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국 선거제도의 문제점 :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제 선거

2023-06-09     신희섭
신희섭

정치학자 모리스 듀베르제는 선거제도에서 당선자 결정방식이 정당과 유권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일반화했다. 여기에 법칙(law)이란 이름을 붙여 선거제도에서 가장 유명한 규칙인 ‘듀베르제의 법칙’을 만들었다.

듀베르제는 선거제도 중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은 선거 게임에 참여한 행위자들의 계산식에 영향을 미쳐 투표 방향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당의 개수로 평가되는 정당체계 수준으로 완성된다. 이 이론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우리가 지역구 선거에서 사용하는 상대 다수제라는 제도는 거대 정당에게 표가 몰려 양당제를 만든다. 반면 정당투표에서 사용하는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 다당제가 구축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배하는 것이 유권자와 정당에 각각 미치는 효과다. 먼저 정책 공급자인 정당은 ‘기계적 효과’에 지배를 받는다. 기계적 효과는 정당이 직면한 선거제도에서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다. 즉 특정 선거제도의 당선자 결정방식에서 정당 득표율이 의석률로 전환되는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 다수제에서 득표는 30% 했지만, 의석으로 전환이 0%에 가깝다면 정당은 선거판에 뛰어들지 않는다. 돈만 드는 선거에 누가 뛰어들겠는가!

유권자는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 것인지를 따져 투표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10% 정도에 불과하다면, 당선 가능성이 좀 더 높은 차선의 후보를 선택한다. 이를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e)’라고 한다. 반면 비례대표제에서는 자신이 지지한 정당에 몰린 표를 전국적으로 거둬서 의석으로 전환해준다. 그래서 유권자는 전략적 투표 대신 ‘진실한 투표(sincere vote)’를 한다.

이제 교과서 이야기는 멈추고 한국 현실 이야기를 해보자. 그럼 상대 다수제만 전략적 투표를 하고 비례대표제는 진실한 투표를 할까? 그렇지 않다. 비례대표제에서도 전략적 투표가 일어난다. 한국 선거제도에서 이 부분도 문제인 것이다.

우리 선거제도의 주력은 상대다수제다. 전체 의회 의석 300석 중에서 253석이 소선거구제에서 상대다수제로 선출된다. 소선거구제는 선거구의 크기를 말한다. 대체로 한국은 16만 명당 한 석 정도의 크기다. 상대다수제는 후보자 중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상대다수제는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당선자에게 간 표를 제외하면 유권자의 의사는 휴지통에 버려지는 것이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21대 총선에서는 투표수 2,874만 표 중에서 1,256만 표가 사표가 되었고 비율로는 43.73%다. 20대 총선의 50.32%에 비해 비율은 낮아졌지만 버려진 표는 30만 표가 더 늘었다. 그런데 17대는 49.99%이고 18대는 47.09%이며 19대 46.44%로 전체적으로 사표 비율이 높다.

사표율이 높은 이유는 명확하다. 특정 지역마다 이념과 지역주의가 강력해 이 추세를 따르지 않는 표들 대부분이 무효가 된다. 지역선거에서는 소수정당이나 소수가 지지하는 후보에게는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럼 비례대표제는 사표율을 낮추면서 소수정당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는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비례대표제에서도 사표가 높게 나온다. 21대 총선에서는 11% 정도 사표가 되었다. 이들이 지지한 소수정당이 봉쇄규정(3% 득표기준)을 넘어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소수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여 비례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도 이 선거제도에서 유권자와 정당은 진실한 투표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된다. 20대 총선까지 사용한 병립식 비례대표제도는 정당이 받은 득표율을 비례의석수에 곱해서 의석을 배분한다. 하지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받은 득표율을 전체 의석수에 곱해서 계산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구에서 선전하는 거대 정당은 정당이 받은 득표율보다 높은 의석을 이미 지역구에서 차지한다. 그러니 이들 정당에 표를 던져봐야 사표가 된다.

이때 거대 정당 지지 유권자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 다른 정당에 표를 던지는 분할투표(split vote)를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혹은 지지 정당이 정당 연합이나 정책연대를 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 더 문제는 이미 의석을 충분히 얻은 정당들이 위성 정당을 만들거나 특정 정당에 표를 던지도록 해서 의석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이 해보지 않은 위성 정당을 만들어 선거제도를 무력화하였다. 또한, 준연동형제를 47석 전체가 아닌 30석에 캡을 씌우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소수자를 보호하려는 제도적 취지는 흔적만 남아버린 것이다.

한국의 두 가지 선거제도는 모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수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양당제와 조응되는 대통령제라는 어려운 전제조건 역시 가지고 있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22대 총선에서 우리는 같은 문제를 똑같이 만나지 않을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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