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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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06.2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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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전환, 밥 먹고 같이 삽시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오늘 이렇게까지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종강시간 내가 제자들에게 했던 마지막 한 마디는 “모든 것은 밥 먹자로 끝난다.”는 말과 “부모님께 기생충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법학강의를 열심히 하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식당으로 향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괜히 측은해지기조차 한다. 물론 내 강의를 열심히 듣던 아이들도 식당으로 바삐 향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진리를 규명하겠다며 수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도 해보지만, 결국 살아 있음에 먹는 문제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먹는 문제 앞에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국가를 책임지겠다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정치가나 고위 관료들, 이 철학부재의 시대에 사상과 철학을 전파하겠다며 땀 흘리는 수많은 관념론자들조차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 그 세상에 우리는 홀로 버려져 있다. 전쟁터에서 아마 적군과 아군이 유일하게 찬성하는 한 가지라면 “밥 먹고 나서 전쟁합시다.”가 아닐까?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한다, 독립한다는 것은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할 때 가능한 문제이니 하루 속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를 바란다고. 부모님들도 자신들의 어깨가 무거워 쩔쩔 매고 있으니, 제 스스로조차 걷기 힘들어 버거워하는 부모님의 기생충이 되어 그분들의 고혈을 빨아먹지 말라고 따끔하게 일침한다. 하지만 어쩌랴,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더라도 그들을 제때 받아줄 일자리가 부족해 상당수 학생들이 실업상태에 내몰리고 여전히 부모님께 의지한 채 독립하지 못할 것이니, 이러한 사회구조를 해결할 묘안도 딱히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비극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노사간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여야간이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법률이 있으니 그 법이 바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법률이다. 소위 우리에게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법률이라고 알려져 있는 법률의 정식 명칭이다. 이 법은 2009년 7월 1일부터 상시 100인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도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 법은 10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는 이미 2008년 7월 1일부터 적용되고 있다.


이 법은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여 제정되었다. 이 법에서 말하는 기간제근로자란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그 기간은 2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법에는 사용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 제5조는 “사용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근로자를 우선적으로 고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여 기간제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우선 고용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제8조는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기간제근로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와 차별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또한 제9조는 “기간제근로자는 차별적 처우를 받은 경우 노동위원회에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사용자는 2년 이하에서만 기간제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통상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과 임금으로 정식 고용하여 계속 일하게 하거나,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사용자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임금이 비싼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량해고를 할 것이 뻔해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가 해고됨으로써 대량실업이라는 국가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사용자 및 여당과 정부에서 주장하는 논리이고, 이와는 반대로 이 법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강제조항에 의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근로자들의 고용조건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만일 사용자가 2년 만료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더라도 어차피 그 자리는 누군가(실업상태에 있던 다른 근로자)로 보충되므로 전체적인 근로시장의 채용인구는 변화가 없을 것이어서 정부 및 여당에서 주장하는 대량실업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이 늘어나서 노동시장이 더 안정화될 것이라는 것이 야당 및 노동계의 주장이다.


이 법이 시행된 후 지난 2년간의 통계자료는 꾸준히 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높아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된 10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채용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선 지난 해 하반기부터 정부 여당에서 100인 이하 사업장 시행 시기를 2009년 7월 1일 이후로 유예해야 한다고 하면서부터 통계가 반전되어 오히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량실업사태는 미시적 측면과 거시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2년이 만료된 일부 근로자들(통계에 의하면 매월 3만 명 남짓이 주기적으로 2년 만기에 해당된다고 한다)에 대한 해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당해 근로자는 실직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해고된 자리에 누군가인 다른 근로자를 대체고용할 것이기 때문에 해고당한 그 비정규직 근로자도 그 다른 직장에 고용될 개연성이 높아 결국 직장을 옮기는 번거로움과 그 해고와 새로운 대체채용에 따른 시차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거시적으로 보면 재고용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미시적으로 해당 근로자가 일시적으로 실직의 고통을 당할지 모르겠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노동시장의 총량은 동일하기 때문에 대량실직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용자 및 정부ㆍ여당의 주장은 옳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 이 법 개정을 주장했던 정부는 처음에는 100만 명 실업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다가 야당과 노동계의 엉터리 통계라는 비난과 함께 정확한 예상통계수치 제시에 꼬리를 내리고 이제는 30만 명 남짓의 실업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 예측도 맞지 않는 엉터리일 뿐이다. 왜냐하면 거시적으로 노동시장의 총량은 같으므로(갑자기 모든 공장이 문을 닫고 폐업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공장은 동일한 수준에서 다른 근로자를 고용하여 가동할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자리 이동만 발생할 뿐 실업총량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법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장단점은 무엇일까? 사용자측은 인건비를 아끼겠다는 목적만으로 숙련기술을 가진 기존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고 새로운 미숙련 기술을 가진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다 보니 기술 교육을 비롯한 각종 기회비용이 많이 들고 덩달아 생산성 저하로 인한 생산코스트가 많이 들어 비용절감 효과는 별로 기대하기 어렵고, 정부는 해고된 근로자들이 실업수당을 노동부에 청구할 것이므로 이의 지출이 늘어날 것이어서 재정지출이 약간 늘어날 것이고, 해고 근로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헤매게 될 것이므로 새롭게 채용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가정경제 등에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비용을 들이느니 차라리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인건비 등 다소의 비용이 높아지겠지만 숙련된 기술자를 계속 고용함으로써 생산성이 증가되고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애사심이 향상될 것이고, 가정경제가 안정될 수 있고, 정부로서도 유동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불안한 고용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갈 수 있고, 한계생산성에 놓여 있는 일부 취약기업에 대한 보조정책(이 돈은 어차피 해고당한 근로자들에 대한 실업수당으로 지출될 돈이거나 생계곤란자들을 위해 사회보장정책상 지출될 돈일 수도 있으므로 용도가 달라질 뿐 정부의 추가부담은 거의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보다 큰 경제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취업이 보장되어 가정경제가 안정되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으로써 소비심리가 살아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에 대하여 사용자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 보장이라거나 한계기업의 생산비 절감이 절실하다거나 등등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지만, 결국은 인건비 등의 경비절감을 통해 얻어진 소득을 사용자 개인의 소득으로 삼겠다는 것이 진짜 감추어진 속마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만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생산비 등을 감당할 수 없어 그 기업이 유지될 수 없다면 그 기업은 국가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퇴출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결국 “밥 먹자”의 문제일 뿐이다. 정규직 근로자들도 같은 노동을 제공하면서 비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훨씬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마음에서 조금 양보하여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에 실질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가능한 한 정규직을 많이 고용하여 더불어 함께 살아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쩌랴, 각자의 계산 방식이 다르고, 주판 실력이 다르니 말이다. 골치가 아프다. 에잇, 밥 먹고 합시다. 그런데 왜 당신 밥그릇이 커 보이지? <= 이 마음 좀 줄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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