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주변국가들의 민족주의와 한국

2023-03-10     신희섭
신희섭

민족주의는 매우 흥미롭고 강력하다. ‘흥미롭다’라는 것은 어떤 근거나 계기로 작동하는지보다는 작동하기 시작하면 매우 빠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짚불과도 같다. 훅하고 타오른다. ‘강력하다’는 것은 민족주의 불이 붙으면 매우 거세게 번지고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마른 참나무를 때는 것과도 같다. 정리하면 불이 잘 붙고 붙으면 끄기도 어렵다.

‘불멍’ 즉 불은 멍 때리고 보고 있으면 따뜻하고 아름답다. 온기가 따시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붉고 푸르거나 노란색들의 조합들이 펄럭이고 움직이면 손을 대보고 싶을 수도 있다. 민족주의도 그렇다. 따뜻하고 아름답다. 개인을 온전히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만들어준다. 멤버십 클럽과 달리 자격조건을 심하게 따지지도 않는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서를 공유하면 세상의 갈등은 매우 빠르게 잊히고,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우리끼리는.

민족주의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어느 순간 통제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불에 비유하면 주인을 불구덩이로 빠뜨린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나 경제지도자들은 민족주의에 유혹을 느끼면서도 거리를 두려고 한다. 특히 불놀이의 끝이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절제력을 갖춘 지도자들은 민족주의에 대해 주의한다.

서론이 길었다. 그것은 민족주의를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을 둘러싼 국가들이 대체로 민족주의를 활용해 정치를 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국가의 단합을 기치로 걸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미국식 우월주의나 예외주의를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민족주의의 또 다른 간판으로 걸고 있다. 그 결과는 국제정치에서 적과 동지를 확실히 해두자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유명하다. 중국이 민족주의를 활용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도 두 가지가 민족주의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첫째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상황에서 심각한 계급갈등을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55개 1억 2천 5백만 명이 넘는 소수 종족(ethnic group)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중국의 민족주의 역시 ‘중화’ 문명이라는 중국식 문화 우월주의와 예외주의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민족주의가 강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민족을 만든 일본의 민족주의는 1945년 패전 후에도 크게 변화할 계기가 없었다. 과거 1930년대 지역 패권 국가의 경험과 1980년대 경제 대국의 경험을 가진 일본은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는 걱정이 민족주의를 끊임없이 불러낸다. 19세기 낭만적 민족주의의 21세기 호출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 역시 민족주의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진작에 포기하고, 지도자 개인을 강조하면서 민족주의를 덧대는 일본 천황제적 민족주의를 쓰고 있다. 대를 이어서.

인도의 민족주의도 강화되고 있다. 힌두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인도 내 이슬람교에 대한 탄압이 극단화되고 있다. 인도 특유의 사고체계에 서구식민지 경험에 대한 강력한 거부 등이 버무려지면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듯하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의 대결에도 유용하기까지 하고, 인도의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국민을 똘똘 뭉치게 한다.

최근 한국은 이들과 가는 길이 조금은 다르다. 대북정책을 강조했던 이전 정부는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일본과 각을 세웠고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북한과는 지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한국 정치가 진보와 보수진영으로 극화(polarization)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통해 진영 간 이념대립을 줄여보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지자 확보는 아니어도 적극적 거부자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2023년 3월 6일 현 정부는 갑작스럽게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 해법으로 ‘제3자 변제’ 안을 냈다. 정책 결정의 절차적 정당성, 국민적 합의, 일제 범죄에 대한 정의달성이라는 문제들은 앞으로 치열한 논의를 거칠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 관점에서만 이를 판단하면 전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선택했다. 미·중 대결과 한일관계 개선의 명분도 다 내려놓고 보면, 이 결정은 ‘민족주의’ 대신 ‘이익’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에서 한발 비켜서려는 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다분히 감성보단 이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판단에서 걱정되는 것은 이 판단이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승적 결단보다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정치적 극화(polarization)를 위한 것은 아닐까에 있다. 어차피 지지세력은 정해져 있으니 정치적 타협과 설득을 포기하는 것이면 한국 정치는 더 극단적으로 나갈 것이고 더 암울해진다. 게다가 주변 국가들이 모두 민족주의에 기초할 때 우리 혼자 민족주의를 거부한다면 이 역시 비판의 표적이 될 것이다.

민족주의 관점에서 이번 결정이 아쉬운 것은 우리만 민족주의 완화가 아니라 이를 외교적으로 활용해 주변 국가들도 민족주의 정책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보편적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정파적인 이익 계산이 아니라는 점을 좀 더 명확히 했다면 어땠을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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