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종잣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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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종잣돈
  • 법률저널
  • 승인 2010.01.0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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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님들께 새해 인사드립니다. 경인년 한 해에는 모두들 호랑이 등에 올라타시고서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는다는 옛말 기억하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 성공하시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나도 그렇게 살아볼 작정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결심을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잘못한 것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고 무언가 새롭고 보람 있는 일을 하기를 다짐한다. 원대한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고,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결심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스스로를 학습한다. 하지만 그 맹세는 사흘을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 약한 인생이라,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전의 잘못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면서 습관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옛말이 하나 그르지 않다.

  그렇다면 새해가 되면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몇 가지 제도적 변화야 있겠지만, 실제 우리의 일상은 달라지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여전히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하여 아등바등거리는 것은 붕어가 수족관에서 숨을 몰아쉬면서 입만 뻐금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고, 여전히 힘들게 사는 이들은 힘들게 살아갈 것이다.

  2010년에는, 모두들 종잣돈이 마련되는 한해이기를 소원한다. 얼마 전에 발족한 미소금융재단이 그 일을 시작하여, 어려운 형편에 있는 서민들에게 5천만 원 이하일망정 창업자금을 무담보로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많은 이들이 그 문을 두드렸다가 거절당하기도 한다는 보도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 모양이다.

  인생에 있어서 종잣돈은 대단히 중요하다. 종잣돈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언제나 터덕거릴 수밖에 없고,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종잣돈은 자존심이기도 하고, 자립의 근거이기도 하고, 인격독립의 발신음이기도 하다.

  종잣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는 이들은 호박 굴리듯 한꺼번에 노 나는 일을 하여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지만, 종잣돈이 없으면 눈앞에서 이익이 생기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호박이 넝쿨채 굴러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손을 내밀 수가 없다. 그 종잣돈은 실제 현금일 수도 있고, 교육과 경험과 같은 지적 재산일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아는 인적 재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종잣돈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삶의 여력이 없어 종잣돈을 마련할 수조차 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회적 지원을 하여야 하는데, 금년 예산편성에도 사회적 약자를 돕는 부분이 많이 삭감되었음은 슬픈 일이다.

  새해 원단에 희망찬 이야기를 가지고 시작하는 게 도리이겠지만, 이미 예상되는 현황은 빈익빈부익부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계속 펼쳐질 것이 눈에 뻔하게 보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다. 어쩌면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이 있듯, 걱정스러운 사회현상이 눈에 보이니 그냥 사서 걱정을 하는 내모습도 참 야릇타 하지 않을 수 없다.

  2010년은 실리 중심의 맹목적 전진이 사회 가치의 중심에 자리 잡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약용의 실학사상은 양반 중심의 잘못된 조선의 사회제도를 혁파하고, 백성 중심의 경천애인의 민본사상에 뿌리를 둔 점진적 개혁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0년의 실리 중심의 실용정책의 중심은 무엇일까? 우리 헌법정신은 민주정치가 법치와 평등의 원리 하에서 운영되기를 천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 형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란성 쌍둥이처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제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이윤을 합리적으로 제한하여, 평등을 실현하려는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그러한 평등의 가치를 부정한다. 블랙홀이 우주를 빨아드리는 흡입력을 발휘하듯, 자본주의는 아흔 아홉 섬 가진 부자가 가난한 자의 마지막 한 섬을 빼앗아 백 섬을 채우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사회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장논리를 앞세운 자본주의는 끝없이 수정에 수정을 거쳐 왔고, 문어발처럼 팽창하려는 속성을 지혜로운 자들에 의해 제지당하고 절제되도록 순치되어 왔지만 그 본질은 어찌할 수가 없다.

  아랍에미레이트로부터 400억 달러 원전공사를 수주하였다는 낭보가 전해져왔다. 그것도 원전 최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의 합작 컨소시움을 물리치고 얻는, 건국 이래 단일 공사 수주 건으로는 최대공사라고 하니, 그 평가를 가볍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물론 그 뒷면에는 원자력을 이용하는 것이 먼 훗날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환경단체의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공사 수주를 통해 한국의 원자력 기술이 적정한 평가를 세계로부터 받게 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하여 서민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고용증대의 효과가 발생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건희 삼성회장에 대한 1인 단독 특별사면이 지난 달 29일에 단행되었다. 10년간이라는 긴 기간 동안의 수사, 특별검사제를 통한 힘든 기소, 수천억 원에 이르는 배임죄에 대한 3년 징역 5년 집행유예라는 가벼운 형량이 선고된 지 불과 넉달만에 이루어진 1인 특별사면은 많은 의식 있는 법률가와 국민들을 당혹케 한다. 동계올림픽의 세 번째 평창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국가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그의 아이오시위원 자격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이 특별사면의 표면이유이지만, 실제는 국내 제1기업인 삼성 그룹의 최고경영자에 대한 특별대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법대로를 부르짖으며, 국격의 품위를 주장해 왔던 이명박 대통령의 법치주의의 얄팍한 가치기준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실용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본 상수에 변수를 대입한다. 1번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2번을, 2번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3번을 끊임없이 대비시키는, 말 그대로 될 때까지 해보는 습성이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실험실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자연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묘한 것이라, 어떠한 실용적 가치를 도출해 내더라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다. 두 명의 생명과 한 명의 생명을 비교하여, 두 명의 생명이 더 귀하니 한 명의 생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성경도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고, 우주를 얻은들 너의 생명이 거두어지면 모든 것이 헛되다고 갈파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에는 절대로 양보할 수 있는 절대선이 존재하고, 이 절대선은 어떠한 국가권력으로도 넘어설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명색을 내세워 이건희 삼성회장만을 특별사면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눈앞에 보이는 실리를 위해  보다 큰 가치를 너무나 손쉽게 포기해버리는 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2010년에는 원칙이 통용되는 세상이기를 희망한다. 호랑이 한 마리 출현으로 모든 이들이 제 목숨 아까워 이리저리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에 급급한 세상이 아니라, 호랑이가 출현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원칙이 확립되어 있는 세상, 그리하여 호랑이조차도 그 원칙 앞에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 그리하여 모든 백성이 그 원칙을 신뢰하면 배신당하지 않는 세상, 그 원칙에 의하여 사람답게 대접받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죤 스튜어트 밀은 그의 자유론에서 틀렸다거나 해로운 말을 한다는 이유로 언로가 막혀서는 안 된다고 갈파하였다. 2010년에는 모든 언로가 살아있는, 그래서 政治가 올바른 正治가 되기를 소원한다. 정말 2010년 한 해는 모든 백성이 등 따시고 배부른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종잣돈이 마련되는 한 해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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