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특별한 장소를 만들지 않고 문을 닫은 절집이나 자신의 집에서 책을 읽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는 공부에 몰두할 수 없다고 확인되자 성종 때 지금의 용산쪽 한강 가에 “남호독서당”을 차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남호독서당은 성종 때 일어난 갑자사화 이후 없어졌고 중종 때 두모포(豆毛浦:옥수동)에 동호독서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이 사가독서제는 선비들이 몸을 가다듬고, 뜻을 옳게 가지며,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그 뜻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식도 쓰기만 하고 재충전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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