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행정부와 진보좌파정책
상태바
클린턴 행정부와 진보좌파정책
  • 법률저널
  • 승인 2009.11.13 0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2년 선거의 해를 맞으면서 미국의 경제 위기는 심각해지고 있었다. 경기는 침체되고 실업자는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을 다시 후보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는‘가정의 가치(family values)’와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강조하는 문화적 보수주의(cultural conservatism)의 깃발을 들고 선거전에 들어갔다.
 
이에 도전하는 민주당은 아칸소 주지사인 젊은 빌 클린턴(Bill Clinton)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그는 1946년생으로, 혁명과 격동의 시기인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병역을 기피한‘베이비붐’세대였다. 그는 아칸소 주 법무국장을 거쳐 주지사가 되었다. 그는 경제와 사회 문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였다. 따라서, 그는 공공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정부자금으로 보건 후생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동시에 그는 1960년대의 신좌파가 내세웠던‘대항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적 좌파의 성향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낙태와 동성애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유권자들 사이에서 변화에 대한 요구가 커져 가면서, 선거는 나이가 가장 적은 클린턴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게다가 제3당 후보인 텍사스의 성공한 기업가 로스 페로(H. Ross Perot)가 부시를 위협하였다. 그 결과 클린턴이 당선되었다.
 
선거 결과로 의회의 성격도 바뀌었다.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장악하게 된 데다 여성, 흑인, 히스패닉과 같은 소수 세력 출신 의원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의원들 가운데에는 문화적 좌파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이것은 미국 사회가 1960년대 이후 민권 운동, 신좌파 운동, 반전 운동, 마르크스주의 운동, 여성 해방 운동,‘대항문화’를 겪으면서 좌경화한 결과였다.
 
그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 안에는 진보주의자들과 문화적 좌파가 많았다. 예를 들어, 동력 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흑인 여성은 정부의 핵폭탄 제조를 중지하고 핵 관련 문서를 공개하는 파격성을 보였다. 그리고 흑인, 히스패닉, 여성 장관도 적지 않았다.
 
1993년 1월 클린턴이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미국의 경제는 어려웠다. 실업률은 7.2%로 높았고, 연방 정부의 부채는 4조 달러를 넘었다. 1992년의 무역 적자는 8500억 달러에 가까웠다. 클린턴 행정부는 정부 간섭주의(governmental interventionism)의 원리에 따라 공공사업(public works)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돈은 세금 인상을 통해 조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클런턴은 의료 보험(health care)의 혜택을 중·하층 근로자들에게 확대하려고 하였다. 이들 중간 계급은 상류층처럼 자신이 의료보험비를 부담할 능력도 없었고, 빈민층처럼 정부의 도움을 받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정부안은 국민 모두에게 의료 보험을 확대한다는‘보편적 혜택’의 원리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의료 보험 제도에 대한 정부 통제를 의미하였기 때문에, 공화당은 그것을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그 때문에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클린턴 행정부의 진보 좌파적인 노선은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도 나타났다. 그 때까지 연방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병원은 낙태 상담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클린턴 행정부는 그러한 행정 조치를 폐지함으로써 낙태를 쉽게 만들었다.
 
또, 클린턴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군대 입대 금지 조치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군 입대에 대해 군부의 반발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클린턴은 동성애 사실 자체에 대해‘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말라’는 애매한 방식으로 인정해 주었다.
 
클린턴은 민주당 지지 세력인 빈민층과 청년들의 투표율을 높이도록 선거법도 바꾸었다. 즉, 운전 면허증을 신청하는 자동차 등록 사업소에서도유권자 등록을 받는다든지, 정부의 생활 보조비를 지불하는 구호 기관에서유권자 등록 용지를 받아 우편으로 접수하게 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편의를 보아주었다.
 
또, 클린턴 행정부는 ‘가사 휴직(family leave)’법에 서명하였다. 이것은 근로자들이 출산, 양자 입양, 가족 간호, 질병 치료와 같은 가정의 일로 연간 12주의 무급 휴가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 법이었다. 기업가들은 이 법이 근로 의욕을 해치고 게으름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고 비난하였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