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사법시험에 오탈제가 있었다면

2022-06-23     안혜성 기자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최근 발의된 법안 하나가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 자격시험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로스쿨에 들어가지 않아도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변호사시험 예비시험’을 도입하는 법안이다.

지난 10일 발의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은 “고액의 학비 부담 등의 이유로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어 경제적 요인이 사회 불평등과 차별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이유로 과거 사법시험과 같이 일정 학점 이상의 법학과목을 이수하거나 이수한 것으로 학점 인정을 받은 경우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의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경우의 대략적인 예비시험 운영 방식을 살펴보면 시험은 연 1회 실시되며 변호사시험법 제9조에 규정된 공법(헌법 및 행정법), 민사법(민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법(형법, 형사소송법)이며 선택형으로 시험이 치러진다.

개정안이 발의된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수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시행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 전망과 부정적 전망이 엇갈리며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나왔다.

예비시험이 도입되면 일본에서와 같이 예비시험 출신을 우대하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 그에 따라 로스쿨 제도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 있는 반면 로스쿨 진학에 요구되는 학력이나 스펙을 쌓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직장인, 법학 관련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 등은 개정안을 대환영하는 모습이다.

로스쿨의 우회로 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시험 등 우회로의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만큼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공정성·형평성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와 열망이 크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대선에서 사법시험 일부 부활을 공약했던 점 등을 이유로 기존의 우회로 관련 법안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도 높다.

물론 예비시험의 도입 여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기자는 개정안이 담고 있는 응시 제한 규정에 관심이 간다. 개정안에 따르면 로스쿨에 재학하거나 휴학 중인 경우는 물론 로스쿨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도 예비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로스쿨 교육과 운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재학생이나 휴학생에 대해 예비시험 응시를 금지하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가 있는 상황에서도 제한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상실한 오탈자에게도 예비시험의 응시를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비시험 자체에도 예비시험에 최초로 응시한 달의 말일부터 5년 내에 5회만 응시할 수 있도록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점을 보면 ‘고시낭인’의 방지가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예비시험은 로스쿨 교육을 전제하지 않으므로 오탈제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이유로 제시되곤 하는 ‘교육 효과의 소멸’은 이유가 될 수 없을 테고 오탈자에게 예비시험 응시를 허용한다고 해도 예비시험 합격자 수는 고정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변호사시험의 합격률 저하’ 우려도 타당한 이유는 아니다.

결국 오탈자를 배제하고 예비시험에 응시 기회 제한 규정을 두는 유일한 이유는 ‘국가 인력의 낭비를 방지’한다는 것인데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다. 어떤 시험에도 없는 응시 기회 제한을 법조인이 되는 시험에만 두는 까닭이 무엇인가.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보호가 필요한 소중한 국가 인력이 아니란 말인가.

어떤 삶을 살지는 개인의 선택이며 도전을 이어가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오롯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약 사법시험에도 오탈제가 있었다면 윤석열 대통령도 오탈자가 됐을 것이고 검사도, 대통령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강제적인 응시 기회 제한은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고 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짓밟는 가혹한 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