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21-03-26     안혜성 기자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최근 세간의 평이 좋은 영화 한 편을 봤다. 새로운 영화, 그것도 굳이 따지자면 예술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를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웹서핑 중에 우연히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추천하는 글을 읽었는데 그 글에 묘사돼 있는 찬실이가 처해 있는 상황이 눈길을 끌었다.

찬실이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평생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다면 재산이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제작 PD가 되어 좋아하는 영화만 만들면서 살았다. 돈이 되지 않는 예술영화, 단 한 명의 감독과만 작업을 했는데 새로운 영화 제작을 앞두고 그 단 한 명의 감독이 술자리에서 돌연사를 했다.

이제는 좋아하는 영화만 만들었던 것이 문제가 됐다. 아무도 찬실이와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찬실이는 40대의 나이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백수가 됐다. 돈이 없어 이사를 간 곳은 용달차도 들어가지 못해 고무대야에 짐을 얹어 직접 날라야 하는 달동네의 단칸 셋방이었고 찬실이는 생계를 위해 친하게 지내던 여배우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찬실이가 이사를 간 곳은 홍제동에 있는 개미마을이다. 한 때 홍제역 인근에 살 때 산책 삼아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 영화 속의 풍경들이 익숙한 게 반가웠다. 각설하고 찬실이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그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보낸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경력이 무너졌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지만 찬실이는 울거나 화내지도 않고 그저 덤덤하게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을 한다.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의 시간들은 주인집 할머니와의 따뜻한 교감이 되고 장국영 귀신과의 우정이 되고 40대의 사랑이라기에는 어설프고 풋풋한 사랑이 된다.

고백하자면 처음 영화를 보기로 했을 때는 찬실이가 뭔가 특별한 기적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래서 나도 복이 터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싶었다. “복도 많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면 로또 당첨 같이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의 행운이 따라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기자에게는 그 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복을 발견했는지 궁금해졌다. 여러 리뷰들을 읽었다. 대부분은 찬실이의 인복을 말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찬실이의 곁에서 함께 해주고 이해해주는 가족, 동료나 친구들, 찬실이와 가족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게 되는 주인집 할머니 등등이 바로 찬실이의 복이라고.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원하게 납득이 가지 않아 답답했다. 며칠을 계속 생각했다. 대체 찬실이가 가진 감탄할 만한 복은 무엇일까. 사실 지금도 완전히 스스로를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주인집 할머니의 대사에 답이 있지는 않을까 싶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찬실이는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선택했고 실행에 옮겼다. 아직 어떤 결과도 내지 못했지만 그렇게 매일 하고 싶은 일을 애써서 하면서 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또 아무나 하지는 못하는 일이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는 일이다. 그러니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복도 많은 것이고 기적이고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찬실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기자에게도 그랬지만 법률저널의 독자들에게도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될 것 같다. 좋은 성적으로 목표로 하던 시험에 합격한 수험생들 상당수는 충실한 하루하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찬실이도 그랬다. 찬실이가 미소를 머금고 씩씩하게 오르던 길은 개인적으로 가장 막막했던 시기에 걸었던 산책로였다. 어차피 가야하는 길이라면 웃으면서 씩씩하게 걷는 게 훨씬 즐거울 것이다. 법률저널의 독자들도 찬실이처럼 복도 많은 매일을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