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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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
  • 법률저널
  • 승인 2009.09.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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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돌이 깔려 있다. 그 위로 강물이 지나간다. 강물은 달리다가 휘어지다가 깊어지다가 소(沼)를 이루다가 유유히 유장히 먼 길을 간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를 밟아 거기 갈앉았는지 모르지만 잔돌들은 그렇게 엎드려 세월을 보낸다-보내왔다. 어떤 돌은 급류에 휩쓸려 저만큼 굴러갈 것이고, 어떤 돌은 좀더 마모될 것이며, 어떤 돌은 어느 여름날 물장구치던 소년의 손에 쥐어져 강물을 벗어나게도 될 것이다. 바로 옆자리에 있던 돌이 그 돌의 부재를 인지했을 테지만 돌들은 침묵만을 위한 입술을 가졌으므로 사건의 비화를 공개하지 않는다. 과학자나 심령술사의 능력이 급진전되어 돌들의 입을 열 수 있게 된다면 역사는 한층  믿을 만한 것이 되리라.

  한 달 치 수입을 이리 쪼개고 저리 맞추며 보다 큰 돌이 되려하거나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곳으로 옮겨 앉으려는 우리 서민들이 바로 잔돌이 아니고 무엇이랴. 역사는 우리 서민들의 생활일랑 별반 개의치 않고 흐려지다가 거칠어지다가 잠잠해지다가 너울너울 춤추다가 다음의 역사로 넘어간다. 하지만 잔돌들은 강물의-역사의 우위에 있다. 역사는 흘러가지만 잔돌들은 제 색깔을 지키며 제자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잔돌들의 역사를 소급해보라. 그들의 출현은 지구의 기원과 맞먹지 않겠는가. 그런즉 잔돌들의 지혜야 어디로 실려가 어떤 고관대작의 담벼락이 된다한들, 시골길에 부려져 행인의 발걸음에 차인다한들 깨끗한 침묵과 관조로 세월을 각인할 따름이다.
 
  1924.1.6~2009.8.18. 그러니까 지난 달 23일, 6일장 국장으로 대한민국은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을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그의 생애 85년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에 딸린 작은 섬 하의도에서 태어나 만고풍상을 겪은 후 대통령의 지위에까지 오르셨던 분. 그의 50년 정치역정은 영욕과 부침, 좌절과 영광의 연속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았는가 하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옥중서신을 책으로 폈는가 하면 아들의 파멸을 지켜보며 쓰라린 세월을 감내하기도 했다. 그의 행로는 진흙 위를 지나간 수레바퀴자국 이상으로 움퍽짐퍽 선명히 남아 있어, 인터넷 검색 창에 ‘김대중 약력’이라는 콘텐츠만 클릭해도 줄줄이 켜켜이 튀어나온다.

  ‘인동초’라는 별호가 거부감을 동반하지 않는 이유 역시 그의 삶이 그와 같았기 때문이다.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서거 87일 만에,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영면이 발표되었으니 대한민국의 2009년 여름은 국민장에서 국장으로의 이동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인파가 500만 명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또 “김대중 대통령 조문객 90만 명 넘을 듯(파이낸셜 뉴스 사회일반 2009.8.24)”이라는 집계가 나왔다. 대한민국 역사는 이 흐름을 망각의 바다로 흘려보내지 않고 뚜렷이 기억할 것이리라. 나는 정치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소재를 붓에 담느냐면 가파른 현장에 엎드린 잔돌로서 고저완급의 거짓 없는 일화를 다소나마 후손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천사는 어디에 사는 존재일까.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나며 진실로 육체를 가진 존재일까. 우리가 말 걸고 웃고 떠들 수도 있는 실체일까. 나는 요즘도 간혹 그런 궁금증에 사로잡힌다. 정말 천사가 실재한다면 나는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날개를 만져보고 그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진짜로 천사를 만나 우정을 쌓다가도 그가 천사답지 않은 면모를 드러낸다면 ‘너 인간이지?’라고 불쑥 퉁바리를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그의 날개에 대한 존경과 선망을 거두게 될지도 모른다. 천사의 진가는 천사라는 데 있지 않고 선의에 있음이니 말이다. 그런데 재작년 여름 어느 초저녁에 딱 한 번 천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남자였고 정장을 갖춰 입은 젊은이였다.

  언니와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에 나섰다. 반포천(盤浦川) 옆 조깅코스가 아닌 한강변으로 길을 잡은 것만이 평소와 다를 뿐이었다. 동작대교 너머의 석양이 아름다운 데다가 바람도 시원하여 가끔씩 그 금물결 아래 마음을 묻으러 갔던-가는 것이다. 서래섬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 더위는 물론 자잘한 스트레스도 말끔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서래섬을 끼고 흐르는 얕은 물에는 새하얀 오리 가족의 고갯짓도 볼 수 있어 목마른 향수가 적잖이 위안을 받기도 한다. 뿐일까, 서래섬 한편 가장자리엔 키 솟은 버드나무 몇 그루가 길고 긴 가지들을 수면 위로 드리웠는데 그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또한 여유롭다. 들쑥날쑥 심어놓은 길섶의 자연석도 풀꽃과 어울려 나비를 행복케 한다.   
 
