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끼리는 왜 나무에 올라갔을까

2020-04-29     최용성
최용성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세상은 이전과 달라졌다. 비행기와 공장, 자동차가 멈추면서 지구는 놀랄 만큼 깨끗해지고 있다. 전쟁은 물론이고 지역 내 크고 작은 분쟁도 줄어들었다. 이렇다 보니 지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코로나19를 퍼트렸다는 신랄한 유머에 수긍이 갈 정도이다. 사실, 인류가 지구의 적, 아니 인류 자신의 적이라거나, 자연 파괴자라는 반성은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많았다. 오늘은 조금 더 시계를 돌려 1930년대 초반에 한 괴짜 인문학자가 쓰고 그린 오래된 동화책을 다시 들추어보며 사람의 길을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마침 필자가 오래전 블로그에 올린 글도 있기에 최대한 ‘재활용’해본다.

헨드릭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 1882~1944)은 철학, 종교, 역사, 예술, 과학 등등 관심 분야의 폭이 대단히 넓은 르네상스맨이자 저술가이다. 막상 그의 책을 읽어보면, 오히려 이야기꾼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종군기자로도 활약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겪었으니 평화주의자가 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비극에 함몰되지 않고 신랄한 풍자, 유머와 위트가 풍부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며 사람의 길을 역설한 휴머니스트였다. 우리나라에 ‘반 룬 전집’ 완간을 내걸고 반 룬의 저술이 번역 출간된 것은 2005년부터인데, 그 중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원제: An Elephant up a Tree. 김흥숙 옮김, 서해문집)가 오늘 들춰볼 책이다. 제목 그대로 동화책이다. 반 룬이 동화책을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홀수 면마다 나오는 수많은 그림을 전부 반 룬이 그렸다는 대목에 이르면 경이감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은 이렇다. 동물들 세상에서 동물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훨씬 우월한 인간(백인)의 방식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논란이 생긴다. 그래서 동물 세상을 대표한 코끼리 존 경(Sir John)이 파리를 거쳐 뉴욕에 가 답을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현명하게도 반 룬은 코끼리의 인간 세상 방문기로 풀어가지 않는다. 뉴욕에 도착한 존 경이 악당들에게 납치당하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처럼 통 속에서 살아가는 디오게네스라는 고양이가 납치사실을 알리려고 존 경의 고향을 찾아 험난한 여정에 오르며 겪는 모험과, 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닥스훈트 종 개가 존 경을 구하기 위하여 벌이는 활약이 보태져 진부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우화를 통하여 작가가 주려는 교훈이야 크게 예상답안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진실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진실인 법. 1933년 발표된 이 책에서 작가가 대공황의 고통에 시달리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먼저 코끼리 존 경이 제출한 최종 보고서의 마지막 대목을 들어보자. “우리 동물들은 우리의 백인 이웃들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오래전에 잊어버린 무언가를 우리는 아직 알고 있다. 그건 진실하고 도리에 맞는 삶은 존재의 궁극적 실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자연의 기본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그 결과 인간은 파멸하게 되어 있다.”(196쪽). 그러나 반 룬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인간의 파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낙천적인 진보주의자이고 휴머니즘의 신봉자가 아니던가.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인류가 한심한 짓을 반복하고 있더라도, 결국 인본적 가치에 대한 확신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희망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가 간직할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바로 반 룬의 다음 문구처럼.

“우리의 세계에는 영원히 변치 않을 오래된 가치, 사랑, 관용을 지닌 것들이 이리도 많은데, 왜 결코 풀리지도 않을 그런 문제들에 대해 신경을 쓴다지?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경, 친구와의 우정, 우리의 아이들이 훌륭한 후계자가 되도록 키우는 즐겁고 감사한 일, 태양이 먼 바다로부터 다시 떠오르는 이른 아침의 아름다움, 보람 있게 보낸 하루의 끝에서 어둠이 언덕과 골짜기에 내려앉을 때, 우리의 수많은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존재의 영원한 실체에 충실했음을 느낄 때, 그때 우리를 찾아오는 만족감”(204쪽).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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