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춘 시인의 “안개의 배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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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춘 시인의 “안개의 배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외유
  • 법률저널
  • 승인 2009.12.14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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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춘 시인의 “안개의 배후”라는 제목의 시를 읽는다. “비 그친 후/젖은 나뭇잎이 버스에 달라붙었다/촉촉한 힘이 잠시 동안 그를 잡았으리라/떠나는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여자/배경을 지워보려는 여자//물기에 젖은 발자국이/안개 속에 자취를 감춘다/낮은 나뭇가지에 기대서/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남자/등 뒤가 서늘한 낡은 셔츠가/후줄근해진 냉기에 팔짱을 여민다//바라보던 주위는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지만/배후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떠나버린 정체의 배후는/그 길만이 끝까지 따라갈 뿐/추적한 것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임재춘 시인의 시집 “오래된 소금밭”에 수록, 책만드는집 간, 2009).
 
안개 속에서 몇 십 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접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상해를 입었다. 안개는 참으로 힘이 없다. 바람 한 번 불면 언제 안개가 깔렸었냐는 듯 허공 중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러면서도 그 생명력이 얼마나 모질고 질긴지, 또 다시 모여 길을 막고 사람을 묶는다. 안개에 갇히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가장 힘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힘을 가진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개는 우리를 가두고, 숨기고, 옭아맨다. 눈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져도 활공에 지장을 받지 않는 비행기조차 안개가 자욱하면 착륙과 이륙을 포기하고 마는 것을 보면 안개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안개가 자욱한 세상은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지난 연초 2주간 남짓의 인도여행길, 어느 하루, 기차를 타고 스무 시간 이상을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온통 차창 밖은 안개로 자욱했고, 그 안개 자욱한 상황이 열세 시간 가량 꼬박 하는 것을 보며, 인도라는 나라의 광대무변함에 놀라고, 또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이처럼 안개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한다.
 
작가 김승옥은 그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안개 속 무진을 걷는 나, 윤희중을 등장시킨다. 40년 저쪽 세월, 소설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펼쳐들었던 십대의 나에게 무진기행은 어려운 소설이었다. 알 듯 싶기도 하면서도 아무 것도 모르겠고,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알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었던 소설, 무진기행 속에서, 안개는 나와 너를 가르고, 현실과 이상을 가르고, 순수와 탐욕을 가르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안개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주인공의 내면이 되기도 하였다가 현실의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순수를 지향하는 척 사치를 즐기다가도 끝내는 아내의 전보 한 장에 현실의 이해관계에 빨려들어가는 주인공 윤희중의 진실은 안개 속에서 오리무중이다.
 
요즘 검찰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안개 속에서 조자룡 헌 칼 쓰듯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둘러싼 비리의혹 앞에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지원 국회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사위인 신성해운의 이재철 당시 이사는 장인과 장모, 심지어 부인한테 준 금액까지 검찰에 모두 제출했고 여기에는 2004년 당시 국무총리실 사정팀에 나가 있는 검사, 서울중앙지검 고위간부에게 2억원, 한상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에게 5000만원을 줬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돼 있다.”며 한상률 국세청장에 대한 비위사실을 폭로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도 한상률 당시 차장으로부터 학동마을이라는 고가의 미술품을 인사청탁 명목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하였고, 안원구 국세청 전 국장도 인사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요구당하였다고 구체적으로 폭로하였다. 그런데도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말 그대로 안개 속을 걷고 있다. 검찰은 스스로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버림으로써 인기가수 정훈희씨가 불렀던 “안개”라는 유행가의 한 구절-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이 되어 버렸다. 박지원 의원은 이귀남 법무부장관에게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범죄인인도절차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강제소환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귀남 법무장관은 구속할 사안이 아니어서 이런저런 절차로 소환을 강구 중이라고만 답변할 뿐 소환할 의지를 내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절차가 어떤 절차인지 형사소송법을 다시 한 번 펼쳐보아야겠다.
 
