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77 / 감정평가 ‘상품’

2019-06-06     이용훈








이용훈 감정평가사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간혹 접속한다. 매물로 내놓은 내 집이 6개월째 안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절벽이라 하지만 간간이 계약이 이뤄지긴 하니, 동태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세입자는 계약기간 만료 후 구입을 검토할 생각이라면서, 집 보여주는 걸 꺼려한다. 상황이 썩 좋진 않다. 다만, 중개업자가 아예 집 안 동영상을 찍어 놓고 팔아보겠다고 애쓰고 있다. 어딘가 집 주인이 있겠거니 자위할 수밖에.

포털 사이트도 부동산 가격을 지도에 덧칠해 놨다. 국토교통부 사이트가 조만간 파리 날리게 생겼다. 어떤 사이트는 부동산 ‘시세상품’을 판다고 홍보하고 있다. 얼마에 파는지,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가격정보’인지 알 길은 없다. 감정평가사협회 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어, 요즘 협회가 유사감정평가행위를 주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국가통계, 정보제공, 돈벌이. 유사감정평가행위는 이 삼각관계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

유사감정평가행위를 탓할 때 쓰는 논리는 언제나 같다. ‘우리만 감정평가 할 수 있는 자격을 줬다, 너네는 왜 자격 없이 일하냐?’. 감정원 사명(社名)변경을 추진하는 협회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감정’이라는 용어가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선입견, 홍보효과, 착시효과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감정평가 할 수 없는 기관의 명칭을 딴 ‘감정원법’이 현존하는 것도 모순이다. 입법착오인지도 모른다. 기한을 정하지 않고 사명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벌써 수년전에 약속했지만 무기한 지체한다고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반면, 반드시 **감정평가법인 또는 **감정평가사무소로 이름을 지어야 하는 현행 규정은 또 무엇인가. 감정원 사명이 거슬러서가 아니고, 언제든 이 기관이 감정평가를 대체할 업무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다는 의구심을 감정평가협회 회원 모두가 품고 있어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은행권은 ‘온라인 감정서’ 발송을 요구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 얘기가 오갔는데 아직 진척이 더디다. 종이로 출력한 보고서 쌓을 창고도 부족하고 보관비용도 꽤 든다면서, 은행은 서둘러 추진해줄 것을 이래저래 채근한다. 서로 파일형태로만 감정평가서를 주고받자, 파일을 사용했으면 돈을 내고, 대출 실행되지 않았으면 실비 정도만 주면서 파일은 폐기하고, 뭐 이런 식의 진행이다. 파일 사용 여부 또는 폐기 여부는 전산 시스템으로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조만간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온라인 감정서를 제공한다고 해도, 담보평가서에 대한 책임은 감정평가기관이 옴팡 뒤집어써야 한다.

그에 비하면, 유사감정평가행위는 돈은 벌면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얄팍한 상술로 보여, 그렇게 얄밉다. 공인중개사가 발급한 ‘시세확인서’를 법원이 감정평가행위로 단죄한 이상, 그 틀에 걸리지 않게 이를 ‘시세조회 상품’으로 변형시키고 있는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닌지. 시세상품을 팔면서, 실제 거래가격과 다를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일 것이다. 그런데, 홍보할 때는, **감정평가법인이 그 시세가격의 결정에 조력했다는 문구를 꼭 넣는다. 일반인들은 내막을 모른다. 그냥, 감정평가법인이 낸 탁상감정가격이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유사감정평가행위와 유료정보제공 서비스 그 사이 어딘가 위치한 모호한 행위로 보인다.

정보의 홍수고, 통계의 위력이 발휘되는 요즘이다, 당연히 정보는 합리적으로 가공되고 품이 많이 들어간 정보는 유료로 제공될 것이다. 감정평가를 할 수 없는 곳에서 감정평가와 유사한 행위로서 상업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걱정되지만, 감정평가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실질은 감정평가 서비스이면서 감정평가 행위라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우려된다. 책임은 면제받고 수익은 창출하려는 틈새 전략이지만, 이것도 깔끔하지는 못하다.

금융기관이 감정평가사를 전문직으로 고용한 지는 꽤 됐는데, 자체 평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들었다. 감정평가 자격 없는 자의 감정평가 행위, 감정평가 할 수 없는 기관에 소속된 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 행위, 감정평가 자격 있는 자의 유사감정평가행위, 이 모든 게 필자에게는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