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규 시인의 “개”와 사람의 정부
상태바
이자규 시인의 “개”와 사람의 정부
  • 법률저널
  • 승인 2009.12.28 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년 한 해는 어쩌면 입이 아팠던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옛말에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했지만, 사건사고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한 해였기에 여기저기에서 이 말 저 말 하느라 많이들 입이 아팠을 것 같다. 어쩌면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며 내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기축년 한 해 동안 나라는 예전처럼 시끄러웠고, 잘 나가는 사람은 쌩쌩 잘 나갔을 것이고, 못 나가는 사람은 계속해서 터덕거리며 한 끼 끼니를 걱정하며 살기도 하고, 하룻밤 잠 잘 곳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 잘 나가는 이와 못 나가는 이가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동일한 사안을 놓고도 왜 그리 보는 시각과 관점이 다른 것인지, 역사적 용단에서부터 나라를 말아먹을 일이라는 극단적 평가까지 시소게임의 양축은 언제나 팽팽하다. 아직은 끊어지기에는 잡아당기는 힘이 약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아마도 내년쯤 가면 분명코 누군가 잡아당기는 힘이 강해서 아예 한 쪽으로 끌려가 버리거나 양자의 힘이 서로 비슷해 줄이 끊어지거나 양단간에 하나로 결정이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어리석은 가운데에서도 현명한지라 서로 각자 살 길 찾아 등 돌리고 타협할지도 모른다. 가슴을 맞대고 타협하면 얼마나 좋으랴만 등 돌리고 타협하기도 하는지라, 그 등이 기축년 소 등처럼 뒤뚱거리며 흘러내릴지 아니면 내년 경인년 호랑이 등처럼 내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계속 타고 있지도 못하는 무시무시한 등이 되고 말지 지켜볼 일이다.

  세밑이다. 고향이 그리워지고, 잊고 있던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여기저기에서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오고,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 못한 경우도 있지만, 또 몇 차례 모임에 참석하여 친지들을 만나기도 했다. 첫인사가 어떻게 살았냐는 것이지만, 내 살 듯 남도 살았을 것이고, 남 살 듯 나 살았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겠는까? 이미 정년퇴직을 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에서부터 아직까지는 안 쫓겨나고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술잔이 오고감에 따라 현재가 서서히 사라지고 옛날이 크로즈업된다. 어린 시절 친구 집 수박서리며, 남의 집 감 따먹다가 주인에게 들켜 도망가던 이야기며, 짝사랑하던 여학생 뒤를 아무 말도 못한 채 뒤따라가다가 연애편지 전해줄 타이밍을 찾지 못해 끝내 닳아빠진 연애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랑의 실패담하며, 모두의 왕년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렇다, 현실은 춥고 배고플지라도 왕년은 모두가 휘황찬란했고, 흉허물이 없었다. 그러기에 모임에 참석하고 오면서 잘 참석했다라는 생각을 하는 한편 늙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의 자화상을 보는듯하기도 해 씁쓸하기도 했다.     

  이자규 시인의 시 한 편을 본다. “고깃덩어리로도 개를 달래진 못한다/갓 낳은 새끼들을 떼어놓자/살 맛 잃은 듯 허공 향해 낑낑거린다/하늘 밖과 땅 밑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끈/개새끼가 된 오늘/구십 년 살다 말라비틀어진 몸으로/스스로 무덤으로 들어가는 늙은 개 한 마리 보았다/삼우재 마친 뒤 젖은 발로 돌아와서/꼬리 내리고 슬픔에 젖은 개를 본다/나는 사람일까 짐승일까 엄마” (이자규 시인의 시집 “우물치는 여자”에 수록된 “개” 전문)

  이자규 시인의 “개”라는 시는, 어머니를 여의고 돌아온 딸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실존의 문제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고깃덩어리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본질은 사랑이다. 그러면서도 애증을 함께 해온 어머니를 땅속에 묻고 와서도 꾸역꾸역 먹을거리를 입으로 쳐넣어야 하는 인간은 동물 다름 아니다. 스스로 어머니를 여윈 슬픔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구십이 되도록 살다간 한 여인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개처럼 살기도 하고, 사람처럼 살기도 했을 한 인생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인은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결코 끊어질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연의 끈 하나 붙들고, 땅 속의 어머니가 땅 위의 딸에게 연결되고, 그 모습은 주변의 타자와 나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처럼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개처럼만 살 수 있어도 어쩌면 성공한 인생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개라는 동물이 얼마나 충직하고 이로운 동물인가? 자기 영역을 건들지 않는 한 욕심을 내지 않고, 주인을 지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며, 주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아양을 부리는가?

  그렇지만 모두들 개처럼 산다고 하면 화를 낸다. 실제 자기 모습이 개처럼 살고 있으면서도 굳이 외면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금년 한 해 많이도 입이 아팠지만, 유독 마음이 아픈 것은 용산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은 여섯 명 중 아직 장례를 치루지 못한 다섯 명의 영혼에 대한 미안함과 지난 NNL 침범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북한 병사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전자는 국내에 상존하는 내부적 갈등의 상징이고, 후자는 남북 간에 상존하는 외부적 갈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금년 한 해 아무리 경제정책을 잘 했고, 국정운영을 잘 했고, 국제협력을 잘 했다고 하더라도, 용산화재참사의 피해자들의 장례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앞의 모든 치적을 상쇄하고도 남는 큰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도 용산화재참사를 떠올리면 속이 매스꺼워진다. 그 불에 타죽어갔을 사람들의 살 타들어가는 냄새, 그들이 그 죽어가는 순간에 느껴야 했을 통증과 두려움, 그들의 타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길가의 사람들의 동동거리는 발자국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원을 해결해야 한다며, 300일이 넘도록 천주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단체와 시민들이 간절한 소리를 정부에 보내지만, 마이동풍인 것을 보면, 죽은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할지라고 그렇게 억울하게 불에 타죽은 사람들을 개보다 못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정말 대한민국 정부는 사람의 정부인가 아니면 짐승의 정부인가?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 가슴 아파 울부짖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정말 억울하게 불에 타죽은 사람들의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저렇게 홀대해서는 안 된다. 제발 지금이라도, 금년 며칠 남지 않은 금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를 넘기고, 소해를 넘기고 호랑이해에 호랑이밥이 되게 할 작정인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것도 또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중국은 범국가차원의 투자를 북한에 대하여 시작하였다. 북미사이에서는 북미간 연락사무소설치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 통일부는 2007년도 정부안으로 수립되어 국회에 보고되고 관보에까지 공시된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을 폐기하였다. 폐기의 변으로 내세운 것은 2년 전에 비해 북한이 핵추진, 남북간봉쇄정책을 추진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는 북한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비전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남북긴장관계의 완화야말로, 세계 속의 한국이 날개를 달고 비상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토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반대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니, 보수의 가치평가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법을 전공해서인지 몰라도, 언제나 법의 여신상을 떠올리게 된다. 저울을 들고 있는 법의 여신, 그녀가 들고 있는 저울은 공평하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법의 이중잣대가 여기저기에서 활개치는 것을 본다. 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입이 아프려고 한다.

  오늘은 이만 하자, 세밑이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아픈 입을 다문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 해 동안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린다. 독자들의 하시는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소야, 소야, 안녕!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