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224)-재조산하(再造山河)의 꿈, 윤석열의 꿈

2021-08-06     강신업
강신업

재조산하(再造山河)는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준 글귀로 ‘나라를 다시 만든다’라는 뜻이다.

일설에는 명나라 사신이 선조에게 외교문서를 보내 “류성룡에게 국정을 맡기면 사직을 안정시키고 산하(山河)를 중흥(再造)시킬 것”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여기서 산하(山河)는 ‘나라’라는 뜻이고 재조(再造)는 ‘다시 만든다’라는 뜻이니 ‘nation rebuilding’의 의미가 된다.

이순신이 한산대첩에서 승리했을 때 류성룡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에는 ‘국가재조지운(國家再造之運)’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나라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운세’라는 뜻이다. 이때 류성룡의 생각대로 선조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재조산하(再造山河)의 꿈을 꾸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아마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그만한 인물이 못되었으니 선조에게 있어 조선은 다시 세워야 할 나라가 아니라 명나라의 도움으로 이미 다시 세워진 나라였다. 그래서 선조실록에는 재조산하(再造山河)가 아닌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등장한다. 반민족적이고 과거지향적인 선조의 인식이 아쉬울 뿐이다.

이때 선조가 재조산하의 기치를 제대로 높이 내걸었더라면 이후 조선은 강병 부국으로 능히 탈바꿈했을 것이다. 나라는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한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가 진(秦)나라다. 진은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B.C.221~B.C. 207)일 뿐 아니라 차이나(China)라는 중국의 영문 이름은 진(Chin)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그 위상을 뽐낸 나라다. 진은 목공 때 동쪽으로 진출하여 오패(五覇)의 하나가 되더니 전국 시대에는 효공이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실시하고 나중에는 진왕정(시황제)이 6국을 멸하고 B.C. 221년 통일을 달성하였다. 이후 시황제는 다섯 번이나 전국을 순회할 만큼 열정적으로 국사에 임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진시황 사후 진나라는 수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최초의 통일 왕조 진의 창업은 강력한 군주와 이를 떠받치는 이사(李斯) 등 유능한 신하에 의해 가능했으나 지나치게 인적 관계에 의존하고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진시황 사후 지록위마라는 유명한 고사를 남긴 2세 황제 호해와 환관 조고의 우매하고 탐욕적인 정치로 민란이 끊이지 않다가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면서 B.C. 207년 멸망하고 말았다.

반면 진을 이은 한나라는 유방이 오랫동안 항우와의 쟁패를 통해 어렵게 창업했으나 서한(西漢) 15대, 동한(東漢) 15대를 이으며 총 400여 년을 지속했다. 이는 창업뿐 아니라 재조산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유방은 7년 동안 재직하면서 사직을 안정시키고자 공신들에게는 잔혹한 정치를 했으나 백성들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선정을 베풀었다. 유방의 넷째 아들이자 5대 황제인 문제나 7대 황제인 무제는 그때마다 중흥에 성공하였고 한 나라 시대 중국의 영토는 중앙아시아, 인도차이나, 한반도까지 뻗었으며, 유교와 도교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전통문화가 확립되었다. 진나라가 이룩한 제국 체제 역시 한나라에 의해 계승·발전되어 1911년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을 지속했다. 유럽 문명의 원형이 로마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중국 문명의 원형은 한나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할 수 있으니 중국 글자를 한자(漢字)로, 중국 민족을 한족(漢族)으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미국 역시 건국 후 재조산하에 성공하며 초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하는 나라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3기 집권의 유혹을 물리치고 과감히 대통령직에서 내려옴으로써 나라가 13개국으로 나누어지고 왕정이 될 위기를 이겨냈고, 16대 대통령 링컨은 자칫 나라가 쪼개질 위기에서 인권과 공화정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국가통합과 국론통합을 일궈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재조(再造)가 필요하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재조산하의 필요성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이승만의 결단으로 자유국가가 되고 박정희의 용기와 지혜로 산업국가가 되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노력으로 민주국가가 되었다면, 이제 윤석열은 재조산하를 통해 대한민국을 진정한 공화 국가로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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