임재춘의 시, “안개의 배후”는 다의적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뒤끝의 남녀의 서늘한 모습일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른 자기의 뒷모습을 감추려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슬프게 헤매는 현대인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그 모습은 김승옥의 무진기행 속의 윤희중, 나일 수도 있다. 비 그친 후 젖은 나뭇잎이 버스에 달라붙어 있다면, 그 붙어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곧 말라서 떨어져 내릴 것이다. 말 그대로 낙엽이 되어 길 위를 뒹굴 것이다. 버스를 타고 떠나면서, 차마 뒷모습마저 보여주는 것조차 낯설어 담배연기를 내뿜어 자신의 뒷모습을 지우려 안간 힘을 쓰는 여자의 모습은 처절하다. 그게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잘못 살아온 과거에 대한 회한일 수도 있다. 아니 남겨진 자에 대한 통렬한 복수일 수도 있다. 담배연기는 그냥 담배연기가 아니다. 담배연기는 떠나는 여자가 뿜어내는 짙은 안개이다. 약한 힘이면서도 강한, 흩어질 것 같으면서도 모이는 집요함이고, 엄격한 자기통제이다.
 
왜 남겨진 남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가, 자신의 등 뒤가 서늘하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물기에 젖은 발자국이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춘다. 전화기 속의 누군가는 진실을 폭로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남자는 여자의 안개 속에 갇혀 버렸고, 후즐근해진 냉기에 스스로 몸서리를 친다. 그게 떠나는 여자가 품어낸 독기일 수도 있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매몰찬 찬바람일 수도 있다. 안개 속에서는 길이 길을 만나더라도 그것은 결코 길이 아니다. 있던 길도 없어지고, 없던 길은 더더욱 길이 아니다. 과거의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아니 생생히 남아 있는데 안개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는, 이 극렬한 이중성 앞에 작가는 초연하다. 아니 할 말을 잊는다.
 
지금 어쩌면 깨어있는 수많은 국민들은 눈앞에 몰려오는 짙은 안개를 보며, 무진을 떠올리기도 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안개는 결코 반항하지 않으면서도 수많은 話者들을 침묵케 하고, 수많은 피해자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꽁무니를 수없이 들이박는 차, 차, 차, 모두 안개 속에서 무한질주를 계속하는 안개 밖의 인간들이다.    안개 속에 갇힌 자는 언젠가 안개가 걷힌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안개의 배후가 있음을 안다. 안개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듯하지만, 결단코 아무 것도 사라지게 하지 못하고, 존재 그자체로 영원케 한다.
 
그러나 어쩌랴, 임재춘 시인은 안개의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설파한다. 아, 그의 말이 맞다. 안개의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힘 없는 자들이, 칼자루를 쥐지 못한 자들이 아무리 안개의 배후에 안개가 있다고, 실체가 있다고 강변하지만, 안개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안개의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진실을 설파하는 임재춘 시인의 통찰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냥 쾅 하고 부딪히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무자비한 자동차뿐이다. 안개 속에서 바라보던 주위는 안개가 사라지면서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지만, 배후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오늘 배운다. 떠나버린 정체의 배후는, 길 끝을 따라가 보지만, 추적을 해보지만, 끝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은 진리일지 모른다.
 
세상사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인터넷 세상에서, 여전히 안개의 배후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여기저기 묻고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창피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들추기 시작하면 가족, 친구, 친지 가릴 것 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파헤치고 들쑤시는 능력을 국민에게 수도 없이 보여준 검찰이 안개의 배후가 무엇일까고 묻게 만드니 더더욱 안개의 배후가 궁금해진다. 삼성 X 파일과 관련된 진보신당의 노회찬 전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의 명예훼손 기소에 대해 항소심은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러면서 떡값을 주었음직한 대화내용이 진실해 보이니, 이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오히려 재판부는 안개의 배후를 준엄히 묻고 있다.
 
과연 안개의 배후는 무엇인가? 임재춘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에? 묻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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