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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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05.0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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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재학장/변호사/시인

 

KARSH의 인물사진전에서 만난 거울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것은 무엇일까? 진실한 것은 하나도 없을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카메라에 찍힌 내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에도 몇 번을 의미 있게 혹은 무심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다. 볼 때마다 얼굴 표정이 다른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에는 거울이 참 귀했다. 거울이라고 해도 겨우 얼굴 정도를 볼 수 있을 만큼 자그마한 거울이 대부분이었고,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대형 거울 같은 큰 거울은 드물었다. 그러기에 거울 볼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깨어진 거울을 골목길에서 주운 날은 그것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햇빛을 반사시켜 눈부시게 했고, 당연히 이놈들 하고 쫓아오면 도망가며 박수치는 개구쟁이가 되고는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거울이 넘쳐나고 있다. 어느 곳에도 시선만 돌리면 거울이 있다. 자신을 비춰볼 기회가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울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자신의 마음을 많이 비춰보았는데, 거울이 흔해진 요즘 세상에는 마음을 비춰보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세상 살기가 각박해졌다는 것인지 강퍅해졌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콩 한 조각도 나눠먹던 소박한 시절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거울이 넘쳐나는 것만큼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덩달아 성형의 칼날은 세상을 휘젓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뒷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마음을 비춰보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요셉프 카쉬의 인물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8년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시작한 그의 인물초상 작품전이 서울에서 개최된 것이다. 94세로 별세한 카쉬는 수많은 인물들의 사진을 찍은 초상작가로 유명하다. 카쉬(KARSH)전에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그가 찍은 수많은 작품 중 7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윈스턴 처칠, 알버트 아인슈타인, 오드리 햅번, 알버트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헬렌 켈러 등 이름만으로도 그 명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분들의 인물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카쉬전에서는 그들의 초상을 촬영하면서 있었던 간단한 에피소드가 곁들어 설명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던 카쉬는 행운아였겠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개별적으로야 다들 나약한 면이 있었을 것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성을 구축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온 위대한 인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순간 표정을 포착하여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을 카쉬의 예술혼과 철학, 그리고 사진 촬영술의 뛰어남을 그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마술 같은 조명의 조화로 밝음과 어둠이 구분되고, 깊이와 낮음이 분별되면서 색의 신비가 곁들어지는 사진, 모든 피사체는 새롭게 태어난다.


카쉬 앞에서 모델이 되었던 이들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깨달았을 법도 하다. 카쉬의 카메라 앵글을 통해 순간의 표정을 포착당한 모델들에게서 내가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은 하나 같이 모델들의 눈빛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일생을 한 분야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눈빛이 살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감동을 받았다. 어렸었을 때 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에 갔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통을 걷다보면 꼭 얻어 생기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맛있는 시루떡이나 인절미를 사 주시기도 하셨고 붕어빵도 사 주시기도 하셨다. 어쩔 때는 식혜를 사 주시기도 하셨고, 팥죽을 사 주시기도 하셨다. 요즘으로 치면 대형 마트의 스낵코너쯤이라고 할까, 당시에는 길거리에서 나무의자에 앉아 그러한 음식들을 맛있게 사먹고는 했었다. 그 맛에 어머니를 따라 나서고는 했지만, 그러한 사랑 속에서 어머니로부터 배운 진짜 지혜는 생선을 고를 때는 생선의 눈을 보고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선장사가 아무리 감언이설로 꼬드겨도 생선의 신선도는 생선의 눈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생선장수 아주머니와 가격을 흥정할 때 “생선눈깔”을 트집 잡아 가격을 깎으시던 기억이 새롭다. 언어도 그렇다. 생선머리나 생선눈은 실감이 나지 않고, 생선대가리나 생선눈깔이라고 해야 제대로 실감이 나는 것은 묘한 언어적 뉘앙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생선머리라고 하지 않고 생선대가리라고 표현되어야 생선가게의 생생함이 느껴지듯 카쉬도 그렇게 모델들의 눈빛을 통해 그들을 표현하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나 같이 눈빛이 살아있는 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거울 앞에 선 내 눈빛을 생각하며 또 한 번 반성해야만 했다. 삶에 찌든 내 모습이, 내 눈빛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싶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신체적 변화를 느끼게 된 것이 바로 눈이다. 십대 후반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하여 거의 사십년 가까이 안경을 쓰고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지 노안증세로 안경의 초점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다초점 렌즈를 착용하고 있지만 글을 읽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안경을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삶의 족적은 선배들이 살아온 행태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사진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궁금했던 점은 모델들이 모두 안경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연륜이 쌓일 만큼 쌓인 모델들이 평소에도 안경을 쓰지 않았는지, 아니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는지 모르겠지만, 노안으로 카메라 앵글을 향해 눈의 초점을 맞추기 상당히 힘들었을 텐데도 안경을 벗은 노인들의 눈빛이 살아 있다는 것은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대한 위인들의 얼굴에서는 그들의 눈빛만큼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정치가 처칠의 눈빛에서 느껴졌던 강인함,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소박한 지혜로움, 세계적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에게서 느껴지는 노예술가의 창작열과 천진함, 카루소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흑인 성악가 제시 놀만의 영성어린 모습, 영원한 연인 오드리 헵번의 우아함과 고요로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승리한 헬렌 켈러의 의지와 평화로움,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수고로움과 겸손함 등을 배울 수 있었다.


다행히 전람회장이 넓지 않고 한가했기에 몇 번을 반복하며 거장들의 얼굴을 사진으로나마 맞대고, 당신들은 어렵고 힘들 때 어떻게 결단했으며, 평화롭고 고요할 때 어떻게 영혼을 쉬었습니까라고 묻고 또 물었다.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당신들의 모습은 지금 내게 하나의 거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라고 스스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9일 국회의원 재보선선거가 다섯 군데서 치루어졌고, 한나라당은 한 석도 당선시키지 못하고 참패하였다. 지난 1년 동안 무한질주를 거듭해온 한나라당에 대한 엄중한 국민의 경고성 의사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3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재직시의 뇌물 스캔들로 소환되었다. 그가 받은 뇌물이 전직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미미할지라도, 재 묻는 놈이 겨 묻은 놈 비난하더라도 그 비난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이치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면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네 삶의 거울이다. 카쉬가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선 모델들을 통해 그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 앵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은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대로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내려고 해도 세상이 바라보는 거울은 언제나 정직하다. 


내가 할 일은 나의 거울을 닦고 나를 닦는 것뿐이다. 비춰지는 모습이 추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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