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2-ChatGPT 세상(2)

2023-03-24     손호영
손호영

요즘 제 관심은 여전히 ChatGPT에 쏠려 있습니다. 한 달 전쯤 ‘ChatGPT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습니다만, 한 번 더 내용을 작성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겠습니다. 정말 ChatGPT 세상(보다 폭넓게는 대화형 인공지능 세상)이 도래한(할) 것 같아서요.

저는 코딩의 ‘ㅋ’도 모릅니다. 언젠가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해볼까도 했었지만, 어려워서 접어 두었습니다. 필요가 있기는 했습니다. 업무에서나 아니면 취미활동으로라도 여러 작업을 자동화하면 어떨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을 거쳐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느니 그냥 내가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멈춘 상태였습니다. 합리화였겠지요.

그래도 코딩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선망은 항상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코딩하는 공익(반병현)’이라는 분의 일화를 들었을 때는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분이 노동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일 때였습니다. 노동청에서 보낸 우편물을 민원인이 수신한 적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쟁이 생길 때 등기 조회서비스를 이용하면 어떻겠냐 하는데, 우체국은 최근 1년간의 등기우편만 발송 기록 조회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노동청에서는 “최근 1년간 노동청에서 발송된 모든 등기우편의 발송내역을 조회하여 종이에 인쇄해 보관하자.”는 답을 내어 놓아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합니다.

‘우체국 홈페이지 접속 → 등기번호 13자리 입력 → 검색 결과의 인쇄’라는 과정을 1년 치 우편을 대상으로 모두 한다니, 아득해집니다. 클릭만 도대체 몇 번일까요. ‘코딩하는 공익’은 이 과정을 파이썬을 이용해 모두 자동화했습니다. 누군가는 오래도록 붙잡고 있을 일을 단 하루만에 모두 완료한 것입니다.

코딩을 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실재’한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던 일화였습니다. 물론 코딩을 공부할 첫 발까지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코딩이 없어도, 일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며칠 전 아내가 엑셀 데이터를 수정할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충 들어보니 수작업으로 좀 하면 될 것은 같은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이거야말로 프로그램이 필요한 작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코딩을 모르는데? 이때 ChatGPT가 떠올랐습니다. 물어보자!

ChatGPT의 등장과 함께 활용 후기를 열심히 보고 읽고 들었던 덕분일지, ChatGPT가 코드를 잘 짜준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이런~ 이런~ 것을 하고 싶은데, 네가 좀 코드를 짜줄 수 있어?

ChatGPT는 지치지 않았고 어떤 질문에도 답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올바른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나온 코드를 돌렸을 때는 돌아가지를 않았습니다. 오류 메시지를 그대로 들려주니, 수정을 하더라고요. 다음 번에는 전혀 엉뚱한 결과값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상하다고 하니 ChatGPT는 또 수정했습니다. 질문을 덧붙이고 정교하게 하면 할수록 답도 제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코딩의 ‘ㅋ’도 모르는 저는, 파이썬으로 엑셀을 수정하는 코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ChatGPT를 사용해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ChatGPT가 만든 코드를 직접 만들 줄은 모르지만,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기획’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언어’를 통합니다. ChatGPT는 제가 말하는 내용을 듣고 자기가 이해한 내용을 말해줍니다. ChatGPT는 파이썬 코드를 짜면서 이것이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지 설명해주는데, 그 설명을 보면서 제가 ‘이 부분은 잘했는데, 이 부분은 이상하니 수정하자.’라면서 피드백을 주면 ChatGPT가 수정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지난 칼럼에서 스스로 가진 의문점이 조금 풀렸습니다. ‘법률전문가로서 AI 시대에 어떻게 해야 될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생각’을 깊이 하고, ‘무엇을 할지’ 명화히 한 다음, 그것을 ‘말’로 차근차근 풀어내는 것.

그 중에서 특히 ‘말’, ‘언어’의 위력을 새삼 깨닫습니다. 뭉뚱그리지 않고, 철저하게 분절하여 행위를 순서대로 세세하게 묘사할 때, ChatGPT는 제대로 알아듣고 일을 했습니다. 사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은 센스쟁이지만, 우리는 모두 명확한 것을 추구하기는 하니까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읽고 쓰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언어’라는 도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언어에 친숙해지는 노력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러고보니 법률전문가의 본업이 바로 이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언어’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 우리 일 아닌가요? AI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직업군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습니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