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人과 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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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人과 者
  • 법률저널
  • 승인 2008.01.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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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호칭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존댓말이 있는 우리의 언어체계상 더욱 그렇다. 영어에도 sir, honour와 같은 존칭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처럼 그렇게 일반적이지는 않다. 존칭을 하였느냐 여부에 따라 “네가 나를 뭘로 보고?” 하면서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하는 게 우리네 실정이다 보니 더욱더 호칭에 유의할 일이다.


대한민국헌법 제67조 제2항은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라고 하여 대통령선거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국민들은 생소하겠지만 1차 국민투표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일 경우 국회에서 2차로 결선투표를 치르게 되는데 거기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대통령)당선자”라고 호칭하고 있다. 지난번에 내려진 소위 이명박 특검법 위헌여부 결정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도 대통령당선인보다는 대통령당선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헌법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에 비추어 타당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도 있다.  


그런데 공직선거법 제187조 제1항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고 이를 국회의장에게 통지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대통령당선인”으로 명명하고 있어 헌법의 명칭과 다르게 사용해서 문제이다. 이처럼 대통령당선자와 대통령당선인 두 용어가 헌법과 법률에서 다르게 사용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도 하는 모양이다.


당초 언론은 대통령당선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한나라당의 요청에 의해 대통령당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당선자와 대통령당선인은 어감상 차이가 있기는 하다. 者는 놈, 사람, 일, 물건 등을 일컫는 한자어이고, 人은 사람, 인간, 인격, 인품 등을 일컫는다고 되어 있어서, 자보다는 인이 더 품격이 있는 듯도 하다. 하지만 두 언어 모두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별 차이가 없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者는 우리가 통상 놈 者이라고 번역하여 피의자, 가해자와 같이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왕을 지칭하는 王者의 경우와 같이 높임말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그 외에도 철학자, 학자, 현자 등과 같이 좋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人 역시 현인, 선인, 지식인과 같이 좋은 의미의 사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범인, 피고인, 악인과 같이 나쁜 의미의 사람을 나타낼 때도 있다. 결국 者나 人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앞에 붙게 되는 낱말이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이나 자와 같은 접미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붙는 접두어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측이 무슨 의도로 당선자라는 용어보다 당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줄 것을 주문했는지 모르지만, 헌법과 법률에 당선자와 당선인이라는 두 용어가 혼재 사용되고 있으므로 어느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할 듯싶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권유한 바와 같이 헌법에 표기되어 있는 당선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법에 당선인으로 되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그것은 국회의원들이 헌법 조문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공직선거법을 입법한 실수를 범한 것이므로 하루 속히 하위법인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라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결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조직개편에 따른 공직사회의 대대적인 혁신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7,000명 가까운 공직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공직사회가 술렁거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공직자의 수는 전체적으로 줄어드는데, 조직개편된 부처는 공룡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부처를 통합하다 보니 기능의 통폐합에 따른 집중과 쏠림으로 인한 착시현상이기를 바라지만, 거대한 조직이 하나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권한이 비대해진 조직을 어떻게 누가 통제하지 싶은 조바심이 생겨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민주주의의 장점은 정부기관 상호간의 균형과 견제가 시스템을 통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공산당처럼 특정기관에 권력이 집중되지 않고 각 조직별로 상호통제와 견제를 통해 균형을 맞추어나가는 것을 하나의 이상으로 생각한다. 3공화국과 5공화국 시절, 대통령경호실이나 중앙정보부(혹은 국가안전기획부) 등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가 몰매를 맞고 나와도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황당한 시절이 있었다. 그 몰매를 맞고 나온 사람 중에는 장관도 있었고, 국회의원도 있었고, 시골 도지사도 있었다. 한국판 모피아라고 불리는 경제기획원 역시 국가경제개발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고, 예산과 금융을 주물럭거려도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제동을 걸지 못하였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속전속결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동한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급증은 모든 국민에게 부지불식간에 전염되었고, “빨리빨리”라는 한국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빨리빨리증후군은 세계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애프터서비스시스템을 구축하여 전자가전제품부분을 필두로 하여 선진국과의 경쟁을 가능하게 하였고, 공기 단축을 통한 해외건설분야의 경쟁력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빨리빨리는 내부기초의 부실화를 가져왔고, 보다 원대한 성장의 발목을 잡는 훼방꾼이 되어 이를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은근과 끈기”라는 수필을 교과서에서 배우며 은근과 끈기를 우리의 미덕이라며 금과옥조로 교육받았던 세대는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는 세대가 되어 버렸다.


당선인과 당선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의식의 밑바닥에 깔린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여튼 호칭은 대단히 중요하다. 호칭을 통해 자존이 지켜지고 부지불식간에 권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국민의 의식 속에서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국민들로부터 “노통”이라는 비속어로 불리면서부터이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이통”으로 불리지 않기를, 그래서 우리 국민 모두가 대통령을 권위자로 그의 임기 내내 존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잘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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