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3) / 미국 민사 소송과 문서 리뷰

2018-10-05     박준연










박준연 미국변호사

미국 소송 과정에서 총 비용의 50% 정도까지 차지하는 것이 바로 수집한 문서를 리뷰하여 소송과 관련된 문서를 제출하는 과정이다. 소송 당사자로서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소송과 관련된 주요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여 소송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문서 리뷰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또 소송 당사자가 아닌 제3자라고 하더라도 제3자 소환장(third party subpoena)을 수령하여 문서를 리뷰,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 전자 커뮤니케이션이 문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보다 더 활발해지면서 전자 문서의 리뷰가 문서 리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자 문서 리뷰 초기에는 데이터 처리, 리뷰에 소요되는 일정 데이터당 비용이 상당히 높았다. 이후 기술의 발전은 전자 문서 리뷰에도 영향을 끼쳐 일정 데이터를 처리하여 리뷰하는 비용은 현저하게 낮아졌다. 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전자 문서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관건은 비례성

2015년 12월 발효한 연방 민사 소송 규칙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개정은 소송 당사자의 주장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의 필요에 비례하는 (proportional to the needs of the case) 증거에 대해서만 제출을 요청하도록 함으로써 전자 디스커버리와 관련하여 비례성(proportionality)을 강조하고 있다. 관련하여 고려할 요소로는 소송에서 해당 쟁점이 갖는 중요성, 소송 대상의 가액, 소송 당사자의 해당 증거에 대한 접근성, 소송 당사자들의 금전 자원, 해당 증거 제출이 쟁점 해결에 있어서 갖는 중요성 및 증거 제출 비용과 그 효용의 비교 등이다. 또 이 개정에서는 전자 문서의 제출과 관련하여 제출을 요구받은 소송당사자가 그 전자 문서 제출이 부당한 부담 또는 비용(undue burden or cost)임을 성공적으로 입증하는 경우, 전자 문서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부담 또는 비용의 입증은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1인당 데이터의 양을 어느 정도로 예상할 경우 총 몇 명의 데이터를 리뷰, 제출하는데 총 얼마의 금액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부당한 부담 또는 비용이 예상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서 리뷰의 세 가지 방법: 매뉴얼 리뷰, 키워드 검색, TAR

수집한 전자 문서는 중복되는 문서를 제외하는 과정 (de-duplication)과 소송의 관련 시기를 이용한 범위 제한 과정을 거쳐, 리뷰 전용 소프트웨어상에 업로드하여 리뷰를 하게 된다. 종이 문서 역시 스캔과 OCR (optical character recognition)의 과정을 통해 리뷰 소프트웨어에 업로드한다. 리뷰의 방식은 사람(변호사나 외부 리뷰 팀 구성원)이 하나하나 검토하여 소송과의 관련성을 검토하는 매뉴얼 리뷰, 검색어를 사용하여 그 결과를 검토하는 키워드 검색 리뷰,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진행하는 TAR(technology-assisted review)의 크게 세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전자 디스커버리와 관련된 기술의 동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변호사의 윤리적 의무이기도 하다.

1. 매뉴얼 리뷰에 대한 흔한 오해

컴퓨터를 리뷰 과정에 이용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사람이 문서를 하나하나 읽고 리뷰하는 매뉴얼 리뷰가 사라지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세 가지 리뷰의 방식 중 하나의 방식을 고르면 소송 과정 내내 그 방식만 고수하는 것도 아니다. 드물지만 관련된 문서의 양이 지극히 제한된 소송의 경우에는 키워드 검색이나 TAR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문서 한 건씩 검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키워드 검색이나 TAR의 전 단계로서 샘플을 설정하여 샘플 내 문서를 하나씩 리뷰하는 경우도 있다.

