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72 / 감정평가 손해 배상

2018-12-21     이용훈








이용훈 감정평가사

요 근래, 돈을 물어내야 한다는 전화를 다른 법인에 소속된 평가사들이 받고들 있다. 대출금 회수가 안 돼서 평가법인 보고 성의껏 부담하라는 요구다. 담보대출금 상환을 연체하면 은행에서는 임의경매를 개시할 수 있다. 그런데 낙찰가율이 너무 낮으면 원금 얼마가 빈다. 그러면 은행에서는 담보평가를 보수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몰아 세운다. 은행과 감정평가법인 간 업무협약서에는, 감정평가로 인한 손해를 떠넘기는 소송이 진행되면 협약을 해지 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다. 가급적 소송까지 가지 않고 잘 협의하는 것이 상책이다.

얼마 정도 보전해 주어야 할까. 정상적인 감정평가액과 과다 감정평가액의 차액에 담보인정비율을 곱해 나온 금액이 최대치다. 그 금액을 놓고 은행과 평가법인 간 과실 비율을 협의하여 결정한다. 감정평가업계에서도 사고 잘 나는 물건이 특정돼 있다. 임야에 개발행위허가를 받아서는 토목공사 시늉만 해놓고 대출을 한껏 끌어 쓴 사업장은 단골이다. 브로커가 악성 사업장을 들고 1금융권, 2금융권 들쑤시고 다니면 이미 블랙리스트로 회자된다. 거기에 눈독 들이면 몇 달 잠 편히 자는 건 포기해야 한다.

사고 쳐 놓고 밤에 편히 누워 자지 못하는 평가사들, 사건사고를 전담하는 법인 내 경영진 일부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이 악성 사고는, 상식적인 사람이 저지르기 힘들다. 과다 감정으로 얻게 되는 과실과 뒷감당해야 하는 손해 배상액 간 형량이 안 될 리가 없다. 들어보면, 그 당시 뭐에 쓰여 내 보낸 거 같다는 말을 한다.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을 이럴 때 쓸 수밖에.

손해배상액을 적립하기 위해 각 평가법인은 금융기관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공제기금에 가입되어 있지만, 제대로 터진 사고는 공제기금 한도에서 무마되기 힘들다. 전문가 배상보험에도 들어 있는데 기껏해야 한도가 3-5억 수준이다. 몇 억을 먼저 회사에서 배상하고 담당자의 월급에서 일정액을 차압해 보전시키기도 하는데, 몇 십 년에 걸쳐 회수하는 일정이 지난하다.

국내 대기업의 세금 문제, 인수합병 문제. 지분정산 문제 등이 개입할 때마다 회계법인은 보고서를 낸다. 최근에 불거진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논란도, 결국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지분가치를 평가하다가 뒷감당을 해야 할 문제다. 잘 무마된다면, 형량을 지혜롭게 한 것이고 그 반대면 여러 사람 밤잠을 설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