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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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파티
  • 법률저널
  • 승인 2009.07.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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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시인의 잉크-19>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면서부터 사람은 어른이 되어간다. 하루가 너무나도 무겁게 기어 촌음이 여삼추라거나, 하루하루가 날개를 쌍으로 펴고 내달아 눈 붙일 틈도 없다거나, 하루하루하루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바람결로 태양을 회전시킨다거나 하는 등등의 시간에 대한 최초인식은 어린이만의 특권인 대자유의 상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무한철부지=어린이는 따로 철학을 하지 않아도 이미 무애(無碍)다. 시간이 모자라거나 남아돌지 않는다. 시간이 포함하는 공간의 그늘과도 무관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어린이는 그 점을 알지 못한다. 회상으로서의 어린 시절만이 우리의 공통된 약력을 행복스레 개방한다.

   참으로 감사하지 않은가. 여물지 못한 배꼽으로 우리 다함께 영아기를 건너왔다는 사실이! DNA밧줄에 숨겨진 정보들이 아직 고개를 쳐들지 않았던 그때, 조건과 존재에 대한 불평등을 몰랐던 그때, 순수결정(純粹結晶)시대의 그때 우리는 아직 지구인 아닌 외계생명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투명기의 기억을 깡그리 잊고 후배 갓난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영아기를 유추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다. ‘앎’은 곧 환경을 안다는 뜻, 따라서 아기가 맨 처음 알아보는 엄마 얼굴은 인류의 ‘제1환경’이라 할만하다. 모태에서 꼬부렸던 열 달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요. 환경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환경을 만들지니.

   그리고 제1환경을 언급하기 전에 ‘최우선환경’을 빠뜨릴 수 없다. 최우선환경이란 언어경제를 위하여 필자가 급조한 말이지만 제 몫에 값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여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만들어줘야 하는 최우선환경은 ‘아버지유전자’다. 출산 이후 제아무리 과학적이고 정서적인 환경을 만들어준다 하더라도 배열이 결정되어진 ‘DNA환경’만큼은 어쩌지 못한다. 엄마환경을 떠나 성인이 되면 DNA는 점차-반드시 본모습을 드러낸다. 옛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난다”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현재 미혼남녀라면 여타의 여건보다도 DNA환경에 역점을 두고 배우자를 결정해야만 남은 인생의 신산함과 근심을 덜게 될 것이리라.

   남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만들어줘야 하는 최우선환경 역시 ‘어머니유전자’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우성배합형 아이가 태어날 수도, 열성배합형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을 꼽자면 기존유전자끼리의 배합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확률로 보았을 때 그런 경우는 매우 희박하다. 혹자는 ‘흥, 자식 인생이 나한테 무슨 상관이야?’ 라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참으로 냉정하게 자식을 수수방관할 수만 있다면 그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근면성실하며 명석하고 인정어린 자식을 얻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인생의 근원적 성공 아니겠는가.
 
   7월도 벌써 초순을 넘어간다. 올해는 윤5월이 끼어 더위가 일찍 오고 늦게 물러갈 거라고들 한다. 며칠을 푹푹 찌더니 이른 아침부터 베란다 유리창으로 굵다란 빗발이 들이친다. 저 장맛비 소리도 그렇거니와 거실과 서재의 공기 또한 흐리고 축축하다. 이럴 때면 아이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간 속으로 날아가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으리라. 어느 세월에도 7월은 있고, 그 말일 무렵엔 방학이 기다린다. 군인가족이었던 나는 늘 오지로 떠돌았기에 방학 때라야 두 아이를 데리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었다. 으레 시댁에 먼저 들렀다가 친정에 가곤 했는데 그 걸음이야 애들보다 내가 더 들떴었다.

   휴대폰은 상상의 세계에조차 없었던 시절. “어머니!” 부르며 대문에 들어서면 “아이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씀과 함께 온몸으로 반기시던 어머니와 하나뿐인 내 동생 인자. 오로지 편지만으로 소식을 주고받고 투합하며 행동했던 그때가 내 아이들에게 보여준 ‘꿈의1번지’였을까. 그렇게 재회할 적마다 인자와 나는 첫 밤일랑 아예-예외 없이 꼴딱 새웠다. 사적인 이야기며, 문학, 정치, 연예, 오락은 물론 터무니없는 계획도 수북했었다. 그런저런 대화 도중 파티문화에 정박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골 아주머니들까지도 계를 짜서 파티문화에 편승하는데 왜 어린이를 위한 파티는 생겨나지 않는 것일까에 관한 논의였다.

