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유체이탈 화법

2019-04-26     안혜성 기자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로스쿨 제도와 변호사시험의 문제를 고찰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연이어 마련됐다.

법률저널의 기자가 된 후 로스쿨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과 논의의 현장에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이나 똑같은 얘기만 반복하면서 가시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인력 양성제도는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매우 중요한 제도이고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의 위상과 역할을 생각하면 비단 기자가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같은 주제의 토론회라고 해도 ‘이번에는 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지지부진한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지는 않을까?’하는 기대를 안고 취재를 나가고 또 말 한 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런데 지난 16일 열린 토론회에서 관심을 끄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종현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가 소개한 미국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의 변화와 박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심층면접 연구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 진정한 의미는?’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여기서는 간단히 요약하자면 미국의 로스쿨은 변호사시험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또 미국의 변호사시험은 한국과 달리 판례를 단순 재생산 하는 문제는 출제하지 않으며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법원리의 숙지와 이를 응용해 사례를 해결하는 논리력 등을 검증하는 형태로 치러진다.

로스쿨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곧 변호사시험 합격과 향후 변호사로서의 활동으로 연계가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변호사시험에 큰 부담을 갖지 않고 로스쿨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집중할 수 있고, 변호사가 된 이후의 진로를 위한 공부,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인 리서치 능력과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에 충분히 공을 들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토론회의 발제자, 지정토론자 등 다수가 미국식 변호사시험과 로스쿨 교육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기자에게도 꽤나 이상적인 교육과 검증 방식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쭉 듣다보니 문득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법시험 출제 방식과 내용에 대해 비판을 하고 사법시험과 차별점이 없는 변호사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변호사시험의 출제 방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고 합격률은 저조하니 로스쿨에서는 변호사시험 준비를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마치 자기 자신이 한 일을 제3자의 위치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상황이 아닌가. 법과대학 시절의 교육은 누가 담당했으며 사법시험 문제는 누가 출제했나. 로스쿨에서의 교육은 누가 하고 있으며 변호사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누구인가. 정말 로스쿨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저조한 변호사시험 합격률의 책임인가.

합격률이 저조하지 않았던 도입 초기의 로스쿨, 아직 변호사시험이 시행되지 않았던 시기의 로스쿨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졌나. 과거 법과대학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이들도 봤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법과대학 시절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들었다.

로스쿨은 독학이나 사교육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대체불가의 교육을 하고 있나, 변호사시험 합격률만 상향된다면 정말 그런 대체불가의 교육을 할 수 있나를 로스쿨의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이, 변호사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이들이 유체이탈에서 벗어나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줬으면 한다. 적어도 그만한 가치는 있어야 25개의 로스쿨로 법조인 배출 통로를 제한함으로써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이들에게, 또 막대한 돈과 시간을 투자해 로스쿨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 할 말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