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78 / 분양전환 감정평가

2019-06-28     이용훈

 







이용훈 감정평가사

망해가는 중소기업과 국회 청문회의 공통점은 뭘까?

좀처럼 책임자의 답변을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자는 당사자와 통화하기 어렵고, 후자는 기억력 등을 내세우며 후보자가 얼버무리기 쉽다. 망해 가는 중소기업은 자금 상황이 최악이다, 자금 집행은 거의 중단 상태. 거래처가 납품대금의 장기 미납을 이유로 이 회사 재무 담당자를 찾으면, 항시 부재중이라는 답만 듣는다. 회의에 들어갔거나 장기 출장 중이라고. 그도 아니면 담당자가 교체됐다고 둘러대는데, 언제까지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으면서,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거나 최대한 빨리 조치하겠다는, 매번 듣던 얘기만 또 할 뿐이다. 청문회도 마찬가지다. 기억이 나지 않든지, 그 당시 법률과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불찰이든지. 그도 아니면 당시 관행에 따랐는데 뒤늦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 이런 식의 반응이나 답변이 있을 때면, 식어버린 삶은 고구마 급히 먹다가 소화기관이 꽉 막힌 그런 답답함이 몰려온다.

분당에서 판교 IC로 향하는 도로변에 빼곡히 붙은 플래카드. 판교에서 이미 터졌거나 곧 터질 ‘10년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 때문에 내걸린 호소문이다. 한번 열거해 보면, 대략 이런 문구들이다.

‘감정평가 어디에 시세평가 하라더냐’
‘공공택지로 건설사업자 배불리는 10년공공임대 분양전환가 산정기준’
‘부동산 폭등책임 임차인에게 전가 웬 말인가?’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하라’
‘서민 주거안정 거짓홍보, 알고 보니 LH폭리’
‘10년 공공임대도 분양가상한제 시행하라’

최근 3년, 아파트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분양전환시점이 하필 바로 지금인 것을 한탄하는 임차인의 상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현수막 제작자와 달리 아파트 공급자인 건설사나 LH 그리고 일반 국민의 소회는 사뭇 다를 것이다. 공급자는, ‘어쨌든 주변 아파트보다는 꽤 싸게 취득하도록 해 줬는데 왜 이리 난리냐?’ 타박한다. 이웃 주민은 ‘시세보다 한참 낮춰 달라 하는데, 그 옆 단지를 시세에 산 우리는 그럼 우린 봉이냐?’ 반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임대주택법의 취지, 물건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시세 대비 할인 폭에 대해서는 합의가 안 되고 있지만, 할인 필요성에 대해서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어 보인다.

감정평가를 의뢰하면 웬만해서는 못한다고 거절하기 어렵다. 법이 그렇다. 따라서 10년공공임대주택의 분양전환 가격을 평가해 달라고 하면 하긴 해야 한다. 현행 임대주택법에는 10년 공공임대아파트의 구체적인 분양전환가 산정기준은 없다. 단지 '감정평가금액을 초과할 수 없다'고만 규정했다. 전환 당사자 모두 감정평가금액을 거의 분양전환가격으로 인식할 것이다. 부담으로 치자면 보상평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히려 보상평가보다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보상평가에서의 정당한 보상액은 강제 취득에 따른 시가보상을 위한 것이므로 그저 개발이익이 배제된 시가일 텐데, 이 임대주택에 적용할 시가 대비 할인 비율은 딱히 명확한 근거를 찾아서 적용하기도 어렵다.

또 양 당사자에게 항변할 말도 많다. 임차인은 ‘언제 시세평가 하라고 했냐?’고 쏘아붙이는데 그럼 ‘시세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임대아파트 공급 취지에 맞게, 또 현 거주자인 임차인 형편에 맞게 평가하라’고 하면, ‘그런 규정이 있기는 한지 그리고 물건을 보고 평가하는 사람이 사람 쳐다보고 평가하는 게 말이 되냐’는 할 말도 있다. 지자체에게도 불만이 많다. ‘민감하니까 적정하게 평가해 달라, 임차인 요구가 있으니 원가를 고려해 달라’고 하는데, ‘민감하지 않은 평가 건이 또 어디 있으며, 이미 분양전환 돼 거래되는 물건이 많아 거래사례비교법을 활용해야 할 텐데 원가를 고려하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달라는 건데요?’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다. 건설사나 LH가 ‘규정대로 했을 뿐인데 시기를 잘 타서 그렇지 이 정도의 폭리를 얻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면, ‘그럼, 적극적으로 할인 분양을 고민하는 성숙함을 보이세요.’ 주제 넘는 말이 목구멍에 치민다.

새우 등 터지게 생긴 건 또 감정평가다. 폭탄이 돌다가 평가업계로 떨어졌는데, 아무리 봐도 양 측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글렀다. 정답이 있긴 한 건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나마 공시가격 논란이 일었을 때 제시했던 해법을 들고 나올 수밖에. 감정평가사에게 물건의 가격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게 해 주고, 그 물건을 양도·양수하는 가격은, 당사자 간 법의 취지, 계약내용, 현 시장 상황, 물건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합의로 정했으면 한다. 공시가격도 급격한 조세부담, 누적된 조세불평등 문제 때문에 적정하게 평가해 달라는데, 그런 정책적, 정치적 판단을 감정평가사에 전가시키는 건 과욕이 아닌지 지적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