   ‘어린이 파티’의 경험이야말로 먼 훗날 백화점에서 살 수 없는 자산이 될 거라는 결론에 우리는 합의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명분이 배제된, 순수를 위한 파티 말이다. 그러니까 그 파티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어떤 조건도 짐 지우지 않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있었다. 인자와 나는 구체적인 구상에 들어갔다. 겨울방학엔 날씨가 추워 활발치 못할 테니 내년 여름방학에 ‘제1회 어린이 파티’를 개최한다. 초청될 어린이의 명단은 사촌까지로 하되, 그 어린이가 자신의 친구를 초청할 수 있으며 필히 동네 어린이도 초대한다. 음식으로는 신선한 과일과 각종 음료수, 과자를 준비하고 참가 어린이는 반드시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그 무렵 어머니는 작은오라버니의 효성으로 초가삼간을 벗어나 남향동문 기와지붕으로 된 4칸×2칸 겹집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막내 인자와 단둘이 살고 계셨었다. 너른 채전과 우물, 욕실로 쓰는 별채의 높다란 서까래엔 박쥐가 매달리기도 했다. 어머니와 두 아이가 잠든 뒤 인자와 나는 샤워를 하며 더없이 행복해 했다. 푸르르 드나드는 박쥐까지도 친구로 여겨 우리의 소란 때문에 날아갈까 조심도 했다. 우리 계획대로라면 어린이 파티가 머잖아 쌍쌍파티로 발전할 것이었다. 우리는 벌써 그랜드피아노가 놓인 거실과 손님들을 재워 보낼 수 있게끔 많은 방이 딸린, 그리고 정원과 창문들이 아름다운 저택을 구름 위에 지었다.
 
   이듬해 여름방학이 가까워지자 나는 두 아이의 옷을 마련했다. 아들에게는 흰색 반바지와 세로줄무늬 와이셔츠를, 딸에게는 하얀 원피스와 같은 색 모자를…. 그리고 그 원피스의 층층 레이스에 일일이 스팽글을 달았으며 모자에는 희고 자잘한 조화를 에둘러 장식했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시작된 어느 날 아침. 나는 정성들여 준비한 옷을 두 아이에게 입히고, 기타 등등의 짐을 챙겨 날개보다 빠른 새마을호 기차를 탔다. 인자가 초청장을 발송해 놓은 상태였으니 우리 친정집 형제자매의 2세들이 다 모일 것이었다. 아, 그 일은 언제 돌이켜도 다른 세상에나 있을 법한 꿈의 실현이었다. 고향집 대문 위의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내 동생, 솜씨 좋은 내 동생 인자가 손수 캔트지를 이어 만든 환영 메시지였다.「경-어린이를 위한 파티-축」, 방금 앨범을 펼쳤더니 빛나는 색종이왕관을 쓴 열대여섯 명 아이들이 플래카드 아래서 장난스레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있다. 1981.8.17.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우리 큰애가 열 살, 작은애는 여덟 살. (……) 시간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것만으로도 목 메이는 일일까. 까닭 없이 눈물이 난다. 파티 당일, 인자와 나는 일찌감치 익산시내에 버스를 타고 나가 장을 봐왔다. 그리고 초저녁이 되자 안방 상석에 어머님을 모시고 케이크에 불을 밝혔다. 마당엔 음식상이, 하늘엔 뜨기 시작한 별들이 쿵쿵 아이들을 설레게 했다.

   파티의 서막은 각기 촛불 하나씩 손에 든 아이들이 나이순으로 안방에 들어가 할머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이자 아이들의 할머니이신 칠순어른은 아이 한명 한명의 이름을 축복해주셨다. 당신의 손자 외에 초청된 동네 아이에게도, 먼 데서 온 손자의 친구에게도 똑같은 정을 베푸셨다. 「어린이를 위한 파티」주선자인 우리 여섯 남매도 아이들 못지않게 즐거웠다. 아이들의 웃음과 떠드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 음식상과 멍석을 치우고 마당 한가운데 화톳불을 지폈다. 아이들의 기쁨은 절정에 달했다. 날아드는 곤충들과 탁탁 튀는 불똥을 배경으로 우리 친정의 여름밤은 향기롭게 아늑하게 영원한 순간을 조각했다.

   아쉽게도「어린이를 위한 파티」는 2회에 그치고 말았다. 아이들이 점점 공부에 쫓겨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 그러나 그 두 번은 참된 진화요 경험이었다. 자연스럽게 어른 공경과 자기소개법을 익혔고, 사촌들과 친구와의 우정을 다졌을 뿐 아니라 가정환경의 심층부에 새로움을 추가했던 것이다. 근면성실하고 명석하며 인정어린 자녀로 키우기 위해 모든 엄마들은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인자가 애썼던「어린이를 위한 파티」역시 그 일환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좋은 ‘엄마환경’이었는지, 내가 정말정말 좋은 ‘제1환경’이었는지, 내가 정말정말정말 좋은 ‘최우선환경’을 내 아이에게 제공했는지에 대해서는 무딘 회의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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