 손에 적국의 군인들이 가지고 있는 총을 가짜로 놓아둔 채 사진을 찍어 테러리스트에 대한 전과를 올렸다고 허위보고까지 하였을까?

며칠 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철벽(?) 같은 한ㆍ미 공조를 지켜보며 남한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는지, 북한은 중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동맹국인 북한에 대하여 정치ㆍ경제 전반에 걸쳐 전폭적 지지를 보낼 것임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급기야 우리 서해 근처에서 중국 함대가 실탄사격훈련을 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전쟁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 혹시나 옛날에는 그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 않던 시절,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고, 징기스칸이 거대한 칸제국을 건설했던 당시에는 소위 힘 센 놈이 장땡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그랬을 것 같지만, 역사는 모두 그러한 침략전쟁에 의한 속국들이 독립국이 되었음과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살육의 상처만이 오래오래 남아 분쟁의 앙금이 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다. 더 나아가 유엔이라는 거대한 국제조직체계의 현대 문명사회(야만이 곳곳에서 판치고 있지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느 누구도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힘을 가진 국가는 무력으로 옆 나라를 침공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고 있고, 실제 이를 강행한다.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의 판단 실수가 얼마나 커다란 재앙을 가져오는지, 미국은 7천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전비를 투입하고서도, 입으로는 승전국이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베트남에서 1975년에 패전하여 철수하듯, 서둘러 이라크에서 패전국처럼 물러났다. 미국의 국가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자진하여 사퇴하였다. 동반하여 신재민 문화관광부장관 내정자와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내정자도 사퇴하였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은 그들의 사퇴를 접수한 이명박 대통령이 능력 있는 자들의 사퇴를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을 전한다. 아마 능력의 문제로 따지면, 대한민국 사람들보다 더 능력 있는 민족이 과연 몇이나 될까? 부지런하고, 목표를 정하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기어이 무언가를 쟁취해내는 결과산출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귀신 같은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살아본, 주위에서 보고 겪은 경험에서 나온 확실한 결론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런 와중에 지나치게 편법에 익숙하고, 위법, 탈법에 무신경하며, 이익이 된다 싶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무모함을 함께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원칙이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며, 바람직한 사회도 아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 손해를 구성원으로서의 분담금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내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분담금 갹출에 인색하지 않은 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힘센 자가 함부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은 사회, 나는 그러한 사회를 꿈꾸고 기대한다. 그런데 왠지 정계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만나는 사람마다 90도 각도로 꺾어 하는 인사가 눈에 거슬릴 뿐이다. 장관이, 국회의원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90도로 꺾어 인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냥 보이는 외관일 뿐이고, 마음속에는 뻣뻣이 자라고 있는 나무 하나 있는 것은 아닌지 그냥 궁금해진다.

지금도 세상은 전쟁 중이다. 살아남기 위해, 죽어서도 등 뒤에 칼을 맞지 않기 위해 달려가고들 있다. 태풍 곤파스가 지나갔다. 태풍의 뒤끝처럼 평화가 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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