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좀 더불어 편하게 삽시다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좀 더불어 편하게 삽시다
  • 법률저널
  • 승인 2009.06.12 1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지난 6월 10일, 6·10 범국민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1987년 6월, 전두환군사독재정권이 최후발악하며 박종철군을 고문치사했던 때 대한민국의 정신은 서울시청 앞으로, 서울시청 앞으로 모여들었었다. 6월 10일은, 군사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던 학생들의 피흘림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동조하면서도 직장에서 해고당할까 봐, 권력기관에 불법연행되어 고초를 당할까 봐 겁이 나 행동으로 나서지 못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용기를 내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날이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화이트칼라들이 서울시청 앞으로 몰려들었었다. 그 6월의 국민들의 결집된 함성은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로부터 6·29 항복선언을 받아내었고, 대통령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이 이루어졌다. 그 헌법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헌법이다. 그날의 환호는 2002년 월드컵거리응원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후 22년 동안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고,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도 이룩하였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이 자유로웠고, 많이 행복했었다. 그런데 다시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몰려들고, 손에 손에 촛불을 켜들고 외치고 있다, 진정한 자유를 달라고, 강압통치를 중단하라고...... 정말 우리나라만큼 시끄러운 나라가 세계에서 몇 개국이나 될까? 시계바늘은 멈추어 버렸는지, 아니 22년 전으로 역행하는지 전경들은 시민을 에워싸고 장벽을 높이 치고 있고, 소통을 외치는 소리는 공허한 불통의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는 다시 어려워지고 있고, 자유에 대한 목마름은 그 갈증을 더해가고 있다.


그런데도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의 6·10 항쟁 22돌 기념사에서의 진단은 완전히 다르다. “민주항쟁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뿌리내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사에 동의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확고하게 뿌리내렸음을 알기에......


수많은 대학 교수들이 집단으로 시국선언에 나서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집단시국선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동일한 현상에 대한 진단도 각각이고 처방전도 각각이다. 화해와 타협은 입으로 외치는 선문답일 뿐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삿대질과 물리력의 충돌기류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먹고 살만하니 예의염치를 알아 인문학도 덩달아 발달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양자간에 충돌이 빚어져 갈등의 폭을 넓히고 있으니 말이다. 현 시국의 근본원인은 “물질문명과 인문학의 충돌현상에서 빚어지는 갈팡질팡”이라고 정의내리면 잘못된 것일까? 불민한 나로서는 더 이상의 본질적 원인을 찾아낼 수가 없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구조조정을 위한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그 근저에는 지식경제부가 내려 보낸 대학평가지침이 있고, 그 지침의 중요배점사항 중의 하나가 졸업생들의 취업률 실적이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1순위 구조조정 대상이고, 그 대상으로는 인문사회학 계통의 학과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넌센스 같은 이야기이지만 대학의 평가지침으로 교수들의 연구 실적이나 학생들의 학문적 성취도 등은 고려대상이 되지 않고, 취업률과 같은 가시적 성과만이 주요평가지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학생들도 실용주의 학문 쪽으로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다. 어느 대학에서는 졸업생 취업률이 3%에 불과하여 폐과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그 학과는 예술분야였다고 한다. 문창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작가지망생이니 대부분이 프리랜서일 수밖에 없고, 국가에서 요구하는 취업률은 제로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정부 통계상 모두 실업자란다. 그러니 어찌 사람의 가치가 존중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대학이 학문의 요람으로서가 아니라 취업을 위한 기술자 양성소 같은 곳으로 전락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인문사회학이 멸시받는 세상은 “죽은 시인의 사회”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 잘못된 현상으로 빚어진 후유증 때문에 홍역을 치루는 단계로 접어들었고, 치유불능의 상태가 점차 깊어가고 있는데도 오히려 지식경제부를 필두로 한 국가기관은 그러한 “죽음으로의 행진”을 가속화할 모양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는 실용론 앞에 모두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 무시무시한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한 마디 때문에. 그렇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현재의 자본주의 자유경제는 비극적이지만 조종을 올려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자본주의경제원리로는 더 이상 경제가 나아질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른 것이다.


정말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결론이지만, 경제가 발달하면 할수록 실업자가 늘어나는 기묘한 엘리스의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고, 실업자를 줄이겠다고 큰소리치지만 다 거짓말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실업자가 더 양산되는 산업구조에 접어들었는데, 실업률을 줄이겠다는 것이야말로 거짓말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업이 추구하는 경제성장은 “이익률 제고”에 있을 뿐이다. 이익률 제고를 위해서 기업은 가지치기를 계속한다. 근로자를 집단해고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계로 대체하는 산업구조를 유지하려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경제선진국들의 실업률이 우리보다 현저히 높은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경제운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필요 없는 산업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구조도 이미 그 단계에 접어들었고, 점차 실업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비참하지만 앞으로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은 고실업의 위협 앞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가치를 새롭게 공부해야 하고, 확산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방침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듯하니 저렇게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자유의 보장을 통한 개별적 창의력을 높이기보다는 집단적 통제를 통한 획일화를 도모하려는 정책방향, 사람보다 물질이 앞서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은, 오늘 배가 부를지 몰라도 내일 사람이 없어지고 만다. 사람이 사라진 곳에 물질이 넘쳐난들 무엇 하겠는가?  


삼성의 편법상속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에 대해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가들조차도 63%이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상징이 무너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 상징은 오늘이고 내일이며 생명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의 상징에 비전이 있으면 사람은 인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오늘이지 않는가? 내일이 좋아질 것이라며 오늘을 참자고 하는 것은 또 다시 오늘이 되고 마는 내일도 참자고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계속 참으라고 강요하는 것에 속은 사람은 세 번은 참을지 몰라도 네 번째는 참지 않는다.


그렇게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 서울광장에서의 민주주의요구라는 말로 함축된, 촛불로 상징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부 정책은 기업이 최소한도의 투자와 연구를 위한 수익이 확보된다면 나머지는 고용을 확대하도록 수립되어야 한다. 근로자들도 특정인을 해고하기보다는 임금동결이나 임금삭감도 감수하는 방법을 통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협력체계로 노동운동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소비자가 무너지면 생산은 더불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실업자가 양산되는 사회는 구매력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기업도 망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까닭에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고용증대를 위해 기업의 운영방침을 바꾸어야 한다. 

 
좀 편하게 살자. 조금 적게 일하고, 조금 적게 벌고, 조금 적게 먹고, 조금 적게 가지고 살더라도 좋으니, 좀 더불어 편하게 삽시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