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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5.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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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흙은 생명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종국에는 흙으로 환치된다. 흙은 죽은 자의 무덤이 아니라 산 자의 집이다. 세상 모든 생명은 흙에서 태어나고, 흙에서 살다가 흙으로 죽는다. 성경 속 최초의 인간, 아담은 “붉은 흙, 남성”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adama에서 유래하고, 최초의 여성인 이브는 터키어인 eve(흙)에서 유래한다. 하나님도 인류 최초의 인간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면서도 그 근원이 흙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문학에 심취했던 십대 때,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펄 벅의 “대지”와 박경리의 “토지”는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책들이다. 모두 흙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흙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강인한 의지의 사람들이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삼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1930년대의 중국 혁명기를 배경삼아 빈농에서 거농이 된 왕룽 일가의 이야기 대지나, 조선말에서 일제치하에 걸친 민족 설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토지나 모두 흙과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 사람의 이야기이다. 특이한 것은 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남자인 것 같지만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스칼렛, 아란, 서희 모두 약한 여성이지만 강인한 의지의 여성들이고, 그들은 대지가 상징하는 모성성,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고 있다. 스칼렛이 폐허가 되어 버린 타라, 농장을 바라보며 독백처럼 읊조리는 말, “하느님, 당신이 증인이십니다. 당신 앞에 맹세코 이대로 쓰러지지 않겠습니다. 이 고난을 견디어 내고, 이 이후에 다시는 내 식구들을 굶주리게 하지 않겠어요. 필요하다면 거짓말, 도둑질, 사기, 살인을 해서라도 다시는 절대 굶주림에 허덕이지 않겠습니다.”라며 절규하는 장면이나, 왕룽이 죽기 직전 자식들에게 하는 유언 같은 말 “우리들은 땅을 파먹고 살아왔어. 그리고 또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야 돼. 너희들도 땅만 가지면 살 수 있어. 누구라도 땅만은 빼앗을 수 없어.”라는 부분이나, 조준구에게 빼앗긴 선대의 평사리 토지를 되찾기 위한 서희의 집념은 인간이 흙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근본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토지의 박경리 선생이 땅에 묻혔다. 우리나이로 여든 둘의 할머니가 어린이날인 지난 5월 5일에 운명하였다. 대한민국의 많은 지성인들에게 토지라는 대하소설을 통해 엄청난 사상적, 정신적 영향을 끼쳤던 분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 속에 명복을 빌었다. 십대 후반에 토지를 처음 읽은 후 몇 년씩 간격을 두고 출간되어 왔던 5부 16권을 세 번이나 읽으면서 “사람의 근원”은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 질문을 수없이 던졌던 나로서는 박경리 선생의 타계에 한동안 머리가 멍한 상태가 되기도 하였다.

  흙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사망자와 실종자 수만 해도 4만 명이 넘고, 지난주 미얀마의 사이클론 자연재해로 인해 10만 명 이상이 죽고 150만 명 이상의 재해민이 발생했다는 끔찍한 외신이 전해져 온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광우병 파동도 결국은 신토불이의 흙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대지가 변하지 않으면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도 변하지 않는다. 흙은 있는 곳의 정신을 지배한다. 피어나는 식물을 지배하고, 그 식물을 먹고 사는 생물을 지배하고, 그 생물을 먹고 사는 다른 생물을 지배한다. 결국 흙은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힘의 근원이고, 그 흙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할 때 자연은 생명들에게 재앙을 내리게 되고, 생명들은 제 잘난 듯이 설쳐대다가도 아비규환의 지옥을 체험하면서 다시 흙에게 복종하게 된다. 앞으로 이러한 자연재해는 더욱 극심해질 모양이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도 일부 과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중국이 그 일대에 설치한 댐의 과도한 수압을 견디지 못한 지질판 이상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있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기압골의 변화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그러다 보니 사이클론이나 태풍,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의 강도가 세어지는 것이라는 기상학자들의 관측도 보도되고 있다.

  한꺼번에 수십 만 명이 죽어나가는 자연재해 앞에서 대한민국은 인간광우병 공포로 떨고 있다. 3억 미국인구가 매일 같이 먹는 미국산 쇠고기와 우리에게 수입되는 쇠고기가 다르도록 한미협정이 체결된 것에 대하여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광, 광,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인터넷 괴담으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국민들의 불안 심리는 광화문 촛불집회를 통해 더욱 확산되고 있고, 급기야는 반미운동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 미국도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한국정부의 수입제한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아니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면 당연히 수입을 금지해야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쇠고기를 사야 한다고 강변하는 미국 정부는 사정변경의 원칙도 모르는 억지꾼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더 한심한 것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재협상을 거부하는 한국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누구 말마따나 꼭지 돌아 버릴 일이기도 하다.

  이러는 와중에서도 중국에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국민 축제 속에 계속하고 있고, 북한은 15,000쪽이 넘는 핵개발내용을 미국측에 모두 제공하고, 미국은 그러한 내용이 모두 진실되고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근일 내에 북한의 핵연료봉 폭파장면을 전세계에 내보내는 이벤트를 펼치고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하고 있고, 미얀마 군부독재 정권은 150만 명이 넘는 이재민들에 대해 외국의 구호물자만을 받을 뿐 의료진을 포함한 구호요원들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군부에 20%의 국회의원들을 자동배정하는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통과시키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고, 미국은 관타나모 섬에 여전히 인권유린의 무재판 교도소를 운영하면서 테러 용의자들을 불법감금, 고문하고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잔해더미를 뒤지는 쓰촨성 강진 현장의 눈물겨운 인간애와 수십만 명의 생명이 제2의 태풍으로 위태롭게 될지도 모르는 미얀마의 잔혹함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 그곳이 이곳 지구이고, 흙이고, 대지이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신기한 일이다.

  박경리 선생이 지난 4월 현대문학에 마지막으로 발표하신 “옛날의 그 집”의 한 대목 - “'…그 세월, 옛날의 그 집/그랬지 그랬었지/대문 밖에서는/늘/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을 떠올리며, 마지막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들아, 인간들아, 그만 으르렁거리고 살자. 살면 몇 년을 더 살 거라며 이렇게 모질게 살아야 한단 말이야. 몇 년 세월 지나면 모두 다 대지, 토지, 흙의 일부로 돌아갈 우리 아니냐. 죽은 뒤 지옥에 가서야, 산 자들에 의해 실컷 욕을 얻어 먹고서야 후회할 인간아...... 에구, 죽은 뒤에 후회하는 사람도 없지, 말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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