  그런데 그날의 버들가지는 한 움큼 한 움큼씩 뭉텅이 뭉텅이로 매듭져 있었다. 바람을  빗겨 보낼 수도 우리의 마음을 그네 태워줄 수도 없었다. 언니와 나는 “나무가 얼마나 답답할까.” 걱정하고는 깨금발로 팔을 뻗치고 용을 쓰며 하나씩 풀어줬다. 하지만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마지막 남은 뭉텅이 하나가 너무 높이 맺혀 자연석에 올라서서 기를 써도 손에 닿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포기해서는 아니 될 일. 나는 이미 정숙자가 아니라 버드나무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옭힌 가지를 풀어야만 했다. 드높은 사다리를 구해오거나, 선녀의 두레박을 내려달라고 빌어보거나, 내가 직접 마술사가 되어 매듭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런저런 방법을 모색하던 바로 그때, 저만큼에서 웬 청년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키와 깨끗한 피부, 그리고 좁은 얼굴 등 완벽한 핸섬보이였다. ‘아, 그는 그때 왜 그 길을 혼자 걸어왔을까. 왜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을까. 왜 그리도 내 눈에 확 띄었을까.’ 어쨌든 그가 버드나무 가까이에 이르자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이러저러한 사정’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그는 “네, 도와드리죠.” 하고는 언니와 내가 용을 썼던 바로 그 자연석에 사뿐히 올라서서 너무나도 수월히 매듭을 풀었다. 옭아맬 때 으깨진 채로 말라붙었던 잎사귀들도 산지사방으로 날아 내렸다. 청년은 우리의 고마움을 뒤로 하고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나는 그때 그 청년이 아마도 천사였을 거라고 회상한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 지하상가의 옷과 신발들, 수많은 음식점들, 미장원과 오락실들……. 그 어마어마한 가게들의 운영이 참으로 신기하다. 도대체 누가 그리도 많이 소비하는 것일까. 삼 년이 가도 옷 한 벌 사지 않고, 삼십 년이 넘도록 머리 한 번 자르지 않은 나 자신을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요원하다. 아니, 워낙 근검절약형인 나는 예외로 치더라도 내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다지 많은 소비를 하지 않는다. 신발이며 장신구며 부엌살림 이며 까락까락 따지자면 핸드백, 안경, 운동기구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 거리거리 즐비한 그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정말이지 나와 똑같은 장기와 유전자를 가진 ‘인간’일 거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 손님들 가운데 상당수는 천사일 것이다.’는 상상을 처음 품은 시기는 꽤 오래 되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가게들이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하루 중 손님들이 몰려들 수 있는 시간이란 참으로 짧지 않은가. 모두들 직장이다 공부다 살림이다 분주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게들이 여전히 화려할 수 있는 것은 변장한 천사들 덕분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대한 지출을 줄여도 상인들에게 덜 미안하다. 어쩌면 오늘 낮 건널목에서 무심히 지나친 사람들 속에도 천사가 끼어 있었는지 모른다. 천상과 지상을 왕래하는 그 천사들이 있어 이 세상은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아름다움이 지속되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의 장으로 돌려졌으나 업적만은 오래도록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더러 남북한에 드리운 매듭을 풀기 위해 서래섬 천사의 혜안으로 38°선을 넘나든 정상이었다. IMF사태 때는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단기간에 위기를 넘겼고, ‘햇볕정책’을 폄으로써 ‘북한괴뢰’라는 용어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했다. 북풍과 해님의 나그네 옷 벗기기 동화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 동화를 현실로 바꾼 위정자-김대중 대통령은 언어운용에서도 감각을 드러냈다. 햇빛정책도 햇살정책도 아닌 ‘햇볕정책’이라 명명했으니 그 아니 시어(詩語)인가. 그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듯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급서로 말미암아 들끓던 온 누리를 경건히 잠재웠다. 
 
  그러나 “(태극기도) 유품이니 지니고 가시는 게 좋겠다는 이희호 여사의 의사에 따라 안장식 행사를 모두 끝내고 차량으로 현충원을 벗어났으나, 뒤늦게 태극기를 매장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기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행안부 관계자가 유족 측에 알려(국제신문 2009.9.13)” 그예 꺼내고 말았다니! ……강물은 옛 물이 아니로되 그 밑에 깔린 잔돌은 앞으로도 만년을 견딜 것이다. 나 또한 머잖아 목숨을 벗을 테니 돌멩이보다 덧없고 가냘픈 그림자다. 그래도 잔돌 곁 삶이 얼마나 영광인가. 그렇게 마모되어 모난 구석이 없어지고, 그렇게 침묵하여 청정을 소유하며, 그렇게 엎드려 탁류를 잊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족하지 아니한가. 내일일랑 언니와 함께 천사를 만났던 서래섬으로 발걸음을 해야 되겠다. ▩   
       
 정숙자 시인은 1952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1992년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했으며, 1997년 대산재단 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았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8년 들소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밝은음자리표>가 2008년 출간되었다. 정숙자 시인의 잉크는 매월 셋째주에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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