2. 키워드 검색: 겨우 20%

키워드 검색을 통한 리뷰는 검색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찾는 과정과 비슷하다. 리뷰 대상이 되는 문서를 대상으로 문서를 검색하여 그 결과를 하나씩 리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소송과 무관한 검색 결과를 최소화하고 관련된 검색 결과를 최대한으로 찾을 수 있는 검색어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자신도 그렇지만, 몇천 건, 때로는 몇만 건의 문서를 가지고 관련있는 내용을 찾아낸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은 자신의 검색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검색어를 사용한 리뷰는 관련있는 내용 중 기껏해야 20%만을 찾아낸다는 연구결과를 잊지 않을 필요가 있다. 키워드 검색의 효율성을 최대화 하기 위해서는 소송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검색어를 정할 필요가 있다. 매뉴얼 리뷰를 통해서든, 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서든 관련 용어를 파악하고, 해당 업계, 해당 기업, 해당 부서나 인물이 특히 사용하는 관련 용어가 있는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검색어를 찾는 과정은 검색과 결과 샘플의 리뷰를 반복하여 검색어를 수정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검색 결과와 결과에서 제외된 문서를 일부 살펴본 다음, 놓친 부분은 있는지, 무관한 문서가 검색 결과에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false positive)를 점검하여 수정에 수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소송의 증거 제출을 위한 키워드 검색 리뷰의 과정에서는 소송 상대방과 검색어를 합의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배경 지식은 필수적이다. 증거 제출을 요구하는 소송 당사자는 최대한 검색어 범위를 넓게 설정하여 리뷰 대상 문서 거의 전체를 매뉴얼 리뷰 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소송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검색어를 제시하여 범위를 좁힌다면, 리뷰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3. TAR의 대두

흔히 리걸텍(legaltech)이라고 부르는 법무 관련 기술 중에서도 최근 특히 활발하게 이용되는 것이 컴퓨터를 이용해 소송 관련 문서를 분류하는 TAR이다. 사람이 장시간 문서 리뷰를 하는 경우,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컴퓨터가 대체하면 집중력 저하나 실수는 최소화된다. 초기의 TAR은 몇천 건의 시드 셋(seed set)을 변호사가 리뷰한 다음 이 결과를 컴퓨터에 학습시켜 리뷰하도록 하여, 그 결과를 검증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 시드 셋을 투입하는 과정을 지칭하였다. 이때 시드 셋을 리뷰하는 변호사는 해당 소송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컴퓨터가 변호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하는 것이 아니고, 변호사가 컴퓨터를 학습시키면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컴퓨터가 문서를 분류하는 만큼, 그 학습 과정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후 TAR도 발전하여, 별도의 시드 셋 투입 없이, 컴퓨터가 학습을 계속하는 형태의 TAR도 사용되게 되었다. TAR의 보급으로, 증거를 제출하는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 법원은 이를 허용하는 것이 법원칙 (black letter law)이 되었다고 TAR에 정통한 한 연방법원 판사가 판결문에 쓰기도 하였다.

안건에 따른 리뷰 방식 선택

소송 안건의 특징, 그 중에서도 리뷰 대상이 되는 문서의 양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리뷰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TAR의 경우 문서의 수에 따라 부과되는 이용료와 별개로 일정 금액의 라이센스 요금이 부과되는 비용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상 문서가 소량인 경우 다른 리뷰 방법에 비해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디스커버리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가장 효율적인 리뷰 방식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소송 초기에는 매뉴얼 리뷰나 키워드 검색을 통해 내용을 파악하고, 디스커버리 범위를 확정한 후 TAR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중복 리뷰로 비효율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밀유지권과 문서 리뷰

문서 리뷰에서는 소송과 관련된 문서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 (attorney-client privilege)이나 직무 성과물 비밀 유지권 (work product privilege)에 해당하여 제출에서 제외할 문서를 식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접 하나씩 리뷰하여 해당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에는 누가 이 리뷰를 진행하는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비밀유지권은 영미법상의 개념이므로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그 자격의 관할권 지역에 따라 비밀유지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도 없지 않다. 이때는 비밀유지권을 이해하는 변호사가 개입하여 리뷰를 감독하고 결과를 재리뷰 (QC, quality control)할 필요가 있다. 또 TAR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TAR가 소송과의 연관성을 검토하는 데 뛰어난 도구라도 비밀유지권에 관련해서는 그 정확성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TAR의 결과 제출할 문서 범위가 확정되면 이 문서를 하나하나 리뷰하거나 검색어를 사용하여 비밀유지권에 해당하는 문서를 제외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 소송을 처음 경험하는 클라이언트 기업의 법무부 담당자들과 디스커버리 계획을 자세히 논의하고 또 여러 디스커버리 서비스 제공 회사들과도 함께 면담을 한 적이 있다. 법무를 전담하는 부서에서도 미국 소송 경험이 없으면 디스커버리의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 미국 소송 경험이 있더라도 시간과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하면서 관련된 문서를 식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도 없이 소송과정이 진행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서 리뷰 과정에 대해 알아두는 것은 로펌 변호사뿐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park@lw.com