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새로운 10년을 위한 청사진…②내용적 측면에서의 변호사시험 개선 방안

2019-04-12     안혜성 기자

판례 제한부터 오픈북 시험까지 단계적 시행 제안
“변호사시험은 사법시험과 완전히 다른 시험 돼야”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시험에 의한 선발 대신 풍부한 사회 경험을 갖춘 인재들을 양질의 교육을 통해 법조인으로 양성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제도.

도입 10년을 넘어서 법조인을 배출하는 유일한 통로가 됐지만 아직 제도 전반에 걸쳐 여러 논란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로스쿨이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취지를 달성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에 법률저널은 로스쿨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청사진으로써 ‘로스쿨 도입 10주년 기념 심포지엄-로스쿨 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제도의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다뤄진 논점들을 ①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기준 ➋내용적 측면에서의 변호사시험 개선 방안 ③로스쿨 서열화와 균형발전 방안으로 나눠 상세히 고찰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변호사시험 개선 논의의 중심은 합격자 결정 방식, 좀 더 직접적으로는 합격자 수 통제에 관한 논의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개선은 내용적 측면에서의 개선, 즉 질적 측면의 개선에 있다. 사법시험 체제 하에서의 선발과 다른 ‘교육’에 방점을 둔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결과를 평가하는 변호사시험은 근본적으로 사법시험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선택과목 폐지, 선택형 시험 폐지, 출제 판례 수 제한 등 최근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로스쿨생들이 변호사시험 합격에 치중된 공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수험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개최된 ‘로스쿨 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제도의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도 비슷한 방향의 의견들이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판례 미리 지정·교육하고 그 범위 내에서 출제해야”

주제발표를 맡은 명순구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먼저 현행 변호사시험의 문제점으로 방대한 출제 범위와 판례에 무게가 기울어 원칙과 이론이 실종된 상황, 암기 중심의 수험 공부로 인해 맥락 없는 단순한 정보만을 습득하게 되는 문제, 정규수업과의 괴리, 선택·실무 교과목의 유명무실화 등을 지적했다.

명 교수는 “변호사시험은 과거 사법시험 때와 똑같이 법조문과 수많은 판례를 모두 암기하는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도록 출제되고 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만 개가 넘는 판례를 외워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학생들은 과목마다 판례의 결론만 촘촘히 나열된 요약서의 이름으로 천 페이지가 훨씬 넘는 수험서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키워드와 판례의 결론만을 암기하고 법의 정신과 원리를 배우는 데에는 집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정규수업 밖에서 변호사시험 준비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 교수는 총 3단계에 걸쳐 변호사시험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급격한 변화가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들 개선안의 방향은 과거의 법률가와 다른 현재와 미래의 법률가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기반으로 잡았다. 인터넷의 보편화와 AI의 발달로 인해 ‘많은 정보를 개인적으로 축적하는 일’은 더 이상 법률가의 핵심역량이 될 수 없으며 ‘자신에게 닥친 새로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습득하도록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게 명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이같은 능력은 ‘법원칙’과 ‘기초이론’을 자기의 것으로 갖춰야 발휘할 수 있고, 아울러 수많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법률을 활용할 수 있는 응용과 논증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변호사시험을 이같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명 교수가 제안한 1단계 개선방안은 로스쿨 3년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판례를 미리 지정해 이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변호사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방안이다. 선택과목을 폐지하고 학점이수제로 변경하는 방안도 1단계 제안에 포함됐다.

2단계는 선택형(객관식) 시험의 축소 내지 폐지, 사례형 논점의 간소화 및 분량제한 완화, 기록형을 학점이수제로 변경하거나 평가방식을 P/F제로 바꾸는 방안 등으로 이뤄졌다. 이 중 선택형의 경우 “1단계 제안들과 거의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선택형을 통해 배우는 게 없다. 향후 선택형을 폐지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선택형 시험을 유지하는 경우 사법시험 1차시험과 같이 주관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형태로 변경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사례형에서는 문제의 논점이 너무 많아 논증적 답안 작성이 이뤄지지 못하고 각 논점별로 간략한 설명과 결론 위주로 답안을 쓰게 되는 ‘사례형의 선택형화’를 문제시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 사례에 가깝게 중요한 논점 위주로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는 게 명 교수의 설명이다.

기록형은 로스쿨 간 교수나 강사들간 역량 차이가 가장 심한 시험이자 출제위원에 따른 유불리 논란, 재학생과 졸업생간 시험준비의 형평성 등 불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많은 시험이라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또 법학을 제대로 익힐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면기록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실무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보였다.

하지만 기록형시험을 당장 폐지하는 경우 로스쿨 과정 안에서 실무와 관련된 과목들이 외면 받게 될 우려, 로스쿨 교육방식이 법과대학과 동일하거나 변호사시험이 사법시험과 다름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질 우려 등이 있어 아예 서면의 성격을 알지 못하거나 정규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수험생을 가려내는 수준의 ‘P/F제’로 변경하는 방식 등을 검토하는 방안을 내놨다.

“휴대폰을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는 시대, 방대한 지식 암기할 필요 없어”

3단계의 최종적 목표는 교과서는 제외하고 문헌이나 판례를 자료로 참조할 수 있는 상태에서 사례형과 기록형 문제를 푸는 ‘오픈북’ 형태의 시험을 내세웠다. 명 교수는 “수많은 이론과 판례를 외우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법조인으로서의 소양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암기 능력을 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휴대폰을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는 이 시대에 방대한 자료와 정보를 머릿속에 지니고 있어야 할 필요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법률가는 사안을 접하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논증을 구성하기 위해 자료를 신속하고 정확히 검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자료제공형 시험으로 개혁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인재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명 교수가 제안한 방안들에 대해 대체로 동의의 뜻을 전하며 그 중에서도 선택과목의 학점이수제 도입과 관련한 의견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소규모 로스쿨이 다양한 선택과목을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학교는 형편에 맞춰 전문과목 교육을 시행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나 전문성 지향에 맞춰 학교를 선택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로스쿨의 서열화 문제도 해결되고 균형적 발전도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명 교수의 의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단계를 더 단축하고 변호사시험을 더 가볍게 만드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변호사시험법에 합격점을 명기함과 동시에 로스쿨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경우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합격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의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를 주장했다. 아울러 변호사시험의 관리를 현행 법무부가 아닌 독립적인 전문기관에서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문상연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과장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결정 문제 뿐 아니라 내용들이 교육과 어떻게 연계되고 유기적으로 작용할지도 검토가 필요하다”며 내용적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문 과장은 “교육부에서도 제도 개선과 관련해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법학교육위원회에서도 연구 검토 등을 하고 있다. 상반기에 연구를 진행하고 하반기에는 법학교육위원회를 통해 의견도 수렴하고 지속적인 개선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훈 전국로스쿨학생협의회 회장은 직접 로스쿨의 교육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특성화 및 선택법 교육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특성화 교육은 입시에서도 고려되지 않는 수준이고 변호사시험에 출제되는 선택과목조차도 면과락을 목표로 시험 직전에 잠깐 살펴보는 과목으로 인식되는 등 정규과정을 통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해 단순히 판례를 많이, 정확히 암기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판례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나 심도 있는 고민이 불가능한 상황도 현 변호사시험과 로스쿨 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