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로스쿨에서 본 사법농단 사태와 위안부 문제

2018-10-05     강영준











강영준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1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

가을의 중반에 접어든 로스쿨은 2학기 중간고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11기 신입생을 선발하기 위한 원서접수가 진행되고 있다. 미래 법조인으로서의 포부를 담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는 지원자를 보면서, 1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했을 때의 초심을 떠올리며 시험준비로 지친 마음을 다잡고는 한다. 하지만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된 내용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내가 이러려고 로스쿨 왔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수험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법관이 법원행정처 근무와 관련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추석연휴를 앞두고는 필자가 재학 중인 학교의 전직 대법관 출신 석좌교수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더욱 마음이 무겁다. 국회에서 사법농단 의혹을 다루기 위한 특별법이 발의되고 더 나아가 특별재판부 구성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로스쿨 졸업 뒤 법조인으로 마주할 현실이 녹록치 않겠다는 암울한 전망을 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왜 로스쿨 학생들은 침묵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지난 6월 사법농단 수사를 촉구하는 로스쿨생 시국선언이 발표되기도 했고 일부 로스쿨에서는 사법농단 사태에 항의하는 벽보가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법부에 실망한 여론을 위로할만한 활발한 움직임이 로스쿨 내에서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3년의 짧은 전문대학원 재학 중에 로스쿨생이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집단행동을 하지 않아서이지 각자 사법농단 사태에 분노하고 우리가 법조인이 돼서는 저들과 다를 것을 다짐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법부, 더 나아가 법관 개개인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가 뿌리채 흔들린 이번 사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의혹 중 필자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위안부·강제징용 관련 내용이었다. 법관 해외파견과 관련 외교부를 압박하기 위해 재판일정을 조정했다거나 강제징용 손해배상사건 파기환송을 화제로 주일대사 출신의 비서실장을 설득하겠다는 ‘대응전략’, 더 나아가 위안부 합의 이후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도 개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문건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1965년 청구권협정에 따른 조약의 구속력과 국가면제법리를 뛰어넘어 위안부를 비롯한 일제강점기 피해자의 억울함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를 우리 국제법학계가 지속적으로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위안부·강제징용 재판이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에 분노를 넘어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는 국민이 뽑은 헌법재판소 결정 1위로도 뽑힌 바 있는 2011년 ‘위안부 배상 관련 행정부작위 사건’과도 배치될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강제징용된 자국 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부인하는 새로운 법리를 인용한 이탈리아 국내법원의 노력과도 대비된다. 이후 이탈리아 법원이 독일의 국가면제를 부인,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독일이 ICJ에 제소한 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사건에서는 비록 이탈리아가 패소했지만 이와 별개로 UN은 2005년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 채택을 통해 피해자 중심적 접근을 통해 인권침해 상황에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을 촉구하는 등 언젠가는 국제법원이 우리 위안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하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지난 여름 진행된 외교부 주최, 대한국제법학회 주관 국제법 모의재판 경연대회 역시 중대한 인권침해 상황에서 국가면제의 부인가능성을 다루기도 했다. 이제 다시 위안부·강제징용 재판을 진행해야 될 우리 법원이 국내외 다양한 법리의 검토를 통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한 심판을 내려주길 기대할 뿐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많은 법조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우리 법조계와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지만 그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 또한 법조인의 몫이다. 위안부 피해자의 관부재판(부산 종군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역사관에 걸 위안부 할머니의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마무리된다. “역사관 만들라고요. 할매들 이야기를 전해줘야지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교육도 시키고..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이니까.” 이번 사태로 얼룩진 우리 사법부, 법조계가 위안부 역사관, 그리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앞으로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