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3-속마음의 값

2021-06-04     손호영
손호영

의지할 데 없던 한 소년이 숙부의 손에 이끌려 석담(石潭)에게 맡겨집니다. 부탁을 거절할 수 없던 석담은 소년을 맞아들이면서도, 그에게 가르침을 건네지는 않습니다. 당대 이름난 석담의 막힘 없는 글씨와 미끈한 그림을, 석담의 가르침이 없어도, 소년은 어깨너머로 배우고 스스로 자신의 체계를 세워나갑니다.

어느덧 스물 일곱이 된 소년이 자신의 이름, 고죽(古竹)을 내세워 글과 그림 값으로 곡식 꾸러미를 받아 돌아왔던 것은 자기확인이자 자기과시였습니다. 내심 자랑스러워하던 고죽에게 돌아온 것은 석담의 불호령입니다. “보잘것없는 환쟁이” 고죽은 석담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사모와 그에 못지 않은 미움을 지닌 채 그의 곁에 머뭅니다.

“왜 제자로 거두시지 않으셨소?” 운곡(雲谷) 최선생이 고죽이 몰래 적은 글과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재능을 안타깝게 여기며 석담을 채근합니다. “정 거리끼신다면 사흘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저 아이를 내게 보내시오.” 운곡의 제안을 석담은 침묵 끝에 거절합니다. “내가 길러 보겠소.” 평소 알게 모르게 고죽을 경계하던 석담은 결국 고죽을 제자로 들입니다.

제자로 들였음에도 가르침에 인색한 석담 아래에서도, 고죽의 솜씨는 어느새 다른 이의 감탄으로 오르내립니다. 그러나 석담은 고죽을 여전히 경계하며 고죽이 “겨우 흉내”를 낼 뿐이라며 냉담합니다. 둘이 완연히 갈라섰던 것은, 늙은 석담이 스스로의 부족한 경지를 한탄할 때 고죽이 던진 말 때문이었습니다. “설령 그러한 경지에 이르러 본들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고죽은 사회와 나라·역사에서 유리(遊離)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조를 스승에게 한풀이했습니다. 드높은 경지를 일생에 한 번이라도 이르러 보고자 경주했던 석담은 고죽의 예술관에 분노합니다. 고죽을 천(賤)하다고 일갈하고, 쫓아냅니다.

시간이 제법 흘러, 떠돌이 생활을 하던 고죽이 운곡을 우연히 만나자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러자 온후했던 운곡이 고죽을 향해 냉랭히 내뱉습니다. “석담이 죽을 때가 되긴 된 모양이구나, 너 같은 것도 제자라고 돌아올 줄 믿고 있으니.” 석담이 자신을 내팽개쳤다 여겨 왔던 고죽이 받은 충격은 컸고 산사(山寺)에서 정화를 거친 뒤 문하로 돌아가는데, 그를 맞이한 것은 석담의 관입니다.

문하에 당도한 고죽에게 운곡이 조용히 말합니다. “관상명정(棺上銘旌)은 네가 써라. 석담의 유언이다.” 그리고 운곡은 이내 눈물을 쏟습니다. “그 뜻을 알겠는가? 관상명정을 쓰라는 건 네 글을 지하로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석담은 그만큼 네 글을 사랑했단 말이다. 이 미련한 작자야...”

이문열의 <금시조>는 석담과 고죽 사제지간의 인간적 애증관계를 예술관의 대립틀로 살펴 흥미롭게 때로는 애처롭게 묘사합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누구보다 의식하고 아끼면서도 경계하고 미워했습니다. 그 애증이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었던 이유는 석담이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솔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상대에게 감춰두는 속마음은 상대에 대한 악감정이나 상대가 싫어할 것들이기 마련입니다. 겉마음과 다른 속마음을 따로이 두는 이유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석담이 가까스로 밝힌 그의 속마음은 고죽조차 놀랄 정도로, 고죽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었고, 따라서 그 속마음의 값은 ‘화해’입니다.

거짓 호의를 꾸미는 것이 짐짓 악한 체를 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고려하면, 석담이 숨긴 진심은 유별난 데가 있을 뿐만 아니라 흔하게 볼 수 없는 유형의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필 수 있는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당사자의 진심은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원고가 필리핀 국적의 피고를 만나 혼인신고를 마치고 생활합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정상적인 부부로 생활하면서, 제주도로 여행까지 다녀옵니다. 그러나 곧 피고가 가출을 합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결혼했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편지를 남겨둡니다. 원고는 피고와의 혼인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소를 제기합니다.

1, 2심은 한 달 동안의 부부생활과 제주도 여행을 들어, 피고가 처음부터 혼인의 의사 없이 단지 한국에 입국할 목적으로 원고와 혼인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대법원 2010므574 판결)은 편지에서 볼 수 있는 피고의 속마음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피고가 “가족 부양”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혼인생활의 외관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즉, 피고가 혼인생활을 저버린 이유는 편지를 통해 헤아릴 수 있는데, 그가 편지로 드러낸 속마음의 값이 ‘혼인의 무효’라고 한 것입니다.

피고의 고백은 원고와의 혼인을 마치게 하는 사단이 되었고, 한편 석담의 유언이 제자와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사양한 시간을 고려한다면 뒤늦었다 할 것입니다. 결국 상대방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겉마음과 속마음이 같은 것이 우선임을 알 수 있습니다(表裏一體). 그때 그 속마음(겉마음)의 값은 건강함일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