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그리 얼굴이 두껍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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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그리 얼굴이 두껍냐고?
  • 법률저널
  • 승인 2010.04.12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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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올해, 대한민국의 봄이 이상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때 아닌 폭설이 쏟아지지를 않나, 구름이 잔뜩 끼어 따스한 햇살 쬐기가 힘들지 않나, 1,200톤이나 되는 대형 군함 천암함이 두 동강 나 백령도 앞바다에 침몰해 생떼 같은 46명의 젊은 사병들이 한순간에 죽지를 않나, 4대강 살리기 공사가 4대강 죽이는 공사라며 천주교, 개신교, 불교계 및 뜻 있는 국민들이 연일 반론을 제기하여도 정부는 마이동풍처럼 제 갈 길만 가지를 않나, 서울시 교육감이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을 하여 구속되지를 않나, 수백 명의 교장 선생님들이 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수많은 업자들로부터 푼돈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상습적으로 받아오다가 적발되지를 않나, 삼성생명의 이건희 회장이 국민들을 향해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고 선문답같은 충고를 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고객인 보험가입자들의 돈이어야 할 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의 주식을 상장하여 고객들의 돈을 꿀꺽하여 자신들만이 또다시 벼락부자가 되겠다며 꿍꿍이속을 내보이고 있는 삼성그룹 일가가 오히려 힘자랑을 하고 있지 않나, 공영방송인 문화방송 사장을 불러 조인트를 까고 매를 때려 엠비시 방송국의 인사문제를 잘 마무리짓도록 하였다며 떠벌려 언론을 우롱한 김우룡 방문진이사장이 슬그머니 미국으로 도피성 외유를 떠나도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지 않나, 월남전까지 참전한 봉은사 주지 스님을 좌파라며 군대 다녀오지 않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내몰아야 한다고 호통을 치지 않나, 하여튼, 쉿, 지금 대한민국의 봄이 참으로 수상하다.

  이렇게 수상한 오늘 새벽, 나는 시인 이상화를 만난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한 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종다리는 울타리 넘어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 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 춤만 추고 가네.//나비 제비야 깝지지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닷는 내 혼아/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서름이 어울어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로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잡혔나보다.//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李相和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

  1926년 개벽지(開闢誌) 6월호에 발표된 이상화 시인의 시다, 절규다. 1926년, 그 일제치하의 암울했던 시대, 세상을 향해 큰소리를 치고 싶어도 일제의 총칼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을 조선의 한 지식인의 고뇌를 본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혼자 온 것 같지 않은 시인에게 제발 대답을 해다오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인의 고백이다. 봄비에 보리밭 보리는 삼단 머릿결처럼 자라지만, 그 보리밭을 내가 매고 싶어도 내 손에 호미가 없으니 어쩌랴? 호미를 쥐어 달라고, 그래서 그 호미로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조선의 산하를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땀 흘려 일해보고도 싶지만, 꽉 닫혀버린 산하에 찬바람만 불어오니,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펜이 생명인 그가, 1937년 이후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선생으로 재직하던 당시, "피압박 민족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권투부를 신설한 일화는 지성이 말살된 세상에서 얼마나 어깨를 짓누르는 일제권력의 힘의 무게를 무거워했는지 능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당신의 주먹은 얼마나 굵나요? 

  2010년의 대한민국은 지금 봄인가? 많은 이들은 이만하면 봄이지 더 이상 무슨 봄을 기다리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아직도 등이 시리고 오슬오슬 춥다. 여전히 한기가 느껴진다.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잠정적으로 400만 명이 넘는 불안한 失業者群과 하루하루가 불안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자꾸만 높아져가는 현실이 배고프다. 무엇보다도 겸손할 줄 모르는 권력, 그 무서운 힘의 횡행이 두렵다. 입으로는 소통을 부르짖으면서도 귀를 꽉 막고 우이독경처럼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독선이 겁난다. 그 뒷감당을 누가 어찌 해야 할지, 분배의 왜곡이 먼 훗날 빚어낼 참사가 눈에 보이는 듯하여 소름이 돋는다.
  이상화 시인은 독백한다.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라고..... 현실은 봄이 아니더라도, 의지만으로도 봄을 만끽하고 싶다고, 아픈 다리를 절고 절며 하루 온종일 빼앗긴 나의 땅 들판을 걷는 시인의 발바닥이 얼마나 아팠으랴, 아니 그 심장의 고통이 얼마나 터질듯했으랴? 끝내 빼앗긴 들에서 봄마저 빼앗겨버릴 것 같은 상실의 두려움은 진정 깨어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을 터.....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백혈병 근로자 박지연 씨가 지난 달 만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박지연 씨는 지난 2004년 12월 만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납 용액과 화학용품을 취급하는 반도체 검수 업무를 맡아 오던 중 2년 반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투병 중 사망한 것이다. 암을 유발하는 화학약품으로 알려진 벤젠을 사용하고 있던 위 공장에서 비슷한 병명으로 사망하였거나 투병 중인 젊은 근로자가 최근 몇 년 사이에 20여명이 발생하였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입사할 때 아주 건장했던 20대의 청년들이 몇 년 사이에 유사한 질병으로 사망한 사건들이 발생하였음에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은 그들의 산재처리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의 억울한 희생이 보상될 수 있도록 현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일명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삼성반도체는 박지연 씨가 산재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치료비를 지급해주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자발적 참여를 통해 성금을 모아 그녀의 치료비와 생활비 등을 보조하고 있다. 동료 직원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십시일반의 우의이겠지만, 그러한 것들은 책임져야 할 자의 책임 회피를 정당화시켜 주는 편법일 뿐이다. 삼성반도체는 박지연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산재환자로 의심되는 근로자들에 대하여도 같은 방법을 써왔다. 산재환자가 아니라면 환자의 개인 질병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삼성반도체가 회사 비용으로 직원의 개인 질병 치료비를 대납해줘야 할 의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회사 돈을 개인 질병 치료비를 대납해 주는 선심(?)을 계속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회사의 도금부서에서 근무했던 근로자들 중에는 림프종, 眼癌, 출산한 자녀의 백혈병, 자녀의 발가락 기형 등 이상한 증상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삼성반도체는 계속하여 이들에 대하여 산재발생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20여년 전에 있었던 온산공단에서의 공해병 악몽이 떠오른다.

  오늘날, 들녘을 회복한 우리에게는 “생업의 터전”이 바로 그 옛날의 들녘이다. 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니 어려운 작업환경에 내맡겨져야 하고, 들녘을 찾고 보니 생명을 빼앗기는 억울함을 당하는 모순 구조가 여전하다. 이상화 시인이 살아 돌아온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2010년 대한민국의 봄이 수상하다고 한 소리 외치지 않을까? 피압박근로자들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고, 아니 목청이라도 높아야 한다고, 그것도 아니면 발바닥이라도 두꺼워야 한다고...... 그러면서 빼앗는 자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혹시, 당신은 왜 그리 얼굴이 두껍냐고 묻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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