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어떤 하루(8)-법정 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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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이의 어떤 하루(8)-법정 견학
  • 법률저널
  • 승인 2009.05.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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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무 39기 사법연수생 hmkim@cyworld.com
 

연수원 1학기에는 다양한 행사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행사가 체육대회이고 그 외 각종 특강이나 법정방청, 교도소 견학 등이 있습니다. 특강이야 평소에 TV나 신문에서 보던 명사들이 연수원에 오셔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지만 더러 졸리기도 하고 1000명이나 되는 연수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앉자 있으니 답답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전 개인적으로 한비야 선생님과 손석희 아나운서의 특강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법정방청과 교도소 견학입니다. 교도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법정 역시 비법대인 저로서는 처음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전날 마치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레어하던 기억이 납니다. 법정은 민사법정과 형사법정 모두를 견학하는데 확실히 형사법정이 긴장감도 있고 사실관계 파악도 쉽기 때문에 더 관심 있게 지켜봤던 것 같습니다. 피고인들 중에는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정말 눈이 마주치는 것도 무서울 정도로 ‘범죄인 관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러는 정말 측은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불쌍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 인상 깊었던 장면을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희는 서울 고등법원 형사 항소부로 법정방청을 갔는데 당시 부장판사님께서도 연수원 교수님을 하셨던 분이라 연수생들의 견학을 굉장히 반가워하시고 하나라도 더 올바른 법정의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노력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순조롭게 재판이 진행되던 와중에 50대 중반의 한 구속 피고인이 법정으로 들어왔는데 들어올 때부터 재판부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울먹이는 말투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사안은 너무나 배가고파 새벽에 영업 준비를 하던 순대국식당의 건물 뒤편 컨테이너에서 시가 2,000원 상당의 순대를 절취하려다 주인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친 사안이었는데 동종전과도 많고 누범기간이라 구속까지 되어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것이었습니다. 동종전과라고 해봐야 모두가 무전취식(사기)이나 1만원, 5만원자리 전과가 전부였고 말 그대로 전형적인 ‘생계형 범죄’였습니다. 인상도 ‘범죄인 관상’이라기보다는 가난에 찌들어 힘겹게 살아온 그 분의 인생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 측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20여명의 연수생과 일반 방청객으로 꽉 찬 법정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귓속말로 “너무 불쌍하다”, “너무한다. 2,000원 자리 순대 훔쳐 먹다 걸렸다고 징역이라니...”, “높은 놈들은 더한 것도 해먹고도 잘만 사는데...” 등등 안타까운 탄성과 있는 자에 대한 비난으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간파하셨는지 재판장님께서는 근엄한 목소리로 재판정의 질서를 바로 잡으신 후 피고인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본 사건은 재판부에서 충분히 기록검토를 하였고 피고인에게 하루라도 빨리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피고인의 이익에도 부합하므로 변론을 종결하고 5분간 휴정한 후 판결을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5분 뒤에 판사님들이 다시 들어오셨고 모두들 숨죽이며 선고 결과를 지켜보았습니다. 재판장님께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판결을 선고하셨는데 제 당시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근엄하되 결코 거만하지 않았으며 권위와 근엄 속에는 피고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도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결과는 원심판결을 파기하되, 징역형을 감형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아무리 범죄사실이 경미하다고 해도 피고인이 누범기간이고 동종전과도 많았기 때문에 재판부에서는 고민 끝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처를 한 것입니다. 피고인은 눈물을 흘리며 또 다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90도로 고개를 숙이면서 그렇게 밖으로 나갔고 방청석에 있던 일반인들 중에 몇몇은 박수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12시 오전 법정을 마치고 일반인들이 모두 퇴정한 후에 연수생들과 재판부만의 별도의 대화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단연 화제는 ‘순대 절도미수’사건이었습니다. 재판장님께서는 법관이기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봐도 너무 불쌍한 사람이지만 법복을 입는 순간 모두에게 동일하게 대해야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판결을 치우치면 안 되기 때문에 말투에서 표정까지 모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 이 말씀을 하실 때의 표정은 아까 법정에서의 표정과는 달리 옛 제자들을 만난 선생님의 해 맑은 표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덥기까지 한 화창한 봄날에 공부가 너무너무 안 되신다면 한번 가까운 법원에서 법정방청을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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