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208)-윤석열, 이렇게 정치하라

2021-04-16     강신업
강신업

첫째, 백성의 신뢰(信賴)를 얻는 정치를 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했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말이다. 어느 날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는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군주를 믿게 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자공이 세 가지 중에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군대’라고 하였다. 그다음으로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묻자 ‘양식’이라고 했다. 공자는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은 ‘백성의 믿음’이라며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가 없다(民無信不立)”고 하였다.

둘째, 인화(人和)에 힘쓰고 도의(道義)에 입각한 정치를 해야 한다. 맹자는 “하늘이 주는 기회는 지리상으로 이로운 것만 못하고, 지리상의 이점은 사람들이 화목함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라고 하였다. 천시, 지리, 인화의 세 가지 요소 가운데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요소가 인화라는 것이다. 맹자는 또한 ‘바른 도로 행동하면 돕는 사람이 많고, 무도한 행동을 하면 돕는 사람이 줄어든다(得道者多助, 失道者寡助 득도자다조, 실도자과조)’라고 하여 정치의 요체가 도의(道義)임을 강조했다.

셋째, 성심(誠心)을 다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중국 청나라 왕조의 4대 황제인 강희제는 ‘짐은 하늘을 섬기는 신하’라고 천명하고 백성을 섬기는 정치를 했다. 강희제는 백성들의 농사를 돕기 위해 서양 역법과 수학 공부를 시작하고 급기야 라틴어까지 익혔다. 그는 천하가 태평해지고 조정이 안정된 지 오래되었을 때도 “내가 어떻게 해야 백성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졌다. 보통 통치 기간이 길면 안이함에 빠져 불필요한 사업을 벌이거나 엽기적인 취미를 쫓느라 국정을 등한시하기 마련인데 강희제는 62년이나 재위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 그는 늘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죽기까지 힘쓴다)”가 자신의 마음가짐이라고 밝혔다. 그 때문에 강희제에게 감동한 부베나 히버트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보고서나 회고록에서 강희제가 자신이 만나본 어떤 유럽 군주보다도 뛰어나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했다.

넷째, 과학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 세종대왕은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정치를 했다. 해시계, 측우기 등의 각종 발명과 의서, 약서, 법서, 농서, 천문서, 악서 등의 발간은 모두 그의 과학정치가 빚어낸 산물이다. 세종대왕은 글자를 창제함에서도 그저 새 글자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과학적이고 백성들이 가장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세종은 한글의 창제철학인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워 쓸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음운론과 음성학을 비롯한 연구에 매진해 가장 과학적인 제자원리(製字原理)를 도입했다.

다섯째, 소통하고 포용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세종 치세의 많은 업적은 많은 부분이 훌륭한 당대 최고의 신하와 학자의 보필 덕이다. 하지만 이들의 보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사람됨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소양, 넓고 깊은 학문적 성취,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판단력, 중국문화에 경도(傾倒)되지 않은 주체성과 독창성, 의지를 관철하는 신념·고집, 노비에게까지 출산휴가를 주는 인권의식 등 세종 개인의 사람됨이 당시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인적 모든 여건과 조화됨으로써 빛나는 민족문화를 건설할 수 있었다.

윤석열은 반드시 성공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그의 성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이고 나라의 문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윤석열 스스로 성심을 다하고 인화에 힘쓰고 도의에 입각한 말과 행동을 통해 민심을 얻는 정치를 해야 한다. 또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두루 소통하고 포용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윤석열은 대한민국 역사에, 아니 세계사에 우뚝 선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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