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교실 1 - 할머니들의 마음을 붙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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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교실 1 - 할머니들의 마음을 붙잡아라
  • 법률저널
  • 승인 2008.02.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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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인 이창현 변호사
 
  70대의 자매 사이인 할머니 두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평소 잘 만나지 않아서 근황을 모르고 있던 여동생이 사기죄로 갑자기 구속이 되었다기에 구치소에 면회를 가보니 여동생은 피해자가 약장사에게 돈을 빌려줄 때에 옆에 있기만 하였다면서 억울하다고 하니 변론을 맡아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여동생을 접견하여 들어보니 사건 내용은 대강 이러하였다. 동네에 노인들을 상대로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는 곳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아는 할머니와 구경을 갔더니 약장사가 노래를 너무 잘 하고 할머니들에게 워낙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샘플이라며 여러 물건을  제공하여 주기도 하여 자주 가서 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70대 중반의 피해자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피해자도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자주 약장사에게 가서 놀게 되고 그러다보니 약장사의 은근한 권유에 미안한 나머지 건강보조식품이나 그림 등 별로 필요도 하지 않은 물건을 원가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외상거래가 가능하다는 말에, 나중에는 그곳에 모인 할머니들이 약장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사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약장사는 옛날에 가수지망생 출신으로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도 많고 입담도 좋아 자기에게 찾아오는 할머니들에게 갖은 아양을 다 부리는 바람에 할머니들은 약장사를 보기 위해 그곳에 자연스레 몰려들었고 “아들 삼고 싶다. 상속도 해주고 싶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였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무관심 속에 외롭고 심심한 할머니들에게 우상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장사가 여동생에게 직원 급여와 물품 구입비가 부족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고 여동생은 이혼한 아들이 일을 한다고 집을 나가 있어 초등학교 6학년인 손녀를 혼자 돌보고 있는 처지인데다가 이미 여러 물품을 구입하고 외상값도 많이 남아있어 미안하기도 하여 피해자에게 약장사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이에 피해자는 약장사에게 기꺼이 300만원을 빌려주겠다고 하였고 여동생은 자신이 빌리는 것처럼 피해자에게 고맙다며 보증을 서겠다는 말까지도 하였던 것이다.

 

이후에도 약장사는 보통 여동생에게, 그리고 가끔은 피해자에게 직접 이야기하여 계속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리게 되었고 피해자가 약장사에게 돈을 빌려주는 자리에는 대부분 여동생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피해자가 더 이상 빌려줄 돈이 없어지게 되었으나 약장사는 여러 불가피한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대박이 터지면 한번에 이자까지 갚을 수 있다”고 장담하였고 여동생도 “이왕 도와주었으니 끝까지 도와주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고 하여 피해자는 주택까지 담보로 잡고 더욱 큰 돈을 빌려주게 되어 결국 3억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약장사와 사기 공범으로 몰린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여동생에게 범의를 부인하는 대신 피해자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면 재판장에게 더 나쁜 인상을 줄 수가 있으니 증거는 동의를 하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는데, 약장사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사기죄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피해자가 빌려준 돈이 모두 약장사에게 전달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바람에 1회 심리기일에 결심이 되지 않고 2회 기일에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들 때문에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던 집까지 경매로 넘어가서 당장 밖으로 쫓겨날 지경이다”며 울먹였고 약장사와 피해자가 인정하는 피해금액이 서로 틀리는 바람에 중간에서 여동생이 소위 ‘배달사고’를 낸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만 더 받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결국 여동생은 약장사보다는 훨씬 형이 약하긴 하였으나 사기죄가 인정되어 실형이 선고되고 말았다.


  여동생이나 피해자와 같이 약장사의 고객이었던 할머니 두분이 재판을 구경하고 변호인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피해자는 어느 건강보조식품을 먹었더니 회춘이 된 것 같다고 하면서 어떤 때는 약장사의 옆모습만 보아도 짜릿한 흥분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양복도 사주고 정말 피해자와 여동생이 약장사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을 벌인 적도 있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고 하면서 “그곳에 가서 몇천만원 날리지 않은 할머니가 있으면 나와 보라”는 말까지 하고 갔다.


  1심이 선고된 후에 만난 여동생은 변호인에게 “나는 다섯 자매 중에서 셋째인데 다른 자매들과 달리 혼자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왔다. 나는 몇개월 더 고생하면 되지만 이제 중학교에 입학 손녀에게 미안하고 보고 싶다”고 하였다. 변호인은 2심에서 기대를 해보자고 위로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약장사는 노년에 외롭고 심심하고 상실감에 빠져있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붙잡는 능력으로 새로운 사기분야를 개척하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보다 더욱 외로움에 지친 할아버지들은 또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입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령화 사회’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즐겁게 할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아름다운 노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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