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291)-정당민주주의와 역선택방지

2022-12-16     강신업
강신업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3월 초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 규정 변경을 놓고 논의가 한창인데, 만약 국민의힘이 ‘당원 투표 100%’로 대표 선출 방식을 변경한다면 2004년 도입된 국민 여론조사는 18년만에 사라지게 된다. 국민 여론조사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최병렬 대표가 퇴진한 뒤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도입되었다. 사상 최초로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여론조사가 도입된 것이다. 중도 외연 확대의 한 방안이었다.

사실 여론조사는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에게 선거 참여 기회를 확대해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당원의 존재 의미가 약화되고 정당정치 실현이 어려워진다는 부정적인 면을 갖는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를 전격 도입한 것은 당 대표 선출에 일반 국민의 뜻도 반영해 총선 선거 승리를 꾀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외연 확장에 순기능을 하던 여론조사가 지금은 오히려 역기능을 하고 있다. 좌우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 선거에 개입하는 역선택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이 당심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에게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거의 더블스코어로 이기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당시 이준석의 당선을 바란 국민의힘 반대층 지지자들이 이준석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소수 비율의 여론조사가 당원들의 의사와 크게 유리된 결과가 나오면서 당비도 내지 않고 당원으로서 의무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당의 의사나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정인의 유불리를 떠나 역선택을 방지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미국의 경우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당원이 아닌 국민이 직접 선출할 기회를 주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이 같은 날 오픈 프라이머리를 개최하는 방법으로 역선택을 방지하고 있다. 미국은 또 투표자의 신분을 확인하기 때문에 민주당 당원이나 민주당 지지자가 공화당에, 공화당 당원이나 공화당 지지자가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두말할 것 없이 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를 오롯이 구현하는 방법은 당원 주권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정당도 다른 근대적 조직과 마찬가지로 그 내부에 피라미드식의 계층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그러한 계층성은 ‘정당의 관료화’를 초래하기 쉽다. 그뿐만 아니라 정당은 정권의 획득 또는 그 유지를 둘러싼 단체인 만큼 때로 일사불란한 투쟁이 필요하고 이는 일반 당원에 대한 강력한 통제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정당은 과두제가 되기 일쑤다. 그런데 정당의 과두화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민주주의가 위험해진다. 여기서 정당민주주의와 정당의 과두화 간에 갈등이 노정된다. 정당은 과두화의 위험성을 배제하는 동시에 일반 당원의 자유의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정당은 민의를 수렴하여 국가의 의사를 형성하기 위한 매개 장치로 존재한다. 그런데 정당이 이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원들의 의사가 당의 지도부에 정확히 전달되고 또 수렴되어야 한다. 국민의힘의 경우 1년 반 전에 이준석 전 대표를 뽑은 전대의 책임당원이 28만 명이었다면 지금은 80만 명 이상이다. 단기간에 당원이 거의 3배가 증가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이제 다른 무엇보다 당원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이 당원들의 의사를 왜곡하는 불순한 시도를 막는 것이다. 그게 바로 역선택 방지다. 그 방법은 아예 당원들의 투표로만 당 대표를 뽑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일반 여론조사를 병행하되 역선택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 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의 비율을 조정해서 100만 당원들의 의사가 당 대표 선출에 충분히 반영되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정당민주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원의 의사를 당무에 오롯이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역선택을 방지하는 것에서 먼저 시작된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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