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흥수 칼럼 6 - 사랑과 율법
상태바
문 흥수 칼럼 6 - 사랑과 율법
  • 법률저널
  • 승인 2008.02.29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예수님 당시의 종교 사회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단(異端)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정죄(定罪)하고 죽였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님,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고 정죄하며 십자가에 처참히 못 박는 일이 왜 생겼을까?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도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참으로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다.

 

2. 구체적으로 예수님 당시로 돌아가 보자. 예수님은 현세에서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수많은 병자들과 장애인들을 고쳐주셨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으며,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성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구세주요, 예수님을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말들이 오고 갔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먼저 과연 예수님이 누구인가 알고자 하였다. 복음서에는 바리새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예수님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 나돈다.

 

3.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치는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는 경악하였다. 그들은 조상들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한 결과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비참한 노예 신세가 되어 버린 역사를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종교지도자로서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나름대로 율법을 잘 지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들로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예수님을 그대로 방치하였다가는 망한 나라가 더욱 망하고 자신들도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것이다.

 

4. 율법의 문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 즉 율법의 정신을 잊어버린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율법의 정신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비록 원죄로 인하여 사망의 저주 안에 놓인 인생들이지만 율법을 지키며 복된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이 계명을 어긴 결과 질병에 걸리고 장애인이 되어 버린 채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계명을 어긴 결과 안식일에 안식하고자 하여도 안식할 수 없는 병자들을 안식일에도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안식을 선물하셨다. 율법의 정신인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예수님이 하신일은 전혀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율법을 완성시킨 일이다.

 

5.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표면적이고 문자적인 율법과 본질적으로 사랑의 법인 참된 율법과의 대충돌이 발생한 것이 십자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도 문자와 정신, 율법과 사랑, 계명과 복음사이에 얼마든지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엄격하고 엄숙하게 신앙생활을 할수록 사랑의 정신에서 멀어질 수 있다.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인생들을 바라보기 보다는 율법적으로 바라보며 정죄하고 심판할 수 있다.

 

6.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의 정신”이다. 붉은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붉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인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사랑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주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칭찬한다. 때로는 책망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뜨거운 사랑으로 말미암을 때 책망 받은 사람이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7. 반대로 바리새인들과 같이 표면적 문자에 사로잡혀서 타인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거나, 자신들의 기득권이  박탈된 것을 두려워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악령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사건건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들보는 빼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티를 빼려드는 사람들일 수 있다.

 

8. 천국은 사랑의 나라이다.  사랑은 군림하면서 호령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하늘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낮은 데로 내려가서 눈높이를 맞추고 눈물을 씻어주고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천국의 사람이다. 그 사람이 또 천국에서 영광의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죄용서와 자아처리, 그리고 성령충만의 정도와 사랑의 정도는 비례하고 사랑의 정도와 행복의 정도, 영광의 정도도 비례한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