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50)-율곡(栗谷), 그리고 지금

2020-02-21     강신업
강신업

중종 31년(1536)에 태어나 선조 17년(1584)에 작고한 율곡 이이는 조선이 낳은 경세가다. 율곡이 살던 시대는 안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혼란을 겪고 있었고, 밖으로는 국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었다.

특히 율곡이 정계에서 활동할 당시는 4대 사화(士禍)가 끝나고 선조에 의해 새로운 정치가 모색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관리들이 무사안일과 사리사욕의 타성에 젖어 있었으며, 사림의 갈등과 알력이 노골화되고 동서 붕당으로 당쟁이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토지제도의 문란과 공물, 진상 등 각종 조세제도의 불합리, 세금의 과중한 부과로 인해 민생이 극도로 피폐해져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법에 따른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인사제도는 능력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신분적 차별이 극심하여 서얼, 천민 등의 인권과 민생이 위태로운 시대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율곡은 역사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조선왕조가 창업된 지 200년이 지난 당시 16세기 후반의 조선 사회가 중쇠기(中衰期)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율곡은 특히 당시 시대를 토붕와해(土崩瓦解,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산산이 깨어진다는 뜻)로 진단했다. 이러한 역사인식과 현실진단을 바탕으로 율곡은 조선 중기 사회의 대대적인 경장(更張)을 주창했다. 이 때 율곡이 개혁의 방법으로 주창한 것이 대동법의 시행, 사창(司倉) 설치, 십만양병설 등이다.

율곡의 정치사상은 크게 시대를 진단하는 시폐론(時弊論)과 시대에 대한 처방인 시무론(時務論)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중 시폐론은 시대의 사회적 폐단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공동의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고, 시무론은 시대의 사회적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백성과 국가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것이었다. 율곡은 이 때 만인평등의 입장에서 정치의 주체를 “민(民)”으로 규정하고, 현실참여의 기준을 민에 두고 민본주의 정치이론을 전개했다. 율곡은 또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時)”라고 보고, 백성과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 하에 율곡은 당시 피폐한 민생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네 가지 정책, 즉 ① 薄稅斂의 道(박세령의 도, 백성의 세금을 가볍게), ② 輕徭役의 道(경요역의 도, 백성의 부역을 가볍게), ③節用生時의 道(절용생시의 도, 백성이 재화를 생산하는 시기에 부역을 시키지 말 것), ④財民恒産의 道(제민항산의 도, 백성의 지속적인 재화 생산을 가능케 하고 생산된 재산을 평등하게 분배할 것)를 주창했다. 율곡은 “生民(생민)”에 적극적 관심을 갖고 적어도 인간으로서 의식주의 충족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율곡은 특히 공물, 진상, 군역 등 각종 의무 제도의 모순과 난맥으로 인한 민생의 불안과 민심의 이반, 나아가 농촌 경제의 파탄과 국가 경제의 위기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율곡은 특히 백성의 뜻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율곡은 언로(言路)가 열려야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공론이 형성된다고 하면서, 정치지도자는 귀와 마음을 연 현명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명함에는 누구나 한계가 있기에 쓴 소리와 조언을 마다 않는 지성으로 어진 이를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율곡은 개혁의 방법에서 상당한 유연성을 갖고 있어 민본이라는 정치의 본질은 시대를 초월해서도 영원히 바뀔 수 없는 것이지만, 정치의 형태나 방법론은 시대 상황에 맞게 변용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나라는 더없이 어지럽다. 정치지도자들은 저만이 옳다고 우기며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고 이를 옹호하는 일부 극성 세력들은 떼를 지어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가히 광기(狂氣)다. 바야흐로 가치가 전도된 시대다. 그러나 율곡이 살던 시대도 그랬다. 그럼에도 율곡은 좌절하지 않고 올바른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백성과 국가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분골쇄신(粉骨碎身)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금 과연 누가 있어 율곡의 역할을 대신하겠는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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