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5-주거침입죄 고찰

2021-11-12     손호영
손호영

남자는 배우자 있는 여인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여인은 남편과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로 남자를 부릅니다. 여인이 현관 출입문을 열어주어, 남자는 보름 새에 세 번 여인과 남편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남자의 출입은 여인의 뜻에는 맞지만, 또 다른 주거권자인 남편의 뜻에는 맞지 않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남자에게 남편의 주거권을 침해하였다며, “주거침입죄”를 물을 수 있을지 문제됩니다.

남자는 주거침입으로 기소되자, 순순히 공소사실을 인정합니다. 1심에서는 그에게 부부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을 묻고, 남편의 정신적 피해를 고려하여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합니다. 남자는 자백한 것은 맞더라도 형이 무겁다며 항소합니다.

2심에서는 남자가 그의 무죄를 다투지는 않았지만, 직권으로 사건을 봅니다. 그리고 주거침입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2심은 주거침입죄가 ‘주거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한다는 것을 새삼 짚습니다. 그렇다면, 남자는 남편의 부재 중, 공동주거자인 여인의 승낙을 받고 평온하게 집에 들어간 것이니, 남편의 ‘주거권’은 침해당했다고 볼지언정, 남편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이 침해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직권으로 남자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합니다.

유죄에서 무죄로 결론이 뒤집어졌으니, 이번에는 검사가 상고합니다. 그동안 대법원은 ‘주거권자가 여럿 있는 경우 1인의 승낙이 있더라도 다른 이의 의사에 반한 주거 출입은 그의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것이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왔습니다. 이에 따라 이 사건과 같은 사실관계에 대해서, 종래 법원은 주거침입죄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대법원 83도685 판결). 물론 위 판결이 1984년 선고되었으니 37년 정도 흐르기는 했습니다만, 대법원 판결에 명백히 도전하는 2심의 판단을 검사가 그대로 둘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열어, 남자의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를 검토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주거침입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거침입죄의 ‘침입’은 무엇인지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의 아파트 출입이 과연 ‘침입’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은 ‘사실상 주거의 평온’이라고 합니다. 외부인이 무단으로 주거에 출입하면 깨어지는 것, 바로 ‘사실상 주거의 평온’입니다. 주거침입죄는 이것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주거의 경우에는 조금 섬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동주거자 중 일부가 부재중이라도 예컨대 그가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공간(방)에 들어간 경우라면, 다른 공동주거자의 승낙으로 들어갔더라도 부재자의 평온이 깨졌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연 부재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이 깨졌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법원 다수의견은 주거침입죄의 ‘침입’은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로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주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침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1984년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드디어 견해를 바꾸고,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여 남자의 무죄를 확정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대법원 반대의견은 종래 대법원 판결을 유지하여야 한다며 다투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남자와 여인 사이에서 주거침입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남편 사이에서 주거침입이 문제되는 것이니, ‘부재 중이었던 남편이 과연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남자의 출입을 허용했을까?’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주거의 평온이란, 주거에 대한 출입이 거주자의 의사에 따라 관리되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니, ‘주거침입죄는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여 주거에 들어가면 성립한다.’고 봅니다. 이 사건에서 남자는 남편의 부재 중 그의 배우자와 간통을 할 목적으로 배우자의 승낙을 받아 주거에 들어간 사안이니, 남편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이 침해된 것은,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의문이 없다고 합니다.

형법 제319조 제1항은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간단한 조문에 대하여 2심은 직권으로 피고인의 무죄를 판단하였고, 대법원에서는 다수의견, 반대의견에 더해 별개의견, 보충의견 등이 제시되며 주거침입에 대한 이론적·실무적 논의를 풍부히 하였습니다.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법률가가 사건을 대하는 태도, 법을 해석하는 방식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