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9) / 국제적 규모의 기업 형사 조사 시 유의점

2019-05-31     박준연

 

 







박준연 미국변호사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FCPA) 위반 등을 비롯한 화이트칼라 범죄와 관련해 미국 법무부 (DOJ), 증권거래위원회 (SEC)의 조사를 받게 되거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조사 대상이 되는 기업의 입장에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주변 환경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 외의 정부 기관들도 화이트칼라 범죄에 점점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사과정에서 미국 정부와도 협력하게 되면서 다양한 법, 제도와 기업 형사 관련 정책을 고려한 다면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진 보고 여부에 대한 판단

형사 조사 대상이 되기 전, 자발적으로 위반 가능성에 대해 정부에 알리는 자진 보고 (voluntary disclosure)에 대해, DOJ는 벌금을 감면하거나, 외부의 감시인 도입 (monitor) 조치를 면제 하고, 불기소 조사 종결 (declination of prosecution) 결정을 내릴 때에도 자진 보고 여부와 내용을 감안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고려 사항은 DOJ의 파일럿 프로그램 (FCPA Pilot Program)을 통해 도입되어, 시한부 실행을 거쳐 영구적인 정책 (FCPA Corporate Enforcement Policy)이 되었다. 다른 한편, SEC에는 자진 보고시 공식적 감경 정책이 없음에 유의하여 자진 보고의 손익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자진 보고를 통해 불기소 종결로 조사가 마무리되는 경우에도, 대상 기업은 해당 행위를 공개 (public announcement)하고 벌금을 지불하고 부당 이득을 반환(disgorgement)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미국 내에서 자진 보고를 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행위가 심각한 행위인지 (심각한 위반일수록 자진 보고의 필요성과 자진 보고 시의 혜택이 커지게 된다), 자진 보고를 하지 않더라도 기업의 내부고발자 (whistleblower)를 통해 미국 정부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할 가능성이 있는지 (내부 고발, 다른 정부와의 조사 공조 등을 통해 자진 보고 이외의 경로로 사실 관계를 파악할 가능성이 있다면 자진 보고를 하는 것이 좋다)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국 이외의 정부에 대해서도 위반 가능성에 대해 자진 보고를 할 필요가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고려 사항은, 해당 정부에서도 DOJ와 같은 자진 보고에 대한 감경 정책이 있는지 여부이다. DOJ와 같이 공식적으로 감경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정부 기관도 있지만, 공식적 정책을 채택하지 않은 정부 기관이라도 비공식적으로는 자진 보고 여부를 고려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비공식적 감경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당 정부의 조사에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와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진 보고를 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인지도 감안해야 한다. 해당 정부 기관은 내부고발을 통해 관련 사실을 파악할 수도 있지만, 미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손익 계산 뿐만 아니라, 얼마나 심각한 가능성이 있는지, 주요 사업 활동을 하는 국가의 정부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투명성 제고의 측면에서 자진 보고를 할 필요는 없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 프라이버시, 기밀 유지와 대항 입법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 (GDPR) 입법은 기업 형사 조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EU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기업에게 적용되는 GDPR에 따르면, EU 역내의 개인 정보를 EU 밖으로 이전하는 것은 금지되며, 위반에 대해서는 전세계 매출액의 4% 또는 2000만 유로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정보 이전 금지의 예외 (derogation) 중 하나가 법적 주장의 확립과 방어를 위해 필요한 경우이다. 이 예외 조항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정부 기관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어야 한다. 정부 기관이 자발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시점, 기업의 내부 조사를 바탕으로 기업 자체적으로 자진 보고를 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이 예외 조항이 적용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중국에서도 최근에 GDPR과 유사한 기밀 보호법이 발효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주법으로 GDPR과 유사한 개인 정보 법안이 입법되어 발효를 앞두고 있다.

한편, 프랑스의 대항 입법 (blocking statute)는 프랑스에 존재하는 증거를 미국 소송과 정부 조사를 위해 이전하기 위해서는 사법 공조 조약 (mutual legal assistance treaty) 상의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자진 신고를 위해 내부 조사를 수행하는 경우, 대항 입법의 적용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 정부 역시 이러한 외국의 법제를 파악하고 공조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자진 보고를 하는 시점에서 해당 기업은 데이터 법제 혹은 대항 입법의 위반 가능성과, 내부 조사를 적절하게 수행할 수 없는 가능성 사이의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DOJ에 대해 관련 국가의 데이터 법제나 대항 입법의 제한이 있어 증거의 제공이 제한되는 경우, 제한 요건에 따라 서류를 제외하거나, 일부를 가리고 (redact) 제출하는 등 적절한 대응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DOJ는 물론이고 데이터 프라이버시나 대항 입법을 적용하는 정부기관과 커뮤니케이션을 계속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상이한 법제, 문화라는 도전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공여 규제는 OECD 뇌물방지협약 등을 통해 실체법과 그 집행에 대한 국제적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이한 법제로 인해 여러 국가에서 진행되는 조사는 더욱 복잡해지고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미국법 상의 비밀 유지 특권 (privilege)은 다른 법제 상에서는 제한적으로 적용되거나 (예컨대, 외부 변호사에게만 적용되고 조직내 법무 부문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 아예 비밀유지특권의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법제도 있다. 조사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비밀유지특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사 팀의 구성원들이 비밀유지특권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 특권이 적용되는 문서나 의사소통을 적절하게 취급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다른 예가 업존 (Upjohn) 경고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에서 유래한 업존 경고는 기업법의 미란다 경고 (corporate Miranda)라고도 불린다. 회사를 대리하여 내부조사를 하는 변호사들은 내부 조사의 일환으로 회사의 사원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해당 변호사들은 회사를 대리하며, 사원 개인을 대리하지 않는다. 인터뷰의 내용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 유지 특권의 대상이 되어 변호사는 인터뷰의 내용을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밀 유지 특권은 회사에 속하므로, 회사는 필요한 경우 정부 기관 등 제3자와 인터뷰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 사원이 이 내용을 이해하고 동의한 다음에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다.

실제로 인터뷰 전에 이 설명을 하면, 이해하는 경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 인터뷰 전에 개인 변호사를 찾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 등 반응이 여러 가지이다. 특히 비밀 유지 특권의 개념 자체가 생소한 경우 업존 경고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비밀 유지 특권의 개념부터 왜 미국법에서 업존 경고가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을 하면 대부분 의미를 이해하고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회사 법무 부문에서 인터뷰에 참여하여 함께 설명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큰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 달리진다고 한 것은, 드물게는 인터뷰의 내용에 따라서는 법무 부문의 인터뷰 참가를 본인에 대한 징계 절차의 개시로 이해하고 인터뷰 참여를 주저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목적과 업존 경고에 대해 부드러운 톤으로 설명할지, 강경한 톤으로 설명할지, 그리고 내부 법무 부문이 어느 정도 개입할지는 조사의 성격, 목적 등을 감안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

여러 정부 기관에서 동시에 한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벌금을 몇 배로 납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DOJ는 벌금의 중복 추징 (piling on)을 막기 위해서 미국 내외의 정부기관과 협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벌금 금액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 법, 제도가 관련된 경우 이에 다방면으로 대응하기 위한 변호사 비용도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효과적인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통해 법령 위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성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만약 조사의 대상이 되거나 조사가 예상되는 경우, 조사의 다양한 양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팀을 편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park@l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