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28)-패스트트랙 지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

2019-05-09     신종범










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문무일 검찰총장이 신속처리(패스트트랙)법안으로 지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하여 민주주의 원리에 위반된다는 견해를 밝힌 다음날이었다. 의뢰받은 사건 중 경찰에 고소되었다가 검찰 송치 후 재조사 수사지휘가 나서 다시 경찰로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담당 경찰수사관에게 전화를 했다. 경찰은 무엇을 알고 싶냐면서 퉁명스럽게 말한 뒤 들으라는 듯 "검사 지가 직접 수사하지 왜 돌려 보내고 ****." 한다. 왜 그런 말을 변호인에게 하는지 항의하자 그냥 확인하고 싶은 사항만 물어 보라고 한다. 좀 어이가 없어 전화를 끊었다. 경찰에 수사권 독립을 부여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동물국회 모습을 재현하며 신속처리(패스트트랙)법안으로 지정된 법률안 중에 검, 경의 수사권 조정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검찰은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그리고 기소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에게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지금은 경찰이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고, 그 지휘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협력관계로 규정하면서 검사의 수사지휘에 관한 권한을 삭제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를 마치면 모든 사건에 대하여 관련 서류와 증거물을 검사에 송부하고, 검사가 기소 여부 등 최종적인 수사종결권을 갖고 있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범죄 수사 후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건만을 검사에게 송치하고, 그 밖의 경우에는 수사를 종결할 권한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는 검사가 모든 사건에 대하여 수사지휘권을 통하여 경찰에게 수사 방향 등을 지시하였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검사는 송치된 사건이나 영장이 신청된 사건에 한하여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송치되지 않은 사건이 위법, 부당한 경우에만 그 이유를 문서로 명시하여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글머리에 제시한 사례에서 아직까지는 재수사 수사지휘를 받은 경찰은 검사의 지휘내용에 따라 수사를 하여 다시 검사에게 송치하고, 검사가 기소 여부 등 결정을 통해 수사를 종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위 사건은 경찰이 검사에게 처음부터 송치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경찰이 수사한 결과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냥 수사종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여 검찰에게 송치하였다고 해도 위 사례처럼 검사가 수사지휘를 해서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다. 검사는 보완수사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직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임에도 담당경찰관은 검사의 수사지휘가 못마땅했고, 그렇다고 직접 이야기 할 수도 없으니 괜히 변호인과 통화하면서 불만을 표출하였을 것이다.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마련된 것은 검찰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동안 검찰이 주어진 권한을 오, 남용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권한 일부를 경찰에게 주었다고 하여 수사가 더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국민들이 권리가 더욱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한 예로 범죄 피해자로서 고소한 사건에서 지금은 경찰이 수사한 후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였더라도 검찰로부터 최종 판단을 받을 기회가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원칙적으로 경찰에서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은 그대로 종결되게 된다. 고소인 입장에서는 경찰보다는 법률전문가인 검사에게 최종적인 판단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번 개정안을 보면서 경찰 조직에 대한 개혁없이 수사권마저 독립시켜 줌으로써 경찰권력이 비대해지고 결과적으로 ‘센 검찰’과 함께 ‘센 경찰’ 마저 등장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난장판 끝에 생소한 신속처리(패스트트랙)법안으로 지정된 탓에 그 법안들이 국회에서 의결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법안들이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는 최단 180일에서 최장 330일까지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 기간 동안 과연 무엇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지 